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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선희 Sep 25. 2024

지지재재? 난 GG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을 진행하는 재재는 유튜버이면서 굉장히 훌륭한 인터뷰어이다. 자신이 인터뷰할 상대에 대해 아주 자세히 조사한 후, 질문을 적재적소에 척척 해낸다. 원래 인터뷰는 상대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아서, 이것저것 물어보려고 시작되는 거지만, 성공적인 인터뷰는 오히려 상대에 대해 이미 많이 알고나서 시작하게 된다. 상대에 대한 자세한 사전 조사가 그 인터뷰를 더 풍성하게 만들고, 상대와의 관계도 더 깊어지게 만든다. 재재는 별 뜻 없이 자신의 예명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 속에서 나는 재잘거림 속의 발랄함을, 진중함 속의 애정을 느낀다. 그녀의 이름 속에서 발견한 우리말이 있다. 그 말의 의미를 그녀에게 선물하고 싶다.


‘재재거리다’는 ‘조금 수다스럽게 자꾸 재잘거리다’라는 뜻이 있다. 더 나아가 ‘재재바르다’는 ‘재잘재잘 수다스러워 어수선하면서도 즐겁고 유쾌한 느낌이 있다’라는 뜻이다. 말이 잘 통하는 사람과의 대화에서는 다소 어수선한 느낌이 들면서도 유쾌한 느낌이 드는데, 이러한 바람직하고도 바른 상황을 아주 잘 표현해낸 말이라 할 수 있겠다. 학생들과 대화를 해 보아도 알 수 있다. 이야기의 물꼬를 트는 가벼운 질문에 재잘재잘 이야깃거리를 내어 놓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단답형으로 대답만 할 뿐, 그 이상 더는 궁금한 게 없는 아이들도 있다. 수업이 재밌어지는 학생들은 당연히 전자이다.


어릴 적 나는 참으로 재재스러운 아이였다. 학교에 다녀오면, 엄마에게 학교 1교시부터 마지막 시간까지의 일화를 모두 이야기했다. 엄마가 그 친구의 이름을 알든지 모르든지 상관없이 그냥 그 친구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내 세상 속에 엄마를 초대하는 일이 낯설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이야기할 게 별로 없다. 엄마가 걱정할 만한 내용은 사전 검열하다 보니, 말할 내용이 점점 사라진다. 하지 않은 말은 생각으로 쌓여간다. 쌓인 생각을 정리할 에너지가 없다. 그러니 다시 쏟아낼 것도 없다. 그렇게 말이 줄어들었다. 엄마는 나보고 무심하다며, 서운함을 토로하셨다. 이 말 듣기 전에 잘할걸. 서운함이 생기기 전에 일 처리를 똑바로 하지 못한 것 같아 다시 또 생각이 많아진다. 엄마에게 할 말을 제재하면서 재재거림은 줄어드는 것 같다.


우리말에는 ‘지지재재하다’라는 말도 있다. 이 말의 뜻은 앞서 만났던 ‘재재-’ 시리즈와 느낌이 사뭇 다르다. ‘이러니저러니 하고 자꾸 지껄이다’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지껄이다’라는 말에는 부정적인 느낌이 묻어나 있다. 그러니까 ‘지지재재하다’는 낄끼빠빠 하지 못하고, 상대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은 채, 내 말을 얹는 느낌이다. 남편과 싸웠다는 친구의 이야기에 친구 남편 욕을 엄청 심하게 한다거나, 집을 사서 신이 난 친구에게 요즘의 안 좋아진 부동산 경기를 말한다거나, 연애를 시작한 학생에게 ‘네가 지금 그럴 때냐’하고 면박을 주는 일 따위를 예로 들 수 있다. 걱정을 빙자한 지껄임은 사람과의 관계를 소모적으로 만든다.


그렇게 찬물을 끼얹는, 이른바 지껄이는 대화라면 난, GG. 게임을 끝내듯이 대화도 끝내고 싶다. 무조건 긍정하는 대화가 깊이 없어 보일지라도, 상대에게 건네는 칭찬이 민망할지라도 그렇게 재재거리고 싶다. 진심어린 마음으로 상대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잘 기억해서, 나중에 만났을 때, 똑같은 걸 또 묻지 않으려 한다. 진심어린 마음으로, 응원하는 마음으로 재재거리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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