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사랑일까?;Thake this waltz;미쉘윌리엄스;세스모건
4번이나 본 영화.
처음에 봤을 때도 너무 좋았지만, 한번 더 찬찬히 느끼고 싶어서 한번 더 보고, 얼마 전 케이블 TV에서 나오길래 우연히 또 보고, 그리고 어젯밤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싶은게 있어서 한번 더 본 영화.
이 영화를 볼 때 즈음엔 미쉘 윌리엄스 영화를 3개나 보면서 이 여배우의 허무함에 감탄하고,(내 나름 허무의 여배우란 별명을 지어줬다.) 또 미묘하게 예민한 그녀의 성격을 보면서 나와 동일시하기도 했는데 <우리도 사랑일까>와 <블루발렌타인>, 그리고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이 그 영화들이다. 미쉘 윌리엄스는 이 세편의 영화에서 모두 굉장히 사랑스럽지만 사랑하는 남자에 의해서, 혹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변화에 의해서 부서져버리는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다. 마릴린 먼로는 아니지만 <우리도 사랑일까>의 마고와 <블루발렌타인>의 신디는 특히나 나와 비슷한 부분들이 많다고 느껴졌다. 특히나 가장 닮은 건 마고인 것 같다. 모든 부분에서는 아니지만 옛 연인과의 관계를 정리하는데 있어서 둘 간의 그 미묘한 감정의 변화(어쩌면 내가 상대방에게 느끼는 아주 미묘한 변화)를 크게 받아들이고(근데 이건 안정적인 관계였을 수록 감정의 변화가 더 크게 다가오는 게 맞는 것 같다) 흔들리는 나를 잡아달라고 루(남편)에게 표현하지만 둔한 남편은 미처 그걸 알아채지 못한다. 그럴 수록 마음의 허전함은 더 커지고, 새로운 사랑인 대니얼에 대한 마음도 함께 커져간다.
제일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나는 마고를 통해서 예전의 내 관계에 대한 정당화 작업을 했었다. 'New Things get old'라는 이 영화의 명대사. 결국에는 새로운 것도 곧 낡게 되고, 모든 관계 역시 그렇게 된다지만 나는 모든 관계가 그렇게 된다면, 그런거라면, 그렇다하더라도 지금 놓치고 싶지 않은 새로운 관계를 선택하는게 맞다는 생각이었다. 마치 마고처럼. 그리고 이 영화의 원제이자, OST 곡명이며, 주제이기도 한 'Take This Waltz'는 어쩌면 Every New Things get old이니 그냥 있는 그대로 관계의 변화,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며 비어있는 그 부분을 채우지말고 마치 왈츠를 추듯이 그렇게 살아가는게 맞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왈츠에서 박자의 변화, 음의 높낮이 등에 따라 몸을 움직이듯이 감정이 변한다면 그에 맞춰서 관계도, 내 마음도 변하는 것이 맞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니 난 waltz에 맞춰 단지 춤을 췄을 뿐이다. 어떤 사람은 변하는 박자에 몸을 맞추지 않고 그 어떠한 것 (말하자면 자신의 행복보다 타인에 대한 의무감을 더 중요시하는) 때문에 기존의 박자를 유지하려고 애쓰다보면 결국엔 발이 꼬여 넘어지는 것처럼 사람도, 인생도 그렇게 무너져버리는게 아닐까?
그리고 두번째 영화를 봤을 때도 미묘하게 놓친 부분들이 새롭게 보이긴 했지만, 한참이 지나 세번째로 보게 되었을 때 나는 마고가 아닌 '루'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특히 마고가 샤워를 할 때마다 위에서 찬물이 쏟아지는 장면이 반복되는데 그 때마다 마고는 샤워기가 고장난 것 같다고 고쳐야 할것 같다고 말한다. 처음 봤을 때는 별 생각없이 봤던 장면이라 나중에 그게 루가 했던 장난이란 걸 알고 '아 또 장난친거구나'(영화 속에서 루는 장난끼가 다분한데 또 이게 눈치 없이 아무 때나 장난을 쳐대서 마고의 심기를 거스르기도 한다.)하고 지나갔었는데, 어쩐지 세번째 볼 때는 이 장면이 너무 슬프게 다가왔다. 마고가 마지막쯤에 떠나간 대니엘을 붙잡아야겠단 생각에 루에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고, 결국 헤어지는 분위기로 흘러갈 때 루는 마지막으로 마고에게 기분이 좀 좋아질테니 샤워를 하는게 어떠냐고 제안한다. 그리고 마고가 샤워를 하는데 여전히 쏟아지는 찬물, 그리고 샤워 커튼 너머로 빈그릇을 들고 서있는 루.
