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작은딸이 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라며 어딜 가고 싶냐고 물어왔다. 올해가 엄마 환갑이잖아 하는데 요즘 시대에 누가 환갑을 얘기하니 해놓고 생각이 꼬리를 문다. 아니 내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된 거야! 놀라워라 언제 이렇게까지 온 거지! 새삼 나이를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시골살이 준비로 많이 지쳐있었고 마음이야 어디론가훌쩍 떠나 좀 쉬고 왔으면 싶었다. 하지만 집 짓는 일이 한창 진행 중일 때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월요일 새벽 4시가 되면 서둘러 나설 준비를 하고 평창으로 내달린다. 금요일 새벽이 되면 고단한 몸을 일으켜 이번엔 반대로 일산으로 향한다. 올봄 집을 짓기 시작하며 몇 개월째 반복된 일상이다. 그렇다 보니 시공간에 대한 인식이 무디어졌다. 당연히 내 생일이 다가온 줄도 모르고 있다가 딸들이 함께 식사할 날짜와 시간을 잡자고 해서 알게 되었다.
집에서 걸어갈 만큼 가까운 거리지만 우리 부부는 알지 못했던 특별한 파스타 식당을 딸이 예약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음식과 맛이 행복감을 더해줬다. 식사 후 집으로 돌아와 먹기 아까울 만큼 예쁜 케이크로 온 가족의 축하를 받았다. 잠시 후 큰딸이 큼직한 서류봉투 하나를 건넨다. 봉투 안에는 책 한 권이 들어 있었다. '머물지 않는 바람의 영혼처럼' 책 제목이 어디서 많이 본듯한 느낌! 어! 하는 순간 작은 딸이 내미는 여러 권의 같은 책. 아니 이게 뭐야! 하는 순간 딸이 "맞아 엄마 블로그 이름이잖아" 한다. 가끔 브런치에 올리는 글 외에 다른 SNS 활동을 접은 지 몇 년째가 되다 보니 블로그 이름도 가물가물해졌다. 두 딸이 엄마 환갑 선물로 특별히 준비해 만든 나의 책이다.
큰딸이 이직하면서 한 달 쉬는 사이 출판사 다니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서 직접 인디자인해 만들었다고 한다. 인디자인을 처음 해봤다면서 2주의 시간을 갈아 넣었다고. 브런치 스토리는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았는데 어찌 찾았는지 글은 엄마 브런치와 블로그에서 뽑아냈다. '길 따라 바람 따라 행복한 걷기 여행' '삶의 여정' '우당탕탕 좌충우돌 가족여행'이라는 3개의 카테고리와 중간에 간략한 두 딸의 글(내가 생각하는 엄마)이 들어가 있다.
상상도 못 했던 선물이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감동과 고마움에 그만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여행가로 활동하며 한국관광공사나 여행전문 잡지 등에 기고한 글을 모아 책 한 권 내볼까 했던 시기에 모든 것을 접었기에 그만큼 아쉬움도 컸었다. 그러니 이루지 못한 꿈의 조각 하나를 두 딸이 채워준 셈이다. 내겐 지금껏 받아 본 생일선물 중 최고의 선물이다.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니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딸이 새삼 대견하고 듬직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