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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의 영혼 Jan 03. 2024

연필과 지우개랑 친해지기로 했다

 나는 지금 내가 가진 이 물건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집 정리를 하며 분명 잘 보관한다고 한 게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한동안 속상했다.

연필과 지우개 그리고 깜찍한 수동 연필 깎기!

어느 지방을 여행하며 서점에 들러 사 왔던 것들이다. 언젠가 연필로 손글씨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데려왔었다.


  이제 내겐 한 해 끝자락이나 새해 시작이 별 특별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형식적인 인사치레로 보내는 메시지도 내키지 않고 받아도 특별히 감흥이 없다.


  아이들이 연말 연휴에 집에 온다기에 아이들 물건과 책장의 책들을 몽땅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정리하라고 했지만 1년이 지나도 정리할 생각을 하지 않아서다. 독립해 살고 있다지만 좁은 공간의 자취 생활이다 보니 계절별 옷이나 책 잡화 등이 그대로 본가에 남아있다. 그대로 둔다면 언제까지고 창고 물건처럼 쌓여 있겠다 싶어 작심하고 행동에 옮겼다.


  왜 꼭 지금 해야 하냐며 투덜거리던 아이들은 정리하며 지난 추억도 끄집어내 키득키득 즐거워한다. 귀찮게만 여겼지 정리의 즐거움인 이 맛은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힘들다면서도 막상 정리를 끝내고 나서는 기분이 좋아진 모양새다. 내친김에 지난번 정리한 우리 부부 책장도 다시 한번 정리했다. 비우고 개운함으로 한 해를 마무리 한 셈이다.


  공간의 여유가 생기자 책장 한 칸에 자리 잡은 네모상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열어보니 그렇게 애타게 찾던 물건이 그 안에 다소곳하게 담겨있는 게 아닌가. 어찌나 반갑던지 이다음 언젠가로 미루어 두었던 일은 지금 바로가 되어 다음날부터 필사에 들어갔다.


  산골로 들어가 조용한 일상으로 자리 잡게 되면 아침에 일어나 시 한편씩 연필로 필사하며 하루를 시작하리라 생각했었다.

연필과 지우개를 찾고 보니 그게 뭐 이다음 언젠가로 미룰일인가 싶었다. 아니 연필을 깎아보고 싶었고 쓰다가 틀리거나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우개로 지워도 보고 싶었다.


  책장에서 가장 먼저 손이 갔던 책은 시집에 앞서 내가 좋아하는 박노해 시인의 사진 에세이다. 전시회에서, 라 카페 갤러리에서 사진전을 감상하고 현장에서 구매했던 책들이다. 두고두고 보려 했던 책이기에 책장 정리 하면서도 버리지 않고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좋아하는 책을 꺼내고 연필을 깎는다. 사각사각 종이 위에 글자가 박히며 내는 소리가 마음의 찌꺼기를 씻어내고 정화되는 기분이다. 행복하다. 이 행복을 날마다 누리며 살리라고 새해 다짐을 해본다.

내 마음을 풍요롭게 만드는 물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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