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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스타트업이 살아남는 3가지 방법

시장 근처 공장에서 생산 유연성을 확보하고 저가 모델을 생산한다.

by 이정원

지금은 전기차의 대명사로 알려진 Tesla지만 사실 초창기만 해도 그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항상 의문 부호가 붙었었다. 2003년에 사업을 시작해서 6년 만인 2009년에 Roadster를 세상에 내놓았지만 1억 원이 넘는 판매가보다 더 비싼 원가 때문에 2,000대만 만들고 접었었다. 2010년에 나스닥에 상장을 하고 2012년에 첫 대중화 모델인 Model S를 내놓았지만 여전히 흑자를 면치 못했다. Tesla가 지금처럼 흑자를 이루고 주가가 폭등하기 시작한 것은 Model 3을 출시하고 연간 판매량이 20만 대를 넘어선 2018년 이후의 일이다. 무려 15년 동안 적자를 버틴 배경에는 자금력으로 밀어붙인 일론 머스크의 추진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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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la의 대박을 보고 2010년대 후반에 전기차만을 타깃으로 한 신생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내연기관보다 진입 장벽이 낮아진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미국에는 Lucid, Rivian 같은 브랜드들이 럭셔리 전기차를 내세우며 시장에 출현했고, 중국에서는 Li Auto, Xpeng, NIO가 중국의 Tesla라는 타이틀을 달고 모델 출시 계획을 발표했다. 유럽에서는 Volvo를 기반으로 Polestar가 새로운 브랜드로 나서는 한편 Renault의 Ampere나 Lotus 같은 회사들도 전기차 전문 브랜드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에 열린 모터쇼에 가면 이런 전기차 전문 브랜드들이 친환경 이미지를 가득 담은 부스에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의 차량들을 앞세우며 투자 유치를 진행하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호기롭게 시작했던 브랜드들의 지금 모습은 생각보다 밝지 않다. 전기차 보급률이 10% 대를 넘어서면서 얼리 어댑터들이 비싸도 전기차를 구매하는 시기는 지나갔다. 전통의 럭셔리 브랜드들인 Ferrari, Porsche, Mercedes-Benz, BMW 등이 속속 전기차 모델을 내놓으면서 희소성을 제외하면 레거시가 부족한 스타트업 회사의 전기차를 찾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열거했던 수많은 전기차 스타트업들 중 그나마 흑자를 달성하는 회사는 Li Auto와 NIO 정도다. 나머지는 여전히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왜냐하면 자동차를 만드는 일은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는 전기차가 내연기관차에 비해 진입 장벽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좋은 배터리와 모터만 구입하면 복잡한 배기가스 규제나 연비 규제를 만족하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다. 전기로 구동되는 차량 전체 시스템도 전자기기처럼 제어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자동차라는 걸 만들어 파는 일은 기술 그 이상을 필요로 한다. 공장을 짓고 공급망을 관리하고 원하는 사람에게 차를 전달하는 모든 과정에 돈과 에너지가 든다.


아직 자본이 충분치 않은 스타트업들에게는 이 모든 과정이 자금의 압박으로 다가온다. Tesla도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시점은 연간 판매량이 20만 대를 넘기고 나서부터였다. 지금은 전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기가팩토리도 그때는 미국에 한정되어 있었다. 큰 미국 시장이 그나마 Tesla가 다음 모델 개발과 생산을 늘릴 수 있는 캐시 카우 역할을 해 준 것이다. 그렇게 최소 수익을 확보한 후에 시장이 확장됨에 따라 기가팩토리도 서서히 영역을 넓혀 나갔다.


