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선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단편소설 <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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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 그렇지 않니?”
권여선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에 수록된 단편소설 「봄밤」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요양원에 있는 동생 부부의 면회를 가며 언니 '영선'이 운전대를 잡은 동생 '영미'에게 건네는 첫 문장이다. 숨 막히는 대화다. 이들의 동생 부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요양원이라는 단어에서 삶의 무게가 가중된다.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질병의 문제와 그로 인해 껴안게 될 고통의 의미를 마주하게 한다.
술 마시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권여선 소설집은 '안녕 주정뱅이'라는 제목으로 비극적인 삶에 슬픈 농담을 건넨다. 단편소설 「봄밤」은 술이 위로 되고 사랑이 되는 중년 부부의 이야기 속에 삶의 애환과 꺼지지 않는 사랑의 온기를 전한다.
「봄밤」은 권여선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에 담긴 일곱 편의 단편소설 중 한 편이다. 소설가 권여선은 1965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로 제2회 상상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이외에도 오영수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소설집 『처녀치마』, 『분홍 리본의 시절』 등이 있고, 장편소설 『레가토』, 『토우의 집』이 있다. 그녀의 작품 속에는 '술'이 자주 등장한다. 작가 자신이 애주가여서인지 술과 술자리를 자연스럽게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단편소설 「봄밤」은 술을 소재로 중년의 애환과 사랑을 그린다. '영경'과 '수환'은 신랑 신부의 친구로 결혼식에 참석해 뒤풀이에서 만난다. 수환이 술에 취해나가떨어진 영경을 업고 집까지 바래다주면서 인연이 시작된다.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상처를 안고 살아온 영경과 수환은 그날 이후 매일 저녁에 술을 마신다. 수환이 술에 취한 영경을 업고 바래다주는 일을 반복하다가 살림을 합치게 된다.
수환은 영경의 알코올중독을 말리지 않는다. 서로의 상처를 인정하고 보듬으며 끌어안고 살아간다. 12년이 흘러 수환은 류머티즘이 합병증으로 심해지고, 영경은 알코올중독과 간경화로 함께 요양원에 입소한다.
"그녀를 업었을 때 혹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앙상하고 가벼운 뼈만을 가진 부피감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봄밤이 시작이었고, 이 봄밤이 마지막일지 몰랐다."
수환은 결혼식에서 영경을 처음 만나던 봄날을 생각한다. 그의 기억 속에 영경은 화장했는데도 눈가는 쌍안경 자국처럼 깊게 파이고 볼은 말랑한 주머니처럼 늘어진 모습이었다.
이들에게 봄밤은 처연한 사랑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누군가는 죽어라고 열심히 살아도 그 끝이 낭떠러지인 사람이 있다. 중년 부부인 영경과 수환의 삶이 그랬다. 작은 성공에 이은 실패와 이혼, 배신 등 불행은 연이어 불행을 업고 왔다.
이들에게 '술'은 아픔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약이다. 고단한 삶을 위로해 주는 벗이다. 봄밤, 그렇게 소리 없이 남녀 사이를 오가며 술은 위로가 되고 사랑이 되어준다.
「봄밤」의 주인공 영경의 이야기는 '안녕 주정뱅이'로 농담처럼 건넬 수 없는 비극적인 삶의 애환이 담겨있다. 아이를 빼앗기고 알코올중독이 되는 그녀에게 '술'은 위로가 되고 사랑이 된다.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소중히 다루는 수환의 모습에서 기대고 싶은 온기가 느껴진다. 이와 달리 그녀의 삶을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언니의 시선에서 무심하고 냉정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엿보인다.
힘겨운 상황이지만 서로를 위로하고 배려하며 상처를 봉합하는 그들의 사랑을 타자의 시선으로 불행하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행복은 상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개개인에게 절대적인 가치라는 것을 깨닫는다. 타인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해의 폭을 넓혀가고 싶은 분들에게 이 소설을 추천한다. (p.78-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