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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번에 팀을 옮기게 되어서요

고객 관계라는 신기루

by 오징쌤

우리 제품을 정말 잘 써서 회사 내에서 인정받은 고객이 있었다. 그는 전사 경연 대회에서 두세 번이나 1위를 할 정도로 우리 제품을 잘 썼다. 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 제품 쓰는 법을 알리는 교육 프로그램까지 만들어 동료들과 나눴다. 그 열정 덕분에 우리 제품을 쓰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다. 그들 또한 업무 능력이 좋아져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고객사 내부적으로 선순환이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울 만한 성공 사례였다.


그런데 조직 변경이 되면서 그 팀의 팀장이 바뀌었다. 원래 팀장은 다른 조직의 임원이 되어 팀을 떠났다. 그의 후임으로는 우리 제품에 별 관심 없는 사람이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팀의 분위기가 변했다. 1년쯤 지나면서, 앞서 말했던 그 고객도 결국 자신의 성장을 위해 다른 부서로 옮겼다. 그렇게 해서 그 팀에서 우리 제품을 쓰는 양이 1/7 정도로 줄었다. 그나마 그 정도라도 유지된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 정도였다.


그때 마음이 정말 아팠다. 몇 주 정도는 일에 집중이 안 되고, 슬럼프처럼 무기력한 기분이 들었다. 그 고객은 지방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가 요청하면 우리는 언제든 출장을 갔다. 그는 우리의 도움을 잘 활용해 좋은 성과를 냈고, 우리는 그 과정을 도우며 뿌듯함을 느꼈다. 그의 성장은 우리의 업무 성과로도 이어졌다. 다른 고객에게 소개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사례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더더욱 허망했다. 팀장 한 사람 바뀌어서 그 모든 시간과 노력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다니.


그와 함께했던 시간을 돌아보면 ‘고객 관계’라는 말을 새삼 곱씹게 된다. 영업 사원이라면 흔히 고객의 성공을 돕는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고객이 아무리 성장해도 그것이 매출로 이어지지 않으면 성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런데 이 팀의 경우 '고객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다. 또한 내가 일을 하면서 영혼이 살아 있다고 느끼는 몇 안 되는 사례였다. 나는 그 관계가 꽤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매년 있는 재계약 날짜 바로 전까지도 출장 가서 교육하고, 미팅하고, 식사까지 하면서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를 바꿀 수 없었다. 허탈했고 무력했다. 그 담당자에게 섭섭한 마음은 전혀 없다. 오히려 그가 어디서든 잘 되길 바란다. 다만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앞으로 고객과 쉽게 마음을 열고 친하게 지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가끔 일이 힘들 때면 학생 한 명 한 명이 그저 숫자로, 수입으로만 보였다. 그게 내가 버티고 일하는 마지막 이유인 것처럼 느껴져서 씁쓸했다. 고객의 성장을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 점점 사라지는 중이다. 하지만 이런 상태로는 오래 건강하게 일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일을 할 동기를 다시 찾으려고 한다. 허탈함에 빠져 허우적대기에는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많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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