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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시 Sep 19. 2023

투약사고

첫 실수

누구나 처음 배우는 과정에는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랬고, 같이 일하는 동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중 내가 신규 시절 실수한 일화에 대해 풀어보려 한다.





사건의 발단은 이브닝 근무 중, 저녁 약을 주는 시간이었는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약을 돌리려 준비하는 중 스테이션에 다음날 약이 올라온 것을 모르고 당연히 그날 약인 줄 알고 환자한테 들고 갔다. 이름을 확인한 뒤, 경구투약이 불가능한 환자분이라 약을 다 분말 처리한 후 feeding을 하였다.



너무 정신없이 돌아가는 상황에 어딘가 불안한 느낌이 있었지만 일은 해야 해서 찜찜한 마음으로 투약을 하고 있는데, “슬픈 예감은 다 맞는다."라는 말처럼 갑자기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더니 밖으로 나와보라고 했다.

그러더니 ‘약봉지 다시 확인해봐”라고 말했다. 그때 알았다. 내가 환자에게 투약한 약이 다음날 약이라는 것을.




멘붕이었다. 그 순간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오늘 약이랑 내일 약의 오더가 같은지 확인했다. 천만다행히 같았다. 그래서 보호자에게 내가 실수로 내일 약이랑 헷갈려서 잘못 투약을 했지만 내일 약과 같다. 너무 죄송하다고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주의하겠다고 사과를 하였다. 다행히도 보호자가 괜찮다고 하시며 “많이 혼났겠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다른 사람 약 투약한 것은 아니잖아요.” 하시면서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셨다. 그 순간 약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화내도 모자랄 상황에서 내 걱정을 해준다는 것이 감동적이었다.





이렇게 상황이 잘 마무리되는 것 같아서 안도하고 있는 찰나에 저녁 늦은 시간에 환자의 다른 보호자분이 오셔서 잠자기 전에 주는 약을 달라고 하였다. 아차, 싶었다. 사실 아까 약을 줄 때 취침 전 약까지 다 줘 버린 것이었다.

 약을 투약할 때 약간 약이 이렇게 많았나? 생각은 했지만 취침 전 약까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실수한 것을 사실대로 얘기하니 “그런 식으로 일하면 어떡하냐, 믿고 맡길 수 있겠냐, 왜 약을 미리 주냐? 어쩐지 아까 가라앉는 것 같았다.”라며 화를 내셨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보호자라도 화가 날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또다시 정신적 멘붕상태였다. 다른 선생님께서 “죄송합니다. 입사한지 두 달밖에 안된 친구라 실수를 했어요. 제가 교육 잘 시키겠습니다.” 등의 사과를 하셨다.





잘 참아왔던 감정이 무너졌다.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울고 싶지 않았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음도 듀티 선생님께서 무서운 선생님이셔서 그 선생님한테도 불려 가서 “날짜 볼 줄 몰라? 내일이랑 오더가 달랐으면 어떻게 할 거야? 다음부터 투약 사고 내면 이렇게 안 넘어가” 하시며 다시는 실수하지 않도록 매섭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돌아와서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 한동안 멍하다가 오늘 한 실수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진짜로 내일이랑 오더가 달랐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약을 잘못 줘서 환자가 죽으면 어떡하지? 내가 만약 그 환자의 보호자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라는 여러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문득 대학 시절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우리가 너무 공부를 안 한다고 잔소리하시며 “너희가 똑똑하지 않으면 너희 손으로 환자 죽일 수도 있어, 아닐 것 같지? 그런 경우 꽤 많아 간호사가 멍청해서 환자 죽이는 경우, 우리는 실수가 인정되는 직업이 아냐 일반 회사처럼 실수해서 돈 몇백 물어낸다고 되는 일이 아니야, 사람 목숨으로 하는 일이야, 정신 차려”라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맞았다. 우리는 실수가 인정되면 안 되는 직업이다.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이다. 간호사의 손은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난 빠르고 정확해지는 과정을 배우는 중이라고 자신을 위로하고, 너무 속상해서 같이 입사한 동기에게 내가 한 실수를 이야기하며, 힘들었던 마음을 털어냈다.





속상할 때 이야기할 수 있는 동기들이 있고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신규 시절 이런 실수를 하고 그다음부터는 강박적으로 약을 줄 때 이름과 날짜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런 습관 때문에 지금까지도 사람들과 얘기할 때 이름부터 물어보곤 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실수는 완벽의 어머니라는 생각으로 완벽해지기 위해서는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같은 실수는 다시는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여러 번 확인의 절차를 거쳐 최대한 실수가 없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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