"당신이었어? 매일?"
"응. 수십년 뒤에 내가 매일 이 짓을 해왔다는 걸 고백하려고 했어. 당신을 웃게 해주려고."
이 장면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평생 함께 할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수십년 뒤에 그녀를 웃게 해주려고 단지 웃게 해주려고 5년째 이 장난을 계속해왔던 루. 어쩌면 우리가 기존의 관계(오래된 관계일수록 더)에서 사랑이 식었다는 걸 깨닫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려고 할때 주저하게 되는 것은 이런 사소한 것들 때문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상대방의 마음들은 슬프기 그지 없지만 상대방의 행복을 위해서 내 행복을 포기할 순 없기 때문에 그렇게 또 헤어짐을 선택하게 되는거겠지. 기본적으로 함께하는 관계에서 나 자신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상대방도 진짜 행복감을 느끼기는 어렵다. 내가 행복하지 못하다는 건 상대방이 가장 먼저, 가장 가깝게 느낄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를 지속한다면 두 명 모두 불행해지는 길이며, 놓지 못하는 한명은 이미 사랑이나 행복의 감정이 아닌 집착이나 미련이지 않을까? 마더 테레사의 사랑과 우리들의 사랑은 다르니까. 그래서 이전 사랑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는 이별을 한다. 그리고 이별한 이전 사랑들의 무한한 행복을 바란다.
그리고 어제 저녁, 네번째로 이 영화를 봤다. 이번엔 정말 다시 한번 보고 싶어서. 이번엔 의외로 대니엘의 입장이었다. 대니엘의 입장이라기보다, 처음엔 흔들리는 마고의 마음에서 두번째엔 무디지만 여전히 마고를 사랑하는 루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이제는 대니엘과 마고 둘의 사랑이 시작되고 진행되는 과정들을 주의깊게 보게되었다.
예전에 사랑은 '저 사람 뭐지?' 라는 생각에서 시작되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두 사람 역시 '저 사람 뭐지?' 하고 한번 더 흘낏 쳐다보고, 괜히 웃게되고 하는 과정 속에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해간다. 그렇게 서로간의 감정을 서툴게 확인하고 당황해하는 마고, 그리고 너무나 편안하고 조용히, 하지만 거부할 수 없게 마고를 사로잡아가는 대니엘. 둘의 귀여운 장면들이 꽤 있지만, 난 개인적으로 '이미 넘어갔구만' 했던 것이 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아무 의미 없는 목걸이 불기 게임을 하고 있을 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장난을 둘이 한다는 것만으로 즐거울 때, 그게 바로 사랑이지 않을까?
그리고 "나를 어떻게 할 생각이예요?" 라는 대사. 처음엔 대니엘이 마고에게 묻지만 다음엔 마고가 대니엘에게 물었던. 마고는 이에 대해 아무것도 대답하지 못했지만, 대니엘은 그녀를 어떻게 사랑해줄지 자세하게 묘사했던 조금은 야한 장면. 그러다 결국 결정하지 못하는 마고에게 대니엘은 2040년에 만나자는 엽서를 남기고 떠난다. "나를 어떻게 할 생각이예요?" 관계가 시작될 때 어느 정도 감정의 교류가 있는데 생각만큼 진전되지 않을 때, 혹은 상대방의 감정(나를 사랑하는지)에 확신이 들지 않을 때 드는 전형적인 생각이지 않을까? 하지만 결국 자신의 감정이 확실하다면 상대방이 어떻든 간에 말을 하는게 맞는다는 걸 대니엘에게서 배웠다. 그리고 마고의 모습을 통해, 새로 나타난 사랑앞에서 힘들고 어려울 수 밖에 없는 혼란스러운 감정의 변화를 이해하게 되었다.
아, 아마도 나는 이 영화를 앞으로도 종종 보게 될 것 같다. 다음에 이 영화를 볼 때는 누구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올까? 어떤 사람은 미묘한 감정의 변화, 크랙에 무심하게 흘러가며 살기도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그걸 그냥 모른체 하고 지나갈 수 없는 사람이라서, 이런 내 감정의 변화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그리고 역시나 인생은 항상 꽉꽉 찰 수 없지만, 그 빈틈마저도 기꺼이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그렇게 함께 박자의 들어옴과 나감, 음의 높낮이에 발을 맞춰서 Take This Waltz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