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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 Dec 04. 2024

시즌제 라이프

삶이 시즌제라는 표현을 들은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인생엔 분명 시즌이 있어서 시즌별로 테마가 달랐다. 대학생, 직장인처럼 외적 상황이 테마가 되기도 하고, 여유를 찾고 싶다던지, 의미를 찾고 싶다던지 하는 내적 소망이 주제가 되어주기도 했다. 또 한 시즌이 끝나가고 있다.


지난 몇 년간은 잘 맞는 직업을 찾기 위해 고생했다. 단순히 정보를 찾아봤다는 뜻은 아니었고, 경험해 보고 공부해 보며 매진했다. 이제 거의 알 것 같기도 하다. 이 쉬운 걸 아는데 왜 이렇게 힘들었지 싶지만 어쩔 수 있나.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걸.


나는 예술을 하고 싶기도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장래희망란에 시인, 2학년 때는 화가를 적어내고, 그다음부터는 내내 과학자를 적었다. 꼬맹이 때부터 시를 좋아하고 과학을 좋아했다. 공통점이 뭘까? 나도 내내 그걸 찾고 싶었던 것 같지만 표층적으로는 쉽게 묶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점점 심층부로 들어가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가끔은 이미 알고 있는 걸 알려고 해서 결코 알 수 없는 기분도 든다.


모든 생각과 감각과 감정들은 인식의 저층부에서 분해되어 같은 성분이 된다. 저층부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발현을 우리는 공감각이라고 부른다. 16이 파랑이 되고 커피가 무겁고 레몬은 빠른 그쯤에 뭔가 있는 거 같다. 계속 생각하게 되지만, 결국 생각으로는 갈 수 없는 공간이다. 생각은 너무 크다.


"차이라고 한다면 서로 성격이 달라요. … 공연자라면 지휘자가 됐든 배우가 됐든 보이는 인생을 살아요. 너무 축약적이지만 외향적 인생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창작자는 이런 스튜디오에서 혼자 곡을 써 내려가요. 세상과 아주 사적인 소통을 나누죠. 외면이 아니라 내면이 풍부한 인생을 살아요. 두 성격을 다 가진 사람은 … 결국 정신 분열이라는 최후를 맞죠.”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이라는 영화를 봤다. 초반부에 주인공이 독백하는 부분에서 이게 이 영화의 주제임을 알아차렸다. 모순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문을 열어야 하는데, 그에게는 음악이 그 문이지 않았을까? 수렴하지도, 그렇다고 발산하지도 않는 역동을 지녔기에 살아있는 것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거 아닐까?


좋은 결말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엄마 덕분인 것 같다. 내가 아주 어렸던 시절, 엄마는 나를 복이 많은 아이로 생각하셨다. 그래서인지 나도 내가 행운을 타고났다고 생각하게 됐다. 사실 전부 노력이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어떤 결말을 믿는다는 건 그런 결말을 맞을 때까지 노력하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아세틸콜린 즐거움이라는 개념을 접했다. 의미와 체험, 인지와 감각 그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16%나 된단다. 나도 그런 사람인 것 같다. 어쩐지 즐겁더라. 요즘은 사람들이 재밌어하는 것과 내가 재밌어하는 게 좀 다른 것 같아서 고민이다. 답은 잘 모르겠다. 진짜 고민이라서. 고민인 상태로 그냥 두면 된다는 조언을 얻었다. 재밌는 사람이 한 조언이니까 믿어보기.


지난 시즌 끝났고 다음 시즌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이 시기는 지나갔고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또 다음 순간들이 오겠지. 이런 시간이 낯설다. 그냥 둬야지. 그냥 두면 된다고 했으니까. 시작한지도 모르게 시작되어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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