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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의 영혼 Oct 14. 2023

황혼이혼보다 친구처럼 사는 건 어떨까!

결혼 30주년에 드는 생각

틈만 나면 제주 올레길 걷기를 좋아했던 남편이 이번 12월에는 동남아 여행을 다녀오잔다. 가고자 하는 곳은 우기에 들어가지만 우기라고 온종일 비가 내리는 건 아니지 않냐고. 그리고 비가 오면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리조트를 숙소로 잡자고 한다. 머무는 곳은 깔끔하고 편리하면 된다는 평소 생각과 달리 좀 괜찮은 곳으로를 강조한다. 12월이면 아직 시간적인 여유도 있는데 9월부터 서둘러 항공권도 예약하고 여행 정보 수집에도 적극적이다. 내게 이건 어때 저건 어때 라며 물어오면 그냥 시큰둥하게 뭐 알아서 하시오로 일관했다. 왠지 여행 스타일이 지금까지 와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아무 생각 없었던 나와는 달리 남편은 올해가 우리 결혼 30주년이라는 걸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그랬었군! 고맙네!


인생 100세 시대로 보자면 우리는 앞으로도 지금껏 함께 한 시간보다 더 오랜 세월을 동고동락해야 한다.

자석처럼 끌렸던 달콤한 사랑으로 부부의 인연을 맺고 자식을 키우며 한 가정을 유지해 왔다. 그 사이 사랑이라는 단어는 점점 퇴색되어 갔고 미운 정 고운 정이 그 자리를 채웠다. 부모한테 물려받은 재산도 없이 신혼 산림은 월세부터 시작했다.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내 집 마련을 하며 아이 둘을 키웠다. 부모가 되는 건 우리도 처음이었으니 좌충우돌하며 지나온 시간들이다. 큰 아이가 어릴 적에는 병원 신세를 많이 지다 보니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도 큰 근심이었다. 그 후로 건강해졌고 지금은 둘 다 성인이 되어 자립을 했다.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남편이 사업을 접었다. 오랜 시간 일본과 수출위주로 거래를 했고 정치적으로 두 나라가 최악의 상태가 되자 더는 버티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은퇴할 나이도 아닌 너무 이른 시기였다. 직장 생활 한 번 해본 적 없는 남편이 사회에 나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 전전긍긍하며 어두운 터널에 갇혔다. 옆에서 지켜보다가 힘을 보태야겠다 싶어 내가 하던 일을 그만두고 함께 했다.


 그 사이 큰 아이는 졸업 후 취직을 했고 작은 아이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은 대학교 까지라고 일찌감치 선언했다. 아이들로부터 자유로워졌고 힘든 시기도 또 한고비 넘겼다. 이제 온전히 우리 부부의 시간을 설계해야 할 때다. 우리는 도시를 떠나 시골살이로 새로운 삶을 선택했다. 용기가 필요했고 여전히 힘든 준비 과정에 있지만 몸도 마음도 자연에서 평생 노동하며 건강하게 사는 게 우리의 노후 준비다.


요즘 황혼 이혼이 늘어난다고 한다. 결혼 생활 20년 이상 유지한 부부가 이혼을 하면 황혼이혼이라 한다. 이혼을 경험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정서적 신체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우울증에 걸리거나 사회적으로 고립될 위험, 신장병 당뇨 암과 같은 중증질환에 걸릴 위험도 20%나 더 높게 나왔다고 한다.

이혼이 최선일까. 혼자 살거나 또 다른 배우자를 만나면 모든 게 좋기만 할까!


오랜 세월 함께 살다 보니 좋은 점보다 부족한 면이 점점 더 두드러져 보인다. 가슴 두근거리는 사랑이 아닌 미운 정 고운 정이 쌓인 덤덤한 사이가 되더라.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언제까지일지 알 수 없다.

서로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결혼이 자연적인 끌림이었다면 30년이란 세월을 굽이쳐 온 지금은 서로가 노력해야 함께 사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시기다. 이제 친구 사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집안에서는 각자의 공간을 마련하고 길 위에 서면 함께이지만 혼자인 듯 걷기도 한다. 일상에서 많은 걸 간섭하지 않고 편하니까 함부로 하는 언행을 삼가려고 노력한다.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부부로 맺어진 인연에 상처 내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친한 친구처럼 살아가기 위해.

내 생각이 과거나 미래에 있지 않고 현재의 순간에 긍정으로 깨어 있기를 소망한다. 눈 뜨고 맞이하는 하루 또 하루를 소중하고 감사히 여기리라. 우리 서로  늙어가는 게 아닌 익어가는  사이로 함께할 수 있음에 새로운 삶의 에너지가 생성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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