Polestar4_ShanghaiAutoShow.jpeg 상하이 모터쇼에서 공개된 Polestar 4 © Polestar



이런 문제에 현재 가장 난처한 상황에 있는 회사가 바로 Polestar다. 스웨덴에서 시작했지만 대주주 Volvo Cars가 Geely에게 합병되는 바람에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는 Polestar는 주력 모델인 Polestar 2와 Polestar 4 생산 기지를 중국 내에 마련했다. Geely 자동차의 전기차 플랫폼과 공급망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회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차가 생산되는 중국에서는 상반기에 100대도 팔지 못하면서 판매망을 철수하고 있는 가운데 판매량의 70%를 소화하고 있는 유럽에는 공장이 없다. 한국에서 미국을 목표로 한 Polestar 4 생산을 르노코리아에서 진행 중이지만 높아진 대미 관세로 경제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나마 주력 모델이 한정적인 전기차 스타트업이 생존하려면 1) 주요 생산 공장과 이를 소화해 주는 시장이 가까울수록 유리하다. 최근에 불거지고 있는 관세 이슈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스타트업의 두 번째 어려움은 라인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심혈을 거쳐 나온 첫 번째 제품이 성공하더라도 사람들은 쉽게 질린다. 페이스리프트를 하려면 설계를 바꾸고 기존의 금형을 새로 맞추는 투자를 해야 하는데 기존 금형의 수명이 다하려면 보통 최소 15만 대 이상을 생산해야 회계상으로 손해를 보지 않는다. 결국 기존의 자동차 회사들처럼 1년마다 새로운 디자인을 내놓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두 번째 모델이 실패라도 하면 회사는 자금난에 빠질 수밖에 없다.


1 공장에서는 첫 번째 모델을 생산하고 2 공장에서는 다음 모델을 생산하는 식으로 모델과 공장이 이원화되면 두 번째 모델이 잘 팔려도 첫 번째 모델의 수요가 줄어서 가동률이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한다. 가짓수가 적고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일수록 2) 생산의 유연성을 확보해서 한 공장에서 여러 모델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돌아가지 않는 공장을 유지하는 비용을 감당하기 시작하면 작은 회사는 버티기 어려워진다.


결국 규모가 가장 중요하다. 중국 시장처럼 전기차가 수백만 대씩 팔리는 거대한 시장에서도 흑자 전환을 위한 최소한의 규모를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다. BYD와 Tesla 같은 괴물들도 있지만 기존 자동차 회사에서 나오는 전기차와도 경쟁해야 한다. 수요와 가격의 곡선에서 가격이 낮아지면 수요가 늘어나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결국 시작은 럭셔리 전기차 브랜드로 출발했더라도 3) 회사를 시장에 안착하게 하기 위해서는 대중화된 저가형 모델이 반드시 필요하다.


NIO_Firefly.jpg Firefly © NIO


Tesla도 Model 3가 그랬고, NIO도 Onvo, Firefly 같은 소형 저가형 모델들을 출시하면서 손익 분기점에 근접하고 있다. 후발 스타트업이지만 3년 만에 연 30만 대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Xiaomi도 스펙 대비 저렴한 차량으로 시장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상대적으로 영업망이 부족한 스타트업 전기차 회사로서는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움직이는 가장 큰 요인은 가성비다.


결국 든든한 내수 시장을 가지고 한 공장에서 여러 모델들을 유연하게 생산할 수 있으면서 잘 팔리는 저가형 모델을 확보한 전기차 스타트업이 그나마 살아남는다. 전기차 성능이 상향 평준화될 미래에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요구까지 더해지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그만큼 작은 스타트업들의 자리는 위협받겠지만 그들이 있어 자동차 시장이 더 다채로워지고 있다. Telsa의 FSD, NIO의 배터리 스와핑, Li Auto의 EREV처럼 선전하고 있는 기업들은 자신만의 장점들로 새로운 판을 넓혀가고 있다. 작아서 더 절실한 그들의 노력을 보면서 한국 자동차 산업에서는 왜 이런 전기차 스타트업이 나타날 수 없는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자동차 산업 동향 전문 플랫폼 아우토바인에 기고한 글을 조금 늦게 공유합니다. 미국도 중국도 어쨌든 다양한 방식으로 도전하고 있는 현실이 부럽습니다.

https://autowein.com/2638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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