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문장웹진 산문 기고
고수리 작가입니다.
여름과 가을을 지나며 뜨겁게 쓴 작품들의 기고소식을 전합니다.
창작과비평 2025년 가을호에 산문 <할머니의 바다, 엄마의 이불>를 썼습니다.
'내 삶을 돌본 것'이라는 주제에 나를 키운 여자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어요. 모래톱 마을 건넛불에 가족을 일군 해녀 할머니, 건넛불집 넷째딸이었던 엄마, 유난스럽게 요망진 얼라였던 나. 시간이 흘러 숱한 사람과 기회와 행운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건넛불에 남은, 모녀삼대의 이야기입니다.
할머니는 나를 '요망진 아이'라고 했다. 제주말로 영리하고 야무진데 어쩔 땐 너무 조숙해서 애답잖은 애. 날 때부터 눈이 뭘 다 아는 애 같았다고. 어지간히 요망졌던 나는 지 에미 등짝에 따개비처럼 붙어선 잠시라도 떨어질라치면 애앵애앵 울었댄다. 어쩌다 엄마가 떼놓고 가면 쪼까난 게 먹지도 자지도 않고 종일 울어댔다고. 할머니는 그런 내가 징하기에 장하다고 했다. 지 에미 품에선 세상 순하기 그지없는데 품에서 떼놓기만 하면 옹골차게 우는 것이, 꼭 지 에미를 지키려는 거 같아서. 요망진 얼라가 잘도 아꼬와라(예뻐라). 할머니는 애앵애앵 우는 나를 부라질하며 얼렀다.
할머니와 엄마 얘기 말고도, 편집자님은 유독 엄마와 이불집 언니의 우정 이야기를 좋아하셨는데요. 녹록지 않던 시절에 서로를 돌봐주었던 여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구태여 언니네 이불집 찾아가는 게 좋았어. 사는 얘기 하다가 솔짝솔짝 울다가 맛있는 거 나눠 먹고, 그냥 그런 게. 언니가 한번도 날 그냥 보낸 적이 없어. 뭐라도 손수 지어다가 밥을 먹여서 보내는 거야. (...) 그 언니는 아직도 딸 보면서 이불집 한단다. 이불집에 갈 때마다 나는 거기다 마음을 두고 왔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연민이랑 애정 같은 게 없다면, 세상은 너무도 외로울 거야."
그래서 외롭고 슬픈 사람들끼리 기댔다. 서로를 가여워하면서, 서로를 애틋해하면서.
사는 게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마음일 때, 폭닥 껴안아주는 이불 같은 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삶을 돌봐준 가장 소중한 이야기를 창작과비평에 싣다니, 영영 가보로 남기려고요.
엄마. 사는 게 가끔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마음일 때가 있어.
그런 깜깜한 밤에 호오이 호오이 할머니의 숨비소리가, 자장자장 자장자장 엄마의 자장가가 나를 재운다. 애기야. 딸아. 날마다 파도가 밀려와도 우리는 부서지지 않았잖니. 날마다 너를 사랑하고야 말았잖니. 그러니 괜찮다. 다 괜찮다. 살다보면 살아지더라. 파도도 어둠도 우리는 나란히 같이 덮자. 솜이불처럼 폭닥 덮어버리고선 자장자장 자장자장. 아무 걱정하지 말고 잘도 자라. 애기야. 내 딸아. 바다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새 노래가 되었다.
- '할머니의 바다, 엄마의 이불' 중에서
고수리 '할머니의 바다, 엄마의 이불' 전문 (이용권 구매 or 정기구독 후 읽으실 수 있습니다.)
문학광장 20주년 기념, 문장웹진 8월 호에 저의 스무 살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글을 읽고 나면 왕페이의 ’몽중인(夢中人)‘을 들어주세요. 희망이 되기를.
내게는, 소속감에도 존재감에도 언제나 애매한 선이 그어져 있었다. 세계에 선을 그으면 면과 면이 생긴다. 그때의 면과 면은 같지 않다. 선을 그음으로써 호오와 시비와 명암과 희비의 성질이 생긴다. 세계에 떨궈진 점 하나에 불과한 나는, 때마다 하나의 면을 택하면서 살아간다. 한 면은 보여 주고 한 면은 감추면서 무던하게 적응해 간다. 나는 번번이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좋은 면만 선택하고 보여 주는 데 능숙한 사람이었다.
(...) 어쩌다 보니 떠밀려 온 줄만 알았는데 여기서 몰랐던 걸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됐다. 따뜻한 물 같은 마음이 차올라 찰랑거렸다. 해 보고 싶은 것, 잘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들. 희망이 생겼다. 그러나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 건 가난이었다. 대학 생활의 낭만이라며 술 마시고 연애하고 강의를 째는 또래들이 나에겐 신기했다. 대체 돈은 어디서 나는 것일까.
제일 싼 고시원 방에 누워서 가만히 숨만 쉬어도 방세가 나갔다. 아무리 저렴한 학식이라도 아르바이트 시급보다도 비쌌다. 술 마시러 가자, 밥 먹으러 가자는 말에 바쁘다고 핑계를 대고선 자판기 커피로 허기를 채울 때. 나는 넘을 수 없는 선을 자각했다. 좋은 면만 보여 주고 싫은 면은 감추고 싶었는데, 다들 똑같아 보였던 교복을 벗자 타고난 것들이 도드라지고 구분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여기에는 희망이라는 게 존재했다.
학교와 고시원을 넘나들던 경계선으로 내가 살던 세계를 가른다면. 호오와 시비와 명암과 희비가 극명한 꿈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로 나뉘었다. 꿈만 꾸고 싶었던 나의 바람과는 달리 꿈을 넘어 현실로, ‘어서 오십시오 경기도 부천시입니다’라는 표지판을 향해 걸어가는 날들이 늘어났다.
- '날마다 한 걸음' 중에서
고수리 '날마다 한 걸음'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