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담 J Apr 19. 2024

삶과 죽음 사이에서

[우울증 환자 생존기] 생존 투쟁

다시 자살을 끝없이 생각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꿈에서도 자살을 생각한다. 동시에 새로운 살 방법을 생각한다. 죽지 않아야 할 이유는 많고, 죽어야 할 이유는 명확치 않지만 죽고 싶다. 한동안 죽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서 살만했는데 다시 자살충동이 둥둥거리며 내게 온다. 나는 과연 살아있을 수 있을까. 


시간을 가지고 다시 나를 돌아봤다. 지난 몇 일간, 몇 주간 콧노래를 부르며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훅 죽고싶어졌다. 회사를 그만둬도 잘 될 것 같은 이상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다가 모든 것이 자신 없어졌다. 상담 간격이 이번에 한 달로 늘어나서 상담 대신 정신과 의사들을 유투브를 보게 되었다. 잊고 있었다. 내가 조울증 진단을 받았다는 걸. 나는 내가 진짜 조울증일까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조증 삽화로 잠도 안 자고 계속 움직이고 들썩 거리고 뭐든 막 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러다가 짜증도 내고 소리지르고 울고 불고 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몇 주간은 그렇지 않았다. 다만 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고 콧노래가 절로 났을 뿐이다. 그러다가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다시 들썩거리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러다가 문득 죽고 싶어졌다.




병원에 다녀왔다. 의사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하고 찾아올 수 있는 상실감, 허탈감에 기인한 충동으로 볼 수 있다며, 울감이 오는 건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했다. 나는 어떤 아쉬움이 없는데.. 어쨌든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얼굴이라며 항우울제 중에 좀 더 기분을 고양시켜줄 약을 하나 추가해준다고 했다. 단약은 커녕 약을 하나 더 늘렸다. 그 약을 먹어서인지 발걸음 떼는 것이 좀 더 가볍게 느껴진다. 약 먹으면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싶어서 신기하다. 나한테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니까.


주말에는 수면제 이틀치를 먹고 토요일 9시부터 일찍 자서 일요일 저녁때까지 종일 잤다. 미사 보고, 사랑이 산책 다녀오고 수면제 먹고 기도를 졸면서 하다가 또 잤다. 월요일은 일어나기가 나름 좋았다. 이번주는 화요일 빼고는 일찍 일어나서 잘 출근하고 있다. 새로 받은 항우울제는 약효가 있는지 기분이 바닥까지 가라앉지 않았고, 일상생활 하기에 몸이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 들 정도로 잘 적응하고 있다. 손에 계속 땀이 나는데 부작용인지는 다음에 가서 물어봐야할 것 같다. 자살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끝 간데 없이 가라앉는 몸과 마음은 조금 올라와서 유지중이다. 




하루하루가 생존투쟁이다. 죽지도 않을 거면서 그 환상을 떨쳐내고 헤치고 나아가며 살아나가는 것은 늘 버겁다. 약을 열심히 챙겨먹고 있다. 필요할 땐 필요시 약도 먹고, 마음을 진정시키고 생각을 줄이려고 노력중이다. 회사는 이제 한달 열흘 남았다. 그 사이 해내야 하는 일이 있어서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잘 마무리 지어보려 한다. 하기로 했으니 해야지. 마음이 무겁지만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 


퇴사 이후의 삶에 대해서 생각한다. 쿠팡 알바처럼 몸 쓰는 일을 하는 것이 차라리 나은 것인가 싶을 때도 있고, 그래도 뭔가 새로운 일을 해야지 생각할 때도 있고, 돈을 벌어야 하니까 어쨌든 이 바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싶을 때도 있고. 월급이 들어온 거 보고 '내가 밖에 나가서 이 돈을 벌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또 내가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일렁이는 맘을 달래가며, 하루하루 살아나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고공행진 속 저속비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