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 스테이는 여기저기서 여러 번 해보았던 경험이 있고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체험형과 휴식형으로 나누어져 있다. 특별히 자신이 믿는 신앙을 떠나 문화 혹은 타 종교를 접해 보는 기회로 한 번쯤은 체험형을 선택해 보아도 좋겠다. 스님과 차담시간, 예불, 암자 포행, 묵주 만들기 등을 경험해 볼 수 있다. 몸과 마음이 지쳐 고요히 머물며 그저 푹 쉬고 싶다면 휴식형이 자유롭다.
휴식형은 대부분 사찰에서 지켜야 할 기본예절을 안내받고 공양(식사) 시간만 지키면 된다. 밥을 먹고 싶지 않으면 그냥 건너뛰어도 되지만 먹는다면 공양 시간은 꼭 지켜야 한다. '
마당 넓은 한옥집주인이 된 하룻밤
주말에 40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주말 예약은 이미 5개월 후까지 다 찼다고 한다. 평일 또한 몇 팀씩은 있는데 드문 일이 일어났다. 연휴가 막 끝난 시점이라 그런지 그날 템플스테이 하는 사람이 우리 부부 달랑 두 사람뿐이다. 그 넓고 고요한 공간을 우리 둘만 호젓하게 누리게 되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있고 옆으로 도솔천이 흐른다. 마당 넓은 대갓집 한옥의 주인이 되어보는 호사라니! 자유의 날개가 소리 없이 펼쳐지는 느낌이다.
템플스테이 숙소
수련복으로 갈아입으니 우선 복장부터 편안해진다. 오리엔테이션은 절에서 스님을 만났을 때나 공양할 때 지켜야 할 예절 안내로 간단하게 끝이 났다. 다실에 마련된 차는 언제든 자유롭게 마실 수 있고 우리가 머무는 방 바로 옆에는 자그마한 북카페도 있었다. 너른 통창 앞에 원목으로 만든 긴 책상이 맞춤처럼 놓여 있다. 새벽에 그곳에 앉아 책을 읽으니 서늘한 공기가 스미고 청아한 새소리가 정신을 맑게 일깨운다. 차 한잔을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였겠다. 북카페에서는 차를 마시지 말라고 안내돼 있어 아쉬웠다. 집에서 차를 옆에 두고 마시며 책 읽는 습관이 들어서인지 그 새벽과 저녁 분위기에서는 더 간절했다. S는 여전히 잠들어 있고 아무도 보는 이 없다지만 지킬 건 지켜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차 한잔의 유혹을 꾹꾹 눌렀다.
선운사 템플스테이 북카페
템플스테이 숙소는 대부분이 사찰 경내에 있거나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그런데 선운사는 일주문을 들어서 1km나 더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뚝 떨어져 암자 가는 길에 있으니 경내를 방문한 사람 소리조차 끊어진 곳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내놓으라 하는 모 기업에 입사한 어느 사회 초년생이 번아웃 상태에서 이곳을 찾아 몇 날 며칠 잠만 자고 갔다고 한다. 청정 자연 속 아무 간섭 없는 시간 속에서의 쉼이 치유가 되고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기운을 받아 가지 않았을까 싶다. 사람들이 왜 이곳을 찾는지 그 마음을 헤아리고 형식이나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사찰의 배려도 편안함을 더해 준다.
도솔천
첫 저녁 공양은 시간과 앉을자리 안내를 받았다. 산사에 머물며 절에서 제공하는 한 끼 식사는 그저 감사함이 담겨 맛이 없을 게 없다. 산나물이며 계절 채소와 과일 등 내가 먹을 만큼 담아 오면 진수성찬이 된다. 스님들을 비롯해 절에서 일하는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함께여도 묵언 공양이라 조용한 분위기다. 각자 사용한 식기는 본인이 설거지까지 마치고 나온다.
숙소에서 공양을 위해 경내까지 10~15분 정도 걸어야 한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길이 나 있다.숲 속 오솔길을 걷는 맛이 그만이다. 공양을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무장애길을 택했다. 한쪽엔 차밭이 펼쳐지고 다른 한쪽은 오랜 수령의 나무들이 길게 길까지 드리워졌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차밭에서 차를 따는 고즈넉한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공양 시간 사찰 경내로 가는 오솔길
녹차밭과 무장애길
도솔암 진흥굴 마애불 내원궁 천마봉 포행
둘째 날은 아침 공양을 마치고 산책을 다녀왔다. 숙소에서 도솔암까지는 1.9km 거리다. 도솔암에 이르기 전 신라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을 먼저 만났다. 진흥굴 앞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장사송의 웅장하고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한참을 올려다봤다. 나이는 600살이 넘고 키는 23미터 둘레 3미터에 이른다. 진흥굴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도솔암이다.
