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의 가치를 어디에 쓸지 결정권을 지키고 싶다.
추석이다. 명절이지만 얼마 전 사촌 동생의 결혼식으로 고향을 다녀와서 열흘의 시간을 온전히 집에서 보내고 있다. 고등학생인 큰 딸이 중간고사를 아직 치르지 않다 보니 어디 여행을 가거나 이벤트를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꽉 막힌 고속도로와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보면 따뜻하고 편한 집에서 지낼 수 있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그렇게 잠시 멈추어 선 덕분에 그동안 얼마나 바쁘게 살았는지를 다시금 느끼게 된다. 매주 있는 수업 준비에 이틀 학교로 강의 나가고 매일 올라오는 기사에 코멘트 달고 이슈 관련 리포트 써서 매일 보내고 한 주에 한 번씩 동향 보고서를 써 왔다. 그리고 내년 4월까지 쓰기로 한 책도 잊지 않고 진도를 나가야 한다. 이렇게 명절이 되어 학교를 안 나가도 되고 기고를 안 해도 되니 그동안 얼마나 마음을 쓰고 있었는지를 깨닫고 있다.
얼마 전부터 컨설팅 업무도 하나 새로 시작했다. 예전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선배님께서 정부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하시는데 현업에 계신 분들이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부담스러워한다고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주셨다. 시작은 가볍게 했지만 믿고 부탁하신 일이니 받는 돈보다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현업에 계신 분들이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선을 지키면서 그래도 해야 하는 일들을 리마인드 하는 관리가 만만치 않다.
회사에 다닐 때는 정해진 일들을 하면 성공과 수익 여부와 상관없이 일정한 수입이 보장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알아서 수입이 생기던 직장인의 삶을 벗어나면 그때부터는 전쟁이다. 내가 가진 능력과 할 수 있는 일들이 누군가에게 필요해서 그것이 수입으로 환산되는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프리랜서의 숙제다.
처음 회사의 울타리를 벗어났을 때 지금 하고 있는 모든 틀들을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기고는 했었고, 책도 쓰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회사의 월급만큼의 수입을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회사보다 나를 더 필요한 가족들이 있었고 나도 나를 소진하기보다는 더 채울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모자라는 수입은 덜 쓰고 함께 벌면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행히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나를 필요로 하는 곳들과 이어져서 감사하게도 바쁘게 지내고 있다.
대신에 그만큼 내가 여유롭게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방학 때면 아내와 매일 꾸준히 달리기를 하지만 학기 중에는 학교 나가는 날에는 아침부터 서둘러야 1교시에 맞출 수 있다. 저녁 먹고 여유 있을 시간에도 나는 기사에 코멘트를 작업하느라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어야 한다. 컨설팅하는 회사에 보고 자료를 만들고 동영상 강의를 녹화하면서 모든 노동은 시간을 들여 가치를 만드는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유한하다. 그러니 삶의 여유를 만들려면 타협을 해야 하는 수밖에. 이제는 내게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어딘가에 종소고디어 일의 속도와 양을 조절하기 어려운 제안은 거절하는 용기가 필요한 때가 왔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어디에 쓰임이 있을까 내 시간이 정말 수입이 될까 두려운 마음을 이겨내야 한다. 바쁜 일상에 연휴가 가져다준 쉼표 덕분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시간의 가치를 어디에 쓸지 결정권을 지키고 싶다던 처음 마음을 다시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