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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를 안 할 수는 없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니까

by 오징쌤

대학교 입학하던 해 초에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새터 일정이 동계올림픽과 겹쳐서 숙소 텔레비전으로 중계방송을 볼 수 있었다. 전날 밤에 늦게까지 술 먹고 게임을 하며 신나게 놀았던 탓에 반쯤은 잠이 덜 깨고 반쯤은 술이 덜 깬 상태로 중계방송을 봤던 것 같다. 그 대회에서도 한국 선수가 쇼트트랙 금메달을 땄다. 역사에 남을 명경기였다. 그 경기를 같이 보던 선배는 자신과 동갑인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걸 보니 부럽다고 했다. 나는 세계적인 선수와 자신을 비교하는 그 선배가 오히려 멋있어 보였다. 그때만 해도 나는 내 삶을 누군가와 비교해 볼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제 친구들이 슬슬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나도 모르게 그 친구들과 나의 위치를 비교하게 된다. 이미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유명인사가 된 친구도 있고, 공직자로서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친구도 있다. 전문직이 되어서 성공가도에 올라선 친구도 있다. 대기업에 간 친구들도 많은데 벌써 과장이나 팀장 정도가 되어서 수천억 원의 예산을 주무르기도 한다. 가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뭐 하고 있는 건가 싶을 때가 많았다. 아무래도 사업을 그만두고 진로가 막막해서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을 때 이런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친구들이 갈수록 나에게서 멀어지는 듯한 느낌은 그래도 괜찮다. 얼마 전에는 한 고객을 만났다. 그는 이전 회사에서 일을 잘한다고 인정받아서 지금의 회사로 스카우트되어서 회사를 옮겼다고 했다. 그는 지금 회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프로젝트 관리자로서 해마다 수백 억의 예산을 혼자서 관리한다고 했다. 어쩌다 우연히 그의 나이를 알게 되었는데, 나와 동갑이라고 했다. 그때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그와 나 사이에는 어떤 차이게 있길래 같은 나이인데도 서 있는 자리가 이렇게 다른 것일까. 그는 저 큰 회사에서 큰 예산을 굴리는데, 나는 고작 몇백만 원의 실적 때문에 속을 끓이는 것일까.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항상 부러워하던 친구가 SNS에 올린 포스팅을 읽었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만이 아니었다. 전문직으로 멋지게 커리어를 만들어나가고 있던 다른 친구는 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힘들게 병과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SNS에 전했다. 이 두 친구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 외에, 멀리서 보았을 때는 화려하고 맛있게 살아가는 것 같은 친구들도 가까이에서 보면 다 각자 나름의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었다. 친구들의 속사정을 알게 될수록 겉으로 보이는 것만 가지고 누군가를 부러워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그만한 대가를 치렀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만큼 노력을 했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다만 그들은 몸을 사리지 않고 온 힘을 다 했기 때문에 그와 같은 병까지 얻게 되었다. 나를 돌아보면, 성장하고 나아가기 위해서 그 정도로 에너지를 쏟아붓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힘을 더 쏟아야 할지, 아니면 그 정도에서 만족하고 멈출지 선택하는 갈림길을 만났을 때, 거의 대부분 나는 그만큼 하고 멈추는 선택을 했다. 그 결과로 지금의 나는 딱 지금의 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지난 시간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더 이상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면서 스트레스받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결정적인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는 사람인지 스스로 돌아보고, 앞으로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는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아마 그때도 나는 너무 고생스럽지 않은 쪽을 고를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말이다. 눈부시게 빛나지 않더라도 몸 아프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 소소하게 즐겁게 살 수만 있어도, 그게 어디인가 싶다.


그럼에도 포기하기 싫은 게 한 가지 있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보다 더 나아지면 좋겠다는 것이다. 작년에는 잘 못 하던 것을 올해는 그때보다 더 잘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이전에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면 앞으로는 그 방향을 조금씩 정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남들이 이러쿵저러쿵 하는 말에 흔들리지 않고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내세울 만한 한 가지를 찾게 되면 좋겠다. 그래서 언젠가 삶을 마무리할 때, 나는 내가 뭘 원하는지 알았고, 그 원하는 걸 이루는 삶을 살았다고 편안하게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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