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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킴라일락 Oct 21. 2019

나에게 '독서모임'이란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모임이 끝난 시간, 갑작스러운 호흡곤란 증상을 만나게 되었다. 호흡이 점점 빨라지고 몸을 가눌 수 없어지게 되며 손과 발 등 몸이 굳어오는 증상. 오랜만이었다. 전날의 무리한 일정과 긴 시간의 모임으로 체력이 바닥나면서 생긴 것 같다. 한 달 전, 병원을 퇴원하고 처음 겪는 상황이었다. 

 전에도 그런 일이 있어서 대처법을 모르지는 않았다. 다만, 혼자 있는 집이거나 병원이었으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회복될 텐데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공간이라 좀 달랐다. 급격히 빨라지는 호흡은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되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졌고 하나둘 모여드는 사람들의 시선이 심리적으로 더 불안하게 만들어버렸다. 게 중에는 간호사가 두 분이나 계셔 호흡을 안정시키려 애썼지만 결국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 문턱을 밟고서야 겨우 회복되었다. 내 증상명은 '과다 환기'. 이 증상은 별도의 처치가 따로 없고 환자 스스로가 호흡을 진정시키는 수밖에 없는, 참 서글픈 면이 있다. 

 

 한바탕 소동을 벌인 탓인지 몸에서 기운이 다 빠져나가버린 것 같았다. 며칠이 지나도 회복이 더뎌 온 몸에 힘이 없었고 지독히도 따라붙는 우울함도 마주해야 했다. 여기저기서 건네 오는 걱정스러운 안부인사도 이럴 땐 성가시기만 하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건만 이미 소문은 여기저기 다 퍼져 알지 못하는 분들에게까지 안부인사를 받고 다니는 상황이라니. 속상하지만 이런 '별것 아닌 일'따위를 한 번 겪고 나면 한동안은 이렇게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다. 환자가 아닌데, 아니고 싶은데 여지없이 '공식 환자'로 낙인찍힌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아니다, 아니다 해도 어쩔 수 없나 보다. 퇴원한 지 한 달째였고 잘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쳇. 모든 자신감과 의욕까지 다시 아래로, 아래로 신나게 곤두박질쳐버렸고 내 컨디션도 그와 한 세트였다. 이런 저질 체력 같으니라고.


 너덜너덜한 몸과 마음은 일단 안정을 시켜줘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무기력하지는 말아야 한다. 내 컨디션에 무리가 되지 않으면서도 무력함을 달래줄 적당한 활동을 꼭 가질 것. 이럴 때마다 이상하게 자꾸 엄습하는 불안감을 달래줄 '몰입 거리'가 필요하다.


 땅거미가 진 저녁시간, 집을 나서면 걸어서 7분 거리에 조용한 나의 아지트가 나온다. 넓은 홀의 한쪽에 길게 놓인 원목 테이블, 테이블 한쪽을 비추는 엔틱한 스탠드 조명, 그리고 마주 앉아 있는 유일한 참여자. 1주일에 한번 찾아오는 이 공간이 내 독서모임 장소다. 가까운 곳에 있지만 사실 꽤 어렵게 찾은 공유 공간인데 장소가 꽤 마음에 든다.


 시간에 맞춰 책을 꺼내 찬찬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벌써 세 번째 읽고 있는 꽤 익숙한 책이었다. 책에는 매력적인 문장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었고 나는 그 문장들을 꽤나 좋아한다.

사실 '글자'에 집중할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라 독서가 가능할까 걱정했는데 책을 펼치자 익숙한 책이 주는 아주 익숙한, 그러나 지루하지 않은 작은 울림들이 나의 집중을 무리 없이 끌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숨어있던 따뜻한 문장들도 하나둘씩 고개를 들었다. 어느덧 책 속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사십여분의 시간이 흐르고 독서를 마무리한 후, 수집한 문장들을 수첩에 옮겨 적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문장들을 써 내려간다는 것은 나에게 즐거운 일이다. 

그 시간은 내가 정신적 불안에 시달리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실 컨디션이 나빠질 때마다 어디에도 집중하지 못 한 채 산만해하고 집중하기 힘들어하는 나인데. 

무언가 내가 깊이 빠져들 '거리'가 있다는 것은 나에게 엄청난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 희망이 '글'이 되어주고 있었다. 특히나 '글자'를 쓰는 '행위'가 주는 의미는 남달랐다.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 찌꺼분한 가십거리들, 불필요한 신경들을 다 끌 수 있게 해 주었고 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그야말로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행위다. 그것만으로도 정신을 쉬게 해 준 것 같아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펜을 들게 된다. 필사가 나에게 주는 큰 위안과 안정이었다. 


이 날 내가 쓴 필사의 문장은 더 행복해지기 위해 천천히 보며 살 것을 권하는 글이었다. 그리고 그 문장들을 써 내려가며 다시 한번 현재의 나를 다시 바라봤다. 


'그래. 가끔 주저앉을 만큼 힘들면 주저앉으면 되지. 그리고 쉬었다가 다시 일어나면 되고. 

천천히 가면서 얻을 수 있는 것들도 많아. 영원히 멈추지만 말고 천천히라도 가자.'


첫 번째 독서모임은 그렇게 나를 위한 시간이 되어주었다. 

나에게 독서모임이란 함께 있을 때면 시간가는 줄 모르는 '오래된 친구'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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