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선희 Jul 24. 2024

좋아함, 사랑함, 함함함

중학생 시절, 중간 고사나 기말 고사 마지막 날, 등교할 때 엄마한테 묻는다.  “이따 거기로 바로 가면 돼?”라고. 그러면 엄마는 “응, 거기로! 만두도 먹자!”라고 말했다. 우리 집 근처에는 함흥냉면을 파는 음식점이 있었는데, 평양냉면은 커서야 알게 되었고, 어린 나는 그때 맛보았던 냉면이 냉면의 전부인 줄 알았다. 나는 물냉면, 엄마는 비빔냉면, 가운데에 만두 한 접시. 시험 끝나고 나면 엄마가 수고했다고 주는 선물이었다. 시험을 잘 봤을 때도, 못 봤을 때도 상관없이, 그냥 수고했다는 이유만으로 먹을 수 있었던 음식, 아무런 부담 없이 마주할 수 있었던 음식, 그 짭짤한 보상이 난 참 좋았다.


함께 먹는 만두도 참 좋았는데, 엄마는, 접시에 만두 하나를 가져다 놓고, 숟가락으로 만두 위 반절 정도 되는 지점에다 틈을 만든 다음, 그 안으로 간장을 쪼르르 부어 먹는 거라고 알려줬었다. 나중에 나처럼 만두를 먹는 사람을 만나면, 엄마가 같은 것마냥 너무 반가웠다. 흡사 한 배에서 나온 것 같은 친밀감이 느껴졌달까.

엄마는 시험에 대해선 단 한 글자도 묻지 않았다. 이때는 뭘 공부해야 하고, 어떤 과목 공부가 부족하니 학원을 보충해서 다녀야 하고… 등등 그 어떤 말도 엄마는 하지 않았다. 정보력으로 움직이는 다른 엄마들과는 달랐다. 시험을 못 봤다고 아쉬워하면, 엄마가 하는 말이라고는, “다음에 잘하면 되지”가 전부였다. 그렇게 엄마의 말은 싱거웠고, 내 입술에 닿는 함흥냉면의 육수는 짭쪼름했다.


시험 마지막 날의 이러한 이벤트는 언제 사라졌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였을까. 나는, 시험 끝나면 친구들과 만나 노는 게 더 좋아졌고, 엄마는, 더 이상 그럴 여유가 없어졌던 것 같다. 함께 지내는 할머니를 챙겨야 했고, 집안형편이 팍팍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이벤트를 부담스럽게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둘 다의 변화로 사라진 이벤트이니, 어느 한쪽이 섭섭해지지는 않았을 것 같아 다행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는 갑자기 섭섭한 마음이 밀려왔다. 냉면의 전통을 오래 이어가지 못했다는 것이 엄마의 응원이 끊긴 것 같아 아쉽기도 했다. 엄마의 응원이 끊긴 것이 아닌 걸 알면서도.


나이가 든 지금도 엄마를 만나 “뭐 먹을까?”라고 하면, 엄마는 “여름에 냉면 말고 먹을 게 있니?”라고 한다. 여름에 먹어도 맛있는 수많은 음식들이 들으면 서운할 말을, 이열치열을 굳게 믿으며 뜨거운 불앞에서 요리를 하는 많은 음식점 사장님들이 서운할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여름에 딸과 함께 먹어 좋은 음식엔 냉면이 유일한 것처럼. 그렇게 냉면을 먹으며 엄마는 또 이래도 ‘잘했다’, 저래도 ‘잘했다’, ‘다음에 잘하면 되지’, ‘좋은 게 좋은 거다’와 같은 싱거운 말들을 했다.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딸내미의 생각을 그저 믿어 주고, 잘했다, 예쁘다 해 주시는 거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함함하다고 하지 않던가. ‘함함하다’는 ‘털이 보드랍고 반지르르하다. 소담하고 탐스럽다.’라는 뜻이다. 나는 이 단어를 더 쉽게 기억하는 방법을 안다. ‘함함하다’의 다른 말은, ‘좋아함’ ‘귀여워 함’, ‘걱정함’, ‘사랑함’. 그래서 ‘함함하다’이다. 엄마의 모든 마음을 한 단어로 만들 수 없어, 모든 마음을 나타내는 말과 결합할 수 있는 말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그렇게 만들어진 단어가 ‘함함하다’라고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정리해 본다. 엄마가 그래서 ‘함’흥냉면을 사줬나? 또 다시 난 이상한 우리말 연결고리에 빠졌지만, 유난히 오늘은, 차가운데 따뜻한 함흥냉면을 엄마와 함께 먹고 싶어졌다. 엄마를 ‘좋아함, 보고싶어 함, 존경함’, 함함한 마음과 함께.

작가의 이전글 콩팔칠팔하는 칠팔 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