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킴라일락 Sep 10. 2019

시작의 첫맛은 '오그라듦'이다

[안녕하세요 000 카페서 보고 연락드립니다 혹시 독서모임 성원되셨나요?]

처음 온 연락이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한자씩 답문을 찍어 내려가는 한편, 겁도 났다.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


 병원을 퇴원하고 그간의 계획들을 하나씩 실행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건강해지면 언젠가는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말이다. 아직 여러 불안 요소들이 잔재하고 있기에 건강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투병의 시간이 가르쳐줬듯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두드려'라도 볼 수 있는 시간이 항상 내 곁에 있지는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천천히 움직여보기로 했다.


 나는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좋았다.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가 있지도 않고 글 좀 쓴다는 말을 듣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글'과 연관되어진다는 것이 그 자체로 좋았다. 글을 읽거나 쓸 때 느끼는 그 조용한 시간이 좋았다. 화려하지 않아도 치명적인 매력을 품은 문장의 섬세함이 좋았다. 그리고 정갈한 글자들로 만들어진 책들이 여기저기 가만히 자리 잡은 공간을, 나는 사랑한다. 그래서 결심했다. 그렇게 책과 글이라는 풍경 속에서 살아 보자고.


 '언젠가'는 자그마한 동네책방을 하나 열어서 오래도록 지속되는 '독서모임'을 가지고 싶었다. 대단한 지식을 나누기 보다, 고고한 이상을 추구하기보다 정말, 그저 책이 좋고 글이 좋아서 오는 편안한 동네 독서 모임이면 족하다. 지금 당장은 그럴만한 공간이 없기에 언젠가 내게도 '내 가게'라는 것이 생긴다면 해보리라며 꿈만 꾸던 일이었는데 순서를 바꾸어 모임을 먼저 열어보자고 생각했다. 아주 작은 소규모 모임을 기획했고 동네 온라인 카페에 글을 띄웠다. 그리고 그 첫 참여 희망자가 나타났다! 정말 시작되는 거구나.


 사실 나는 지극히 내향적인 사람이라 드러나는 것도, 앞에 서는 것도, 심지어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상당히 긴장하고 힘들어한다. 그런 내가 오프라인 모임을 한다는 건 웬만한 동기가 있지 않고서는 상상불가였다. 사실 지금도 내가 제정신은 아니라 이러는 건 아닐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분명한 건, 사람이 한 번 이승과 이별할 뻔하고 나면 그 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변하긴 변한다는 것. 귀찮다고 싫어하고 부딪히기 싫다고 피하기만 하며 5년간 잘 쉬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새 알게 되었다. 삶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더 귀찮은 것 투성이일 테고 때론 움직일 때마다 부딪히기 일쑤겠지만 그 삶도 살아있기에 겪는 일이니 감사하며 신나게 뒹굴어 봐야 한다고. 그러니 일단, 해보자.


답문을 보내 놓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혼자 면을 걸어본다.

'자, 있는 그로!

알지? 어차피 내가 유명한 사람도 아니니 보여줄 능력이 딱히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꾸미려 말고 의식하지도 말고 부족하고 어설퍼도 그건 당연하니까 받아들이고 가는 거야.'

 

이번엔 또, 혹시나 아무도 안 오면 어쩌나 하고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다시, 마음을 다독여본다.

'생각처럼 사람들이 안 와도 괜찮아. 처음이니까.

그리고 행여 모임에 온 사람들이 나에게 실망하고 다시 안 와도 너무 상처 받지 말자. 조금씩 조금씩 계속 성장하면 되니까.

그러니 끝까지 하는 거야. 알겠지?'


모든 도전의 첫 시작은 늘 불안함으로 현기증 나기 마련이.

어쨌든 시작이다. 이 손발 오그라드는 소중한 맛도 지금 뿐이겠지. 그러니 실컷 맛보고 오래도록 기억하자며 작은 도전의 첫 글을 띄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