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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카페, 그리고 사회 공헌 카페

AI와 일자리 문제(3)

by 오징쌤

얼마 전 로봇이 커피를 내려주는 카페를 방문했다. 커피 맛이 의외로 훌륭해 놀랐다. 기술이 더 발전해서 로봇의 가격이 낮아진다면 이런 카페가 빠르게 늘어날 것 같았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사람 바리스타의 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로봇이 업무의 효율과 일관성을 보장한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것이다. 이런 변화를 눈앞에서 경험하니 앞으로 우리의 일상에서 ‘일’의 의미가 어떤 식으로 바뀔지 궁금해졌다.


며칠 후 고객사 미팅에서 또 다른 커피 경험을 했다. 담당자들이 사내 카페에서 커피를 대접해 주겠다고 해서 따라갔다. 그 카페에서는 장애인 직원들이 직접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이는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사회 공헌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로봇이 대체할 수 있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며 일자리를 나누고 있었다. 그 장면에서 느낀 따뜻함은 로봇 카페에서 느낀 효율과는 결이 달랐다. 두 경험이 대비되며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같은 커피 한 잔이지만 한쪽에서는 로봇이 노동을 대신하고, 다른 쪽에서는 기회를 얻기 힘든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는다. 이는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 앞에 놓여 있는 여러 갈림길들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 갈림길 중에 어느 쪽으로 나아가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내 삶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AI와 로봇이 인간의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길일까. 우리가 다른 방향을 선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술은 중립적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쓸지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 대런 에쓰모글루의 <권력과 진보>라는 책을 읽고 있다. 마침 그 책에 이런 글귀가 나온다.

지난 1000년의 역사가 보여주는 사례와 현대의 실증근거 모두 한 가지 사실을 더없이 명백하게 보여준다.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광범위한 번영으로 이어지는 것은 전혀 자동적인 과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게 되느냐 아니냐는 사회가 내리는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선택”의 결과다. <권력과 진보> 1장 중에서


에쓰모글루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부터 <좁은 회랑>을 지나 <권력과 진보>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성장은 중요하지만, 그 결실을 모두가 공유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더 큰 번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지금도 기업들은 AI와 로보틱스를 도입해 인건비 절감을 목표로 삼는다.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사람들의 소득이 줄어드는 것이 과연 좋기만 한 일일까. 단기적 효율고 함께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어디선가 ‘AI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잘 다루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대신할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이 말이 꽤 신빙성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은 단순히 사람의 일을 자동화해서 효율성을 높이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을 성장시키는 도구로서도 쓰일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는 사람들에게 AI를 잘 다루도록 설계하고 가르쳐야 한다. 나는 그런 사회가 더 건강하고 지속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벌써부터 그런 사례들이 하나 둘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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