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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킴라일락 Mar 27. 2020

어느 이빨 빠진 호랭이의 이루지 못한 꿈 이야기

"내 얼마나 군대를 가고 싶었는데."

그 말은 통화를 끝낸 후에도 자꾸 귀에 맴돌았다. 마음에 통통거리며 살아있었다. 단순히 어린 한때 잠깐 머물다 간 마음이 아니었고 아직도 아빠의 마음에는 그것에 대한 설렘과 동경이 남아있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안다. 내가 아빠만 한 나이 때 아니, 그보다 더 어린 시절부터 늘 부르던 노래가 'part of your world'(인어공주 ost)였으니. 사실 앞의 가사는 별 관심도 없고 잘 부르지도 못 하면서 마지막 엔딩 부분에 가서 만큼은 순도 100% 감정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몰입해서 부르곤 했다. 가끔 눈물도 흘렀다. 나의 현실에서 닿을 수 없는 세상, 너무나 동경하는 세상, 그들만의 세상을 나도 가지고 싶은 그 마음에 가슴 꽤나 앓으며 살았다.


"나는 열여덟 살 때부터 해병대 갈려고 했다니까. 그렇지만 내 아니믄 돈 벌 사람이 읎는데 우짜노."


180cm가 넘는 키에 체격도 주먹도(으응?) 좋은 아빠는 어린 나이 때부터 해병대 입대가 꿈이셨다고 한다. 내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아빠는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는 대단히 무서운 분이셨으니 충분히 귀신 잡으러 가셨을만하다.

고등학교 대신 공장일을 가시던 아빠의 눈에 해병대 군복을 입은 친구 놈은 그렇게 멋있어 보이셨단다. 귀신도 놀라 도망갈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오는 시뻘건 모자도, 유난히 각이 잡힌 군복도 어린 아빠의 마음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나 보다. 당시 해병대는 열여덟부터 입대가 가능해 당장이라도 병역검사를 받고 입대 신청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그럴 수가 없으셨단다. 소년가장이셨다.

몇 년 후.

꿈에 그리던 해병대 입대를 위해 신체검사를 받으러 간 날. 쉬는 시간에 근처 중국집에 가서 누군가 사준 짜장면을 먹으셨다는 아빠. 그러나 그 뒤로 아빠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데만 이틀이 걸렸고 그 후 6개월간 장티푸스로 생사를 넘나들었다고.

"#@%, 그 짜장면에서 쇳조각이 나오고 @!$#@^#% 로 만든 그 !%@#$%$#@짜장면 먹고 내가 !@%$^$%# 고생한 거 생각하면 !%@#$^#$% 어휴, @$#%$^$ 지금도 열 받는다 진짜로."

충분히 이해가 갔다. 꿈이 산산조각 났으니 그 중국집을 산산조각 내고 싶으셨으리라.


이 이야기의 결말은 그래서 결국, 아빠는 본인의 의사와는 정반대로 원치 않는 '병역 면제 판정'이라는 날벼락을 맞아버리셨다고. 군대를, 그것도 해병대 정도는 가고 싶었던 한 젊은이는 그렇게 평생 군대 안 다녀온 상남자로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다 아빠가 해병대를 다녀온 줄로 알고 있다. '동네 형님'으로 통하시는 분이 알고 보니 군대를 아예 안 다녀왔다는 건 죽을 때까지 비밀. 그러니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속으로 쪽팔려서 입도 뻥긋 못 하시는 원한이 얼마나 깊을까.


"오랜만에 옛날이야기하니 재밌네요, 그쵸 아빠?"

"그래."

"아빠가 해병대 안 다녀와서 나는 참 다행이다 싶어요.

안 그래도 어릴 때 아빠가 너무 무서웠는데 해병대까지 나왔으면 우릴 더 후려 잡으셨겠지."


여기서부터 다시 아빠의 2차 발언이 시작됐다. 그 시절, 어린 자녀들에게 당신께서 왜 그러실 수밖에 없으셨는지를. 한 마디로 자상한 아빠 놀이가 낯간지러우셨다나 뭐라나. 예끼. 나쁜 사람 같으니라고.

과자봉지 하나 들고 집에 들어가기가 그렇게 쪽 팔려서 한 번도 애기들 간식을 사주지 않으셨다니. 엇나갈까 봐 그렇게 모질게 대하셨다니. 그러고 보니 서른에서 마흔의 아빠도 아빠 놀이는 처음인 어린 애기였다.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갱상도 사나이인 아빠는 그렇게 나랑 폭풍 수다를 떨고는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가만히 생각했다. 우리 아빠, 참 짠한 시절이 있으셨네. 아무도 안 물어봐서 한번도 이야기 못 하신 거구나.


시간이 지나도 가슴속에 남아있는, 한철 지나는 시절의 이루지 못한 꿈은, 그러나 내게는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것을 이루었더라도 정말 좋았겠지만 아직도 생각만 하면 가슴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일흔 가까운 노인에게 남아있다니. 꿈은 꿈대로 남겨두어도 참 예쁜 게 꿈인가 보다.

어떤 누군가에겐 글 위에서만 실현시킬 수 있는 지난날의 오래된 꿈이 가슴에 하나 둘 여전히 남아있겠지?

성공한 이야기들만이 줄줄이 쏟아져나오 그 노하우를 전시하고 반짝반짝 조명을 비추는 사이 한쪽에선 그 모습을 지켜만 봐야 하는 이야기도 있겠지?

그 애잔함을, 그 렘을, 그 순수함을 나는 사랑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도 누군가 조명을 비춰주면  참 좋겠다 싶다.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하나하나 따다가 책으로 차곡차곡 엮어내 리딩샵 한 곳에 예쁘게 전시해둬야지. 꿈은 꿈으로만 남겨졌지만 당신의 이야기는 살아있다고 전해주고 싶다. 그 이야기를 읽고 누군가의 가슴은 어쩌면 그제야 다시 뛸지도 모르겠다고 전해주고 싶다.


아빠. 몇 년만 기다려봐요.

아주 아주 근사한 선물 하나 해드릴게요.

(참고로 아빠는 내가 글을 쓰는지도, 책을 냈는지도 전혀 모르신다.)





'언젠가 리딩샵'에서 원고를 수집해보고자 합니다.

저희 아빠처럼 오래되고 빛바랜 이루지 못한 크고 작은 '꿈'에 대한 이야기,

별거 아닐지 모를 소소한 '꿈'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털어놓고 싶었던 '꿈'이야기가 있으시다면

한번 책으로 소박하게 엮어보고 싶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제안하기를 눌러 제 이메일로 글을 보내주세요.

기간은 무한정.

여유로운 마음으로 함께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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