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촬영을 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손길로 메이크업을 받아야 한다. 그날도 그랬다. 메이크업을 한창 받던 도중에, 내 얼굴 앞에서 파운데이션이 푹하고 터졌다. 파운데이션 튜브 안에 들어 있던 공기가 빠져나오면서 파운데이션이 푹 하고 터져나온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고, 얼굴에는 군데 군데 파운데이션이 묻어 있었다. 다행히 옷이 더러워지지는 않았다. 메이크업해 주시는 선생님은 죄송하다고 말씀하시며, 연신 사과를 하셨다. 근데, 난 뭐 별로 크게 기분이 상하진 않았다. 어차피 얼굴에 바를 파운데이션, 미리 흩뿌려지듯 바른 것일 뿐. 적절하고 빠르게 사과를 받았고, 그러니 기분이 상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라고 말했더니, 나보고 “엄청 쿨하시네요.”라고 말씀하셨다. 쿨하다는 말을 듣고 나니, 내가 아주 배포 있는 큰인물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같은 상황은 또 있었다. 촬영을 하러 스튜디오에 갔는데, 촬영해 주시는 PD분이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시간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잘 하지 못한다. 마음속에서는 화가 났지만, 죄송하다고 하시며 뛰어 들어오시는 PD님을 보고 “괜찮습니다”라고 말했다. 괜찮지 않다는 티를 팍팍 내면, 이어서 진행하게 될 촬영에 지장이 생길 것 같아서였다. 나는 화를 내고 난 뒤의 나의 감정을 불편해 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 날도 괜찮다는 말을 하며 내 마음이 괜찮아지길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내 기분은 괜찮아지지 않았고, 일부러 괜찮다고 말하는 감정의 호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불편해졌다. 겉모습만 보았을 땐, 이 상황에서도 나는 PD님을 쿨하게 이해해 준 사람이 되었겠지만, 앞선 상황과 마음가짐은 달랐다. 왜일까?
우리말에도 ‘쿨하다’라는 말과 비슷한 ‘거쿨지다’라는 말이 있다. ‘몸집이 크고 말이나 하는 짓이 씩씩하다.’라는 말이다. 전자의 상황에서 내가 쿨하고도 기분 좋을 수 있었던 것은, 내 내면이 씩씩한 상태였기 때문이었을까? 그래, 그랬던 것 같다. 프로필 촬영을 하는 이유가 야심차게 새로 시작하는 일 때문이었으므로, 나는 내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썩 맘에 드는 상황이었으니, 씩씩하게 살아갈 힘이 있었고, 꼬인 것 없이 상대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럴 땐 쿨하게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후자의 상황에서는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하던 일에서 인정을 받고 있지 못했고, 내가 하는 강의가 아이들에게 닿기나 할까 의심하던 시기였다. 그러니 누군가의 말을 꼬아 듣고, “쟤 나 무시하나?”라는 내면의 소리로 점철되어 있었을 수밖에. 씩씩하지 못했고, 주눅 들어 있었다. 남을 이해하는 마음 따위는, 쪼그라든 자존감, 그 주름 사이 사이에 끼여 보이지도 않았다. 내 상황이, 내 마음 상태가 나를, 쿨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었다.
‘거쿨지다’의 뜻에는 ‘몸집이 크고’라는 말이 들어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씩씩함은 몸집에서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많이 먹어 몸집을 키우는 정성까지는 아니더라도(뭐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의도적으로라도 어깨를 펴고 허리를 세우고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열심히 운동한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며 자신감을 얻는다. 거울을 보고 어깨를 펼치고 두 팔을 약간 벌려 근육을 자랑하면서 말이다. 때로는 내 몸이, 마음가짐을 만들어내기도 하니까, 난 이제부터 쫄리는 상황에서 더욱 어깨를 펼쳐볼 작정이다. 씩씩하게 나를 응원하고, 쿨하게 남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