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아는 사랑의 기록

by 달밤 김준

결말을 알고서도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난 또다시 당신을 찾아가겠지. 이미 끝을 외운 이야기처럼, 결과를 알고도 첫 장을 다시 넘기는 마음으로. 그 선택이 어떤 대가를 부르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사람은 때로 아픔보다 공백을 더 견디지 못하니까. 나는 늘 그런 쪽의 사람이었다.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의 장면은 아직도 선명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그 순간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말보다 공기가 먼저 우리를 감쌌고, 그 조용함이 오히려 시작이라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미 그때부터 늦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은 언제나 소리 없이 사람을 바꿔 놓는다. 나는 당신 앞에서 더 신중해졌고, 더 쉽게 흔들렸다. 괜찮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되었고, 괜찮지 않아도 웃는 법을 배웠다. 그 변화가 나를 단단하게 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우리가 나눈 말들보다 말하지 못한 것들이 더 많았다는 사실이, 시간이 흐른 뒤에야 하나씩 떠올랐다. 미뤄둔 질문들, 삼킨 마음들, 애써 웃어 넘긴 순간들. 그 모든 침묵이 쌓여 결국 우리 사이의 거리가 되었다. 그래도 그 침묵들조차 사랑의 일부였다고 믿고 싶다.


이별은 갑작스러웠지만 완전히 예고 없는 순간은 아니었다. 우리는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서로를 보지 않고 있었고, 각자의 방향으로 천천히 마음을 옮기고 있었다. 붙잡지 않은 것이 아니라, 붙잡을 힘이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하다. 그 사실이 가장 오래 나를 붙들었다.


그래도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상처를 미리 알면서도 피하지 않는 마음이, 그때의 나였고, 아마 지금의 나이기도 하니까. 사랑 앞에서만큼은 늘 서툴고 솔직했으니까. 후회보다 기억을 택하는 쪽을 나는 알고 있다.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을 사랑 안하곤 버틸 힘은 내게 없었다. 세상이 자주 무너질 때마다 당신은 하나의 이유가 되어주었다. 하루를 견디게 하는 이름이 있었고, 다시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감정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것을 건넸다고 믿는다.


결말을 아는 이야기를 다시 쓰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 시간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에게 말해주기 위해서. 비록 끝은 같을지라도, 그 과정만큼은 진심이었다고. 사랑했던 순간들이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이야기를 조용히 다시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