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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징쌤 Aug 12. 2024

이것이 바로 옛날 IT?

21세기에 만난 90년대 고객


올해 초에 새로운 고객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우리 제품을 활용해서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고객은 단순히 제품만 사는 것이 아니라 제품을 사용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프로젝트까지 우리 회사에 맡기고 싶다고 했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그룹사의 계열사여서 내가 이 계약 건과 프로젝트까지 맡게 되었다. 그런데 계약 규모가 꽤 크기도 하고, 고객이 기술적으로 요청하는 것도 많다 보니 대표님께서 사전 미팅부터 계약까지 직직접 챙겨주셨다. 그러면서도 대표님은 '이 계약을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라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 고객과 여러번 만나면서 뭔가 꺼림칙한 걸 느끼셨던 모양이다. 


실제로 이 고객사와의 일은 무엇 하나 편하게 넘어간 것이 없었다. 우리 회사에서 고객사에 보낸 견적서에 대해서 제품의 할인율부터 프로젝트에 들어갈 엔지니어의 작업 단가까지 하나하나 다 따지면서 한 푼이라도 줄이려고 했다. 이미 국내 최고의 할인율을 적용했는데도 막무가내였다. 이쯤 되니 나도 이들이 힘든 고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를 우리 회사가 직접 맡아서 하면 프로젝트를 했던 엔지니어들이 줄줄이 퇴사하겠다고 나설 것 같았다. 그래서 욕심내지 않고 다른 회사에게 하도급 형태로 프로젝트를 넘겼다. 결과적으로 그 회사 사람들은 우리 회사가 자신들에게 똥을 넘겼다고 우리 회사를 원망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 고객과 계약한 프로젝트 기간은 세 달이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내가 프로젝트에 대해 신경쓸 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웬만한 것은 프로젝트에 들어가 있는 엔지니어들이 다 알아서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프로젝트가 아무 문제 없이 잘 진행된 것은 물론 아니었다. 고객사 사람들은 프로젝트 팀에서 하는 일에 대해 사사건건 잔소리를 했다. 그 덕분인지 프로젝트 진도가 계획했던 것보다 빠르게 나갔다. 그러자 고객은 계약서에 없었던 것들까지 잔뜩 해달라고 했다. 프로젝트 팀은 요청받은 일들을 다 해내느라 야근은 물론 주말 출근까지도 여러번 했다. 그런 일들이 프로젝트 끝날 떄까지 이어져서 뒷정리도 제대로 못 하고 프로젝트를 마쳤다.


우리 대표님을 비롯해서 IT 경력이 오래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런 힘든 고객은 정말 오랜만에 본다고 했다. 계약 금액 후려치거나 계약서와 상관없이 프로젝트 내용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사람들은 이제 시장에서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하나 잘 끝내려고 야근이든 주말 출근이든 밥먹듯이 하는 건 다 옛날 말인 줄 알았다. 작은 IT 업체들이 모여 있는 가산디지털단지가 구로의 등대라고 불렸던 시절도 있었다. 그 때는 빠듯한 일정 맞춰서 일을 끝내기 위해  밤샘 작업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 가산디지털단지의 등대도 요즘은 다들 일찍일찍 불 끄고 퇴근한다. 시대가 이렇게 바뀌었다 보니 IT 업계 경력이 짧은 나로서는 이런 고객은 당연히 처음 보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시간은 흐른다. 그 말 많고 탈 많던 프로젝트도 얼마 전에 드디어 끝났다. 프로젝트 팀도 고객사에서 짐을 빼서 회사로 돌아갔다. 이제 고객으로부터 프로젝트 검수를 받고, 잔금도 받을 차례가 되었다. 아무래도 돈과 관련된 일이다 보니 이 일은 내가 맡아서 챙기고 있다. 그러면서 고객과 직접 소통할 일이 많아졌다. 이들이 어떤 식으로 일을 하는지도 직접 피부로 느끼고 있다. 중간 중간 대표님이나 팀장님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렸을 것 같다. 그렇지만 영업 사원으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면 고객을 욕하는 것이다. 고객으로부터 매출을 만들어내는 것이 나의 일인데, 내 감정 때문에 그 일을 그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다만 이 고객과 일을 하면서 막막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고객이 해달라는 것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데, 영업 사원으로서 주도권을 가지고 고객을 상대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프로젝트 검수를 하는 와중에 기술적인 이슈가 생겼다. 내가 기술을 잘 모르다 보니 고객과도, 우리 회사 엔지니어들과도 빠르게 소통을 하지 못했다. 결국 엔지니어 팀장님들이 직접 나서서 고객과 소통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소통은 영업 사원이 나서서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답답하다. 다만 이번에 고생한 게 헛되지 않으려면 이 모든 과정들을 잘 봐둬야겠다. 다음에 또 이런 힘든 고객을 만났을 때는 내가 좀 더 주도권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할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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