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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유정 Apr 03. 2023

1.2000년 가을 어느날, 운명처럼

뭉치를 처음 만난 날.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어렸을때 집에 강아지가 몇 번 온 적이 있다.

아버지의 지인이 그 당시 쇼 독을 키우는 분이었다고만 전해들었는데, 우리 집에는 아기 복실이(믹스견), 진돗개, 콜리, 치와와 등이 왔다갔다.


모두 잘 키워보겠다고 데리고 왔다가 조금만 컨디션이 안좋으면 어느날 학교갔다 와보면 집에 개가 없어져있었다. 그 개들이 가고나면 어른들은 항상 똑같은 말을 했다.

"집에 개띠랑, 범띠가 있어서 개 안된다."

정말일까? 


그 의문은 한 동안 나를 따라다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져갔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고,  길에 돌아다니는 개들(그 당시엔 유기견이나 동네개들이 풀어진 채로 종종 돌아다녔다.)을 만나는걸 무서워하는 어른이 되어있었다.


어느날은 길 한가운데서 개 두마리가 서로를 베고 자는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쳐다보다가 그 중 한마리가 갑자기 잠에서 깨 나를 보고 엄청나게 짖는 바람에 온 몸이 마비되는 것 같이 옴짝달싹을 할 수 없을만큼 무서웠다.


그런 내가, 갑자기 개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된 건 정확이 어떤 이유인지 설명할 수 없다. 어쩌면 정말로 충동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는 언니랑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반월당의 애견샵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딱 봐도 허름한 그 가게안에 있던 아기 뭉치가 유리창 밖에 서있는 나를 보고 반갑게 꼬리를 치고있었다.


그냥 자석에 이끌린것처럼 안으로 들어가 물통과 방석, 밥그릇과 사료를 가득안고 집으로 작은 솜뭉치를 데리고 갔다. 가기 전에 당시 독립한 우리집에 와있던 모친에게 "나 개 키울거다. 데리고 간다." 라고 하니까 기절하면서 안된다고 했는데, 이제 그 집의 세대주는 나니까 왠지 허락 따위는 필요없게 느껴졌다.


집에 가자마자 애견샵주인이 알려준대로 신문지를 가득 깔고 사료를 불려 먹였다.

애견샵 주인 말로는 물바뀌면 탈난다고 물을 함부로 주지 말라고했던것 같았다.


오자마자 이 작은 녀석의 이름을 지어주는게 첫번째 과제였지만 우선은 밤이라 서로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긴장되는 하루를 마무리했다.


문제는 그 다음 날 부터였다. 분명 집에 올 때는 진짜 건강하고 활기찼는데, 갑자기 상태가 나빠졌다.  아버지가 급작스럽게 심장바비로 돌아가신지 5년이 조금 더 지났을때라 우리 가족에게는 죽음과 이별의 트라우마가 있었기때문에 작은 강아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모친은 " 아이고, 나는 이제 죽는건 싫다. 얼른 데려다줘라."


동물병원으로 가서 파보바이러스 검사도 하고, 홍역검사를 비롯해서 아기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병에 대한 검사를 했는데 아니었다. 일단은 집으로 데리고 와서 하루를 보냈는데 1kg도 안나가는 이 작은 생명체 때문에 거의 밤을 샜는데 밤에는 갑자기 쇼크가 와서 기절까지 하고 잇몸이 하얗게 변해있었다.


저녁에는 걸레를 빨려고 하는데 갑자기 들어와서 대야에 있는 물을 허겁지겁 먹어서 난리를 한바탕쳤는데, 엄마는 개한테 물을 안준다고야다이었다. 난 분명히 애견샵 주인에게 물이 바뀌면 장에 탈이난다고 들었고, 사료를 물에 불려서 주니까 수분 섭취를 할 수 있다고만 들었다.


어디서부터 잘못이해한걸까? 다음 날 다시 찾은 동물병원에서 엄마가 "야가 개한테 물을 안준다 아입니꺼.?" 라고 하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 "물을 왜 안주는거에요? 물이 가장 중요한건데.?" 나는 그제서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달았다. 


집에 오자마자 물을 한 그릇 떠주었더니 허겁지겁 쉬지 않고 물을 마셔댔다. 작은 강아지가 우리 집에와서 뭣도 모르는 반려인을 만나서 며칠만에 저세상갈뻔했는데, 그게 겨우 물때문이었다니.


그만큼 무식하고 멍청한 반려인이었다. 처음으로 생명에 대한 책임감과 두려움이 생긴게 바로 그 때였다. 그 뒤로 작은 강아지 뭉치는 장소가 바뀌면 무조건 물을 원없이 마시는 습관이 생겼다. 아기때 한 번 식겁한 경험 때문이었을까?


그 사이 나는 애견샵에 돌려보내야하나, 누군가 잘 키워줄 사람에게 보내야하나를 걱정하며 나의 충동적 선택에 대해서 괴로워하며 며칠간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그 결말이 다행히 해피엔딩이라 그렇게 뭉치와의 생활이 신고식 한 번 제대로 치르고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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