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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산업의 기초 체력은 반도체 경쟁력에서 나온다.

by 이정원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천연자원도 없지만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기술력을 쌓아 좋은 물건을 만들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기업들의 노력이 숨어 있다. 수출하는 품목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반도체와 자동차다. 국내 1,2위 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주도하고 있는 두 품목은 각각 우리나라 수출량의 20%와 11%를 차지하면서 국가 경제를 이끌고 있다.


10대 수출 품목_2024년.jpg 수출로 먹고 사는 대한민국의 가장 큰 품목은 반도체 그 다음이 자동차다.


이렇게 우리나라 경제를 이끄는 두 축인 반도체와 자동차는 서로 얽혀 있다.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도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코로나 시대를 통해 확실히 인식했다. 2만여 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자동차도 작은 반도체 칩 하나가 부족하면 생산을 할 수 없어 공장이 멈추어야 하는 사태를 보면, 반도체는 마치 쌀처럼 삶을 영위하기 위해 안정적인 공급을 챙겨야 하는 필수품이 되었다.


특히 전동화와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로의 전환은 자동차를 전자기기에 더 가깝게 만들었고 차가 수행하는 일들이 복잡해지면 질수록 더 많은 전자 부품들이 필요해졌다. 그리고 그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들도 더 전문적인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아무리 좋은 소프트웨어도 이를 구현해 주는 하드웨어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주변을 인식하는 센서들부터 다양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과정까지 더 적은 전력으로 더 많은 기능을 더 빠르게 처리해 주는 자동차 전용 반도체의 개발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율주행 기술이 발달할수록 이런 수요는 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자동차 반도체 마켓쉐어_2024.jpg 익숙하지 않은 이름들이지만 시장은 어마무지하다.


예전에는 이런 자동차 전용 반도체 시장을 확보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IT 기업과는 다르게 차를 생산하는 데 최첨단 반도체는 굳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차용 반도체를 공급하는 업체들은 주로 가성비를 앞세운 써드 파티 업체들이 주도했었다. 차를 만드는데 필요한 스펙의 반도체를 제 때 싸게 충분히 공급해 줄 수 있는 업체가 있으면 가져와서 쓰면 되는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무역 분쟁과 기술 유출, 거기에 보안 및 국가 안보 문제까지 얽히면서 이제 이런 길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제는 전기차 배터리의 리튬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도 협상의 무기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최근 행보는 확실히 남달라 보인다. 대표적인 전기차 전문 회사인 XPENG은 파트너인 VOLKSWAGEN(이하 'VW')의 지원을 받아 전기차 플랫폼 개선과 자율주행 기능 강화에 나서면서 전용 칩셋 개발도 시작했다. 현대차가 NVIDIA와 AI Agent 계약을 맺으면서 하드웨어는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는 대조된다. 단순히 인공지능 기능을 강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시스템도 스스로 생산해 낼 수 있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를 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Xpeng_AI CHIP.jpg XPENG이 자체 칩 개발을 선언한 테크데이 영상 속 발표 장면


중국 내수 시장을 넘어서는 확장이 필요한 XPENG 입장에서는 이렇게 더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서 VW과 같은 글로벌 파트너에게 공유하면 여러모로 이득이다. 더 많은 기업이 참여할수록 개발에 들어간 비용을 나눌 수 있다. 더군다나 인공지능 기능과 이를 구동하는 칩을 사용하는 파트너가 늘어나면 날수록 보안문제 등을 이유로 반도체 적용 차량에 대한 불합리하거나 과도한 규제가 도입될 때 같이 대응할 수 있는 우군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거기에 각 차량에서 모을 수 있는 데이터들이 늘어날수록 XPENG이 주도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은 학습을 통해 더 강력해질 것이다.


일개 전기차 회사가 인공지능을 자체 개발해서 성능을 인정받아 파트너사들도 적용할 정도의 AI 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XPENG이 갑자기 반도체 설계와 파운더리를 직접 운영할리는 만무하다. 그만큼 중국 내에 스펙을 주고 제작을 의뢰하면 인공지능이나 반도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력과 생산력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향상되었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마치 전자 제품 회사였던 XIAOMI가 CATL과 BAIC(베이징자동차)와의 협업으로 전기차를 뚝딱 만들어 낸 것처럼 중국 첨단 산업의 수준과 유연성은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반도체 파운드리 비중.jpg 이미 파운드리 규모만으로 보면 중국이 대만이 이어 2위다.


이런 산업의 역량을 바탕으로 중국 정부는 자동차 회사들에게 자국산 반도체만을 탑재한 차종을 개발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차량 탑재 반도체의 국산화율을 높이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미국 및 세계 각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반도체로 발목을 잡힐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중국 정부의 의지가 읽힌다. 과연 중국의 이런 완전 국산화 계획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OPEN AI의 대척점으로 DEEPSEEK를 지원하고, NVIDIA에서 최신 GPU를 구매하지 못해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냈듯이 중국은 확실히 자동차 산업과 반도체 산업의 생존력을 높이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chinapost.jpg DEEPSEEK로 헤쳐 모이고 있는 중국 자동차 회사들


특히 이번 정책에서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에서 수요자인 자동차 회사들이 주도해서 국산화를 진행하는 것은 수요자 중심의 설계로 불필요한 성능 경쟁으로 인한 오버 스펙보다 제품에 실제 필요한 사양에 설계 최적화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정책들로 중국 내에 반도체 생산을 위한 생산성과 기술력이 자동차 회사의 자본력을 기반으로 진일보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이런 움직임은 우리나라에게는 좋은 표본이다. 자동차도 반도체도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반도체 시장은 특정 반도체 분야에 편중되어 있다. 삼성전자도 2015년 차량용 메모리 시장에 진출했고, 자율주행차 시대를 대비해 메모리부터 이미지센서, 파운드리까지 관련 제품을 출시하며 대응하고 있지만 시장 개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접어들면서 전용 반도체 칩이 더 많이 요구되고 있는 요즘 삼성전자, SK 등 대형 기업에 의존하지 않는 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전략적인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미래 자동차 산업을 지탱할 기초 체력은 자동차 전용 반도체 경쟁력에서 나온다.




자동차 산업 전용 플랫폼 아우토바인에 기고한 글을 조금 늦게 공유합니다. 밥을 먹어야 살아가듯이 자동차도 반도체가 있어야 만들 수 있습니다. 기초체력이 되는 자동차 전용 반도체에 대한 전략적 투자와 이를 뒷받침할 정책이 더 절실해지는 요즘입니다.

https://autowe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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