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덧니가 있다. 윗니들 중 한 녀석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삐죽 원래 대열을 빠져나와 자랐다. 원래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할 녀석은 뒤로 물러나 있다. 늘 마음이 쓰이는 녀석이다. 치과에 갈 때마다 의사 선생님도 이 녀석에게 마음이 쓰였는지, 칫솔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셨고, 교정을 권유받기도 했다.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은 없었기에, 교정하지 않고 지냈지만, 치열이 고르지 않다는 것을 늘 생각하고 있다 보니, 웃을 때도 말할 때도 늘 신경이 쓰였다.
그러던 중 아주 재밌는 일이 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날도 칫솔질을 하고, 입가에 묻은 치약거품을 닦아내다가 거울을 보고 ‘이-’하고 입을 다물었는데, 묘한 타이밍에 덧니 하나만 내 보이고 입을 다물게 되었다. ‘앗, 이게 뭐야’ 생각하며 혼자 킥킥대면서 덧니 하나만 내 보이는 개인기를 획득할 수 있게 된 것인가 하는 기대에 부풀었다. 이게 뭐 개인기가 되겠느냐 싶었지만, 사회에 나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 자기 소개를 할 때, 그이의 머릿속에 기억되고 싶어서 대뜸 갈고 닦은 내 개인기를 선보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선희입니다. 국어를 가르치고 있고요. 저는 덧니 하나만 보여 줄 수 있어요.”
잠시 뒤를 돌아 내 덧니를 세팅한 뒤, 뒤를 돌아 사람들을 쳐다보면, 사람들은 이걸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약 3초 고민하다가 ‘하하하’ 웃어 주었다. 내가 좀 또라이 같아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들의 기억에 잘 남긴 했겠다며 안도했다. 덧니는 늘 나에게 애물단지였지만, 이때만큼은 교정을 미룬 과거의 나를 칭찬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리말에는 ‘덧거리’라는 말이 있다. ‘정해진 수량 이외에 덧붙이는 물건’ 혹은 ‘사실에 보태어 없는 일을 덧붙여서 말함. 또는 그렇게 덧붙이는 말.’이라는 뜻이다. 나에게 ‘덧니’도 내 치열에 잘못 덧붙여진 치아인 것 같았다. 치아의 개수가 더 많아진 것은 아니지만, 제자리가 아닌 곳에 덧붙여진 것만은 맞았다. 이렇듯 덧거리는 없어도 되는 것들, 없어야만 할 것들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요리를 할 때도 마지막에 괜히 넣은 양념 때문에 음식이 맛없어지고, 화장을 할 때도 마지막에 얹은 볼터치 때문에 얼굴이 엉망이 되기도 하고, 사람들과 대화할 때 안 해도 될 말을 덧붙였다가 곤란한 상황을 만들 때도 있다. 어디에 끝맺음을 해야 하는지, 어디까지만 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 삶에서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말이다. 나에게 있는 덧거리인 덧니가 귀여운 개인기가 되었던 것처럼, 덧거리에 좋은 점도 찾아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우선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을 덧거리로 주어진 것이라 생각한다면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 있다. 원래 나에게 주어진 것보다 더 주어진 것이라면 부담 없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하루하루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곱씹으며 알차게 살아가게 될 것 같다. 또, 없는 일이라도 내 삶에 덧붙여 보면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나 막 이렇게 일하다가 유명해지는 거 아냐?’라고. 누군가는 나에게 ‘응, 아니야’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덧거리로 좋은 미래를 내뱉는 행동은 그 자체로 유의미하다. 쓸데없는 일이 아닌 것이다. 현재 나에게 없는 일은 미래에는 있을 수도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지금은 없는 일이지만, 있었으면 하는 일을 내 삶에 덧거리로 붙이면, 내 삶에 희망도 덧거리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