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유령(Generative Ghost)이 던지는 질문
<어바웃 타임>이라는 영화를 여러 번 찾아서 볼 정도로 좋아한다. 평범한 주인공이 특별한 능력을 얻어서 남다른 모험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기울었던 것 같다. 주인공 가문의 남자들은 대대로 시간을 여행하는 초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주인공은 이 능력을 바탕으로 일하다 저지른 잘못을 되돌리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기까지 데이트를 하기도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주인공이 시간 여행을 해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다는 점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나면, 그 사람을 그리워하고, 다시 함께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죽은 사람과 마치 살아 있을 때처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술이 나왔다. 이른바 '생성형 유령(Generative Ghost)'이라는 기술이다. 생성형 유령은 생성형 AI를 활용해서 죽은 사람의 아바타를 만드는 것이다. 이 아바타는 죽은 사람의 기억을 가지고 있고, 실시간으로 대화를 할 수 있으며, 훈련을 통해 점차 진화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단순히 녹화된 영상을 보는 것을 넘어 살아있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느낌까지 줄 수 있다. 이미 2019년에는 한 한국인 여성이 이 생성형 유령을 통해 세상을 떠난 딸과 1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눴던 적도 있다.
https://neurosciencenews.com/ai-generative-ghost-psychology-29360/
지금은 생성형 AI는 텍스트 기반 챗봇 형태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더욱 고도화된 대화형, 시각적 아바타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사망한 가족과 실제로 대화를 나누거나, 새로운 노래·시를 창작해 가족에게 남겨줄 수도 있다. 이런 아바타는 유족의 슬픔을 달래주거나, 역사적 인물의 생생한 증언을 보존하거나, 죽은 사람의 창의성이 담긴 유산을 보존하는 등 여러 가지 좋은 효과들을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홀로코스트 생존자 등 역사 인물의 스토리를 인터랙티브하게 보존하는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당사자 또는 유가족의 동의를 받지 않고 아바타를 만들거나,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오랫동안 안고 있는다거나, 죽은 사람이 남긴 디지털 유산을 두고 다툰다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윤리적·법적 문제 또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그래도 앞선 기사에서는 생성형 유령 기술이 상업적으로 쓰이지는 않았다 보니 흥미로운 뉴스, 기대되는 기술 정도로 여겨졌다. 그런데 얼마 전에 한 독립 언론인이 자신의 채널에서 생성형 유령을 활용해서 죽은 사람과 인터뷰를 진행해서 이슈가 되고 있다. 전 CNN 앵커 짐 아코스타(Jim Acosta)가 2018년 플로리다 파크랜드 총기 참사로 희생된 호아킨 올리버(Joaquin Oliver)의 아바타를 만들어 인터뷰를 한 것이다. 이 인터뷰 이후 일반인도 디지털 세계에 흔적이 남아 있다면 AI로 복제될 수 있다는 것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시청자들은 이 인터뷰 영상을 ‘소름 끼치고, 착취적이며, 부적절한 저널리즘’이라 평가했다. 이들은 비극적인 사건의 피해자를 단순한 가십거리로 전락시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생성형 유령 인터뷰는 아직 불법은 아니다. 이에 대한 명확한 법과 제도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AI 복제(재현)를 원치 않으면 유언장에 명시적으로 금지 조항을 둘 수 있다. 하지만 미국 내 사후 초상권 관련 법률은 주마다 다르고, 일부 주에는 아예 규정조차 없다.
https://www.axios.com/2025/08/09/deepfake-death-reincarnation-ai-avatar
생각해 보면 생성형 유령을 만드는 게 기술적으로 아주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다. 앞서 말했듯, 생성형 AI를 어떤 데이터로 훈련시키느냐에 따라 다른 페르소나로 만들 수 있다. 생성형 AI와 연애를 한다는 사례도 이미 많은 걸 보면, AI를 내 취향에 맞는 애인처럼 만들어서 감정적 교류를 하는 것까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의 데이터로 AI를 훈련시키면 그 사람의 아바타도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 곧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올바르다는 뜻은 아니다. 죽음은 사람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울타리이자 경계선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삶의 가치가 달라진다. 이것은 인류 역사 내내 수많은 철학자들이 해왔던 이야기이다. 만약 죽는다고 해서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면, 죽음이라는 울타리를 넘나드는 행동을 어떻게 다룰지를 먼저 정해야 하지 않을까.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은 어느 시점부터 아버지를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된다. 그는 예쁜 딸을 낳았다. 그런데 시간 여행을 갔다 돌아오면 여러 가지 조건이 바뀌면서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로 바뀐다. 그는 이것만큼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를 전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미래의 언젠가의 주인공이 자신을 만나러 오는 것이 아버지에게도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주인공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이 세상을 떠났음에도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사실 운 좋게 얻은 덤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덤 같은 시간이 결국에는 끝날 것이기 때문에 아들과의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두 사람이 무척이나 좋아하는 탁구를 마지막으로 치는 장면이 그토록 아름답게 기억되는 이유는 그들이 그 소중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