진흥굴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장사송
도솔암까지만 다녀왔다면 가벼운 산책이 되었을 테지만 포행 코스를 두루 다녀오니 6km가 넘는 거리다. 보통 3시간 30분 코스라는데 2시간 30분 만에 다녀왔다.
우리는 코앞에 도솔암을 두고 갈림길에서 먼저 천왕봉으로 향했다.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됐다. 계단을 따라 오르는데 급경사로 아찔하다. 천길 낭떠러지였을 곳에 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것처럼 힘이 들면 이 험난한 지형에 계단을 설치했을 누군가의 수고를 생각하며 한 계단 한 계단 올랐다.
천마봉에 이르기 전 평평한 바위에 서니 탁 트인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건너편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상도 눈에 들어온다. 산새를 굽어보며 잠시 땀을 식히고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천마봉에 오르니 도솔암이며 마애블 등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천마봉에 오르며 건너편으로 보였던 마애불
가파른 오르막과 아래에서 올려다본 천마봉
천마봉(284m)
하산하는 길은 낙조대를 거쳐 능선을 타고 내려오니 한결 수월하다. 용문굴을 지나 도솔암에 도착하기 전 조금 전 건너편 산에서 내려다보았던 마애여래좌상을 가까이서 만났다. 커다란 바위벽에 신체 높이 15.7m로 연꽃무늬를 새긴 받침돌에 앉아있는 모습이 장엄하다.
보물로 지정된 마애여래좌상
마애불 옆으로 108 계단을 오르면 험준한 바위 위에 자리 잡은 도솔암 내원궁이 있다. 입구에 생수가 쌓여있고 배달은 거기까지였는지 올라올 때 들어주면 감사하겠다는 메모를 보고 S는 보시한다며 한 뭉치를 번쩍 들고 오른다. 10kg의 무게를 지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는지 몇 번을 멈추어 선다. 힘들게 보시해서 더 뿌듯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원궁까지 생수 올려 주며 보시 중인 S
암자의 이름인 도솔이 도솔천(미륵이 산다는 이상 세계)을 의미하여 내부에 미륵보살을 모셨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지장보살을 모셨다. 그 이유는 미륵이 이미 내원궁 아래에 있는 마애상으로 내려와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의 부탁을 받아 그가 죽은 뒤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모든 중생 특히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내원궁 안에서는 지장보살이 밖에서는 미륵불이 세상 안팎으로 중생들을 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일까 누구든 이곳에서 소원을 간절히 빌면 꼭 하나는 들어준다 하여 대한민국 기도의 효험이 가장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내원궁을 처음 지은 건 통일신라 때이다. 당시 이곳은 왕족들만이 출입할 수 있었던 곳이었단다. 내원암이 아닌 궁이라 칭한 유래이다.
도솔암 내원궁과 보물 제280호로 지정된 금동지장보살좌상
내원궁과 마애불이 있는 곳에서 아래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도솔암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행사 준비에 분주한 모습이다. 숙소에서 도솔암 가는 길 반대쪽으로 도솔폭포도 있다. 들러볼까 하다가 땀을 흘려 샤워도 하고 잠깐 쉬었다 퇴실하고 싶어서 그냥 지나쳤다. 1박 2일이 아쉽기만 하다. 다음날 일만 없었다면 하룻밤 더 머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이번 고창 여행에서 선운사 템플스테이는 기대 이상이었다. 적어도 2~3일 정도의 시간을 내어 다시 찾고 싶을 만큼 여운이 남았다.
1박 2일 고창 여행의 마무리는 보양식 풍천장어로
이제 먼 길 달려 집으로 가야 한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고창까지 왔는데 보양식 풍천 장어구이를 빼놓을 수 없다.장어는 인공 산란과 부화가 불가능해 본격적인 농사철을 앞둔 3월~5월 사이 고창 사람들은 치어인 실뱀장어를 잡아 1년 동안 기르는데 이게 바로 풍천장어다. 장어가 스태미나에 좋은 음식으로 알려져 있는 이유가 있다. 가느다란 실뱀장어가 수천 km 바다를 거슬러 올라오는 힘찬 몸짓 때문이다. 특히나 가장 많이 움직이는 장어 꼬리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꼬리부터 냉큼 맛볼 일이다.
선운사 주변에도 풍천장어구이 간판이 지천이다. 혹시나 하고 예전에 갔던 곳을 찾아보니 여전히 영업 중이라 반갑게 찾아갔다.노릇노릇 구워서 먹기 좋게 잘라준다. 후식으로 바지락 칼국수 한 그릇도 빼놓을 수 없다. 국산장어 50% 수입장어 50%가 유통된다고 한다. 국산장어 50% 중에 절반이 고창에서 판매되고 있다고 장어집 주인장이 귀띔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