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혁명을 경험한 저자 한사오궁이 2013년에 쓴 문혁 후기. 정작 중국에서는 출간되지 못했다고. 중국에서 문혁은 천안문과 함께 사실상 금기어인 탓인 듯하다. 문혁을 경험한 국민 대다수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여서라나.
개인적으로는 대약진 운동과 함께 모택동의 양대 삽질 중 하나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게 문혁. 대약진의 실패로 실권 위기에 처한 모택동이 정적을 축출하기 위해 지원한 학생운동의 결과가 문혁이라는 게 다수의 시각일 것이다.
1966년 5.16 통지가 하달되면서 문혁의 막이 열렸다. 마오쩌둥은 그 이후 2년간 당과 단체의 전국적인 조직들을 마비시켰다... 학생들의 가두 집회와 노동자의 정권 탈취를 고무했으며... (146페이지)
저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모택동 없었어도 문혁은 발생했을거라는 것.
마오쩌둥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문혁은 발생하지 않았으리라... 이런 역사 우연론은 허황된 것인가, 아니면 변태적 개인숭배의 일종인가. (24페이지)
문혁이 발동된 데에는 다중적인 동력이 있었다. 여기서 지도자의 특성이라는 우연성 역시 홀시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떤 사회 심리의 강력한 기세, 정치적 사건 배후에 있는 사회적 기질과 역사적 명운 역시 더 엄청난 또 다른 추동력이 아닐까. (145페이지)
일단 저자의 주장은 꽤 설득력이 있다.
문혁 전의 중국... 심각한 자원 결핍 아래 분배의 평등을 시행해야 하는 사회주의적 상황... 정상국가를 운영하는 데 유효한 수단을 하나도 사용할 수 없었다... 벌을 주려고 해도 줄 수 없었다. 똑똑한 사람은 알아챘을 것이다. 상도 줄 수 없고 벌도 줄 수 없다면, 남은 도구란 권력과 정치뿐이었다. (95페이지)
어떤 사회적, 경제적 경쟁 수단도 남아있지 않은 당시 중국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건 정치적 사상 투쟁뿐이었다는 것. 그 결과는 자식이 부모를 비판하고, 과거의 지식/기술/문화 기반 기득권을 모조리 파괴함으로써 사상 우위를 과시한 문화혁명.
저자는 문혁을 권력이나 계급투쟁에서 멈추지 않고, 만인에 의한 만인이 투쟁하는 인류 역사의 연장선으로 바라본다. 리더 일인의 영향력보다 극단적 사회주의로 억압된 인간의 인정 욕구가 끝내 폭발한 현상이 문혁이라는 것.
결국 먹고사니즘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면서, 즉 경제적 인정 투쟁 수단이 생기면서 문혁이 약화됐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 자본주의 만세
1972년이 되면 이미 잉여 생산이 발생하면서 시장경제의 조건이 생겨났습니다... 주목할 지점은 시장 경쟁이 생기면서 정치적 투기가 불필요해졌다는 겁니다. 전에는 살기 위해 정치투쟁을 하고 논리를 만들었다면, 이때부터는 정치투쟁이 아니더라도 다른 살길이 생긴 거죠. (384페이지)
하지만 문혁의 발단이 대약진의 실패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모택동은 문혁의 책임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결정적으로 중국공산당과 건국의 아버지인 모택동의 지지가 없었다면 문혁이 중국 전역에 그렇게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당시 홍위병은 아이러니하게도 대약진을 주도한 모택동의 지시를 받은 공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전국 어디를 가든 숙식을 제공받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것을 구악으로 처단할 수 있었다.
홍위병에 대한 개인적 이미지는 '마지막 황제'란 영화의 한 장면이 전부지만, 수천만이 굶어 죽은 대약진 운동을 경험한 나이 어린(뇌가 말랑말랑한) 홍위병들에게 문혁은 신세계였을테고, 그런 신세계를 열어준 모택동은 거의 신이 아니었을까?
정권을 완전히 장악한 모택동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시골로 쫓겨나 비참한 삶을 살았을 홍위병들을 생각하면 모택동 없는 문혁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때 시진핑도 토굴에서 살았다고
저자가 상당히 설득력 있게 인간 본성 탓을 하고, 유럽의 마녀사냥 등을 거론하며 문혁을 불운과 악재가 겹친 끝에 발생한 인류 흑역사로의 재해석을 시도하지만 그냥 모택동을 많이 좋아하는 사람 같다.
(대약진 운동의 실패 앞에) 마오쩌둥은 경위병 앞에서 목이 잠기도록 울고는 고기를 끊고 전국의 인민과 함께 난관을 극복하리라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부종에 걸려 1년 동안 5킬로그램이 넘게 빠졌다고 한다. (124페이지)
기억에 남는 글을 남긴다.
수업이 시작되자 수상한 사람 몇 명이 교실로 돌진해 들어온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조금 뒤 선생은 목격자 증언을 위해 학생들에게 방금 전의 상황을 적어 제출하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결과는 가지각색이다... 매 장면에 대한 학생들의 증언은 다 달랐다. 일치된 기억은 없었다. 교사는 미소 짓는다. 자, 다들 알겠지? 이게 바로 역사라는 거다. (14페이지)
사람마다 서로 다른 '심리 저장량(번역 이상해)'이 있습니다. 여자아이가 거친 말을 하면, 공주님은 말을 예쁘게 했단다라고 해보세요. 그럼 거친 말을 안 할 거예요. '공주'는 바로 여자아이의 '심리 저장량'이거든요. 그걸 건드리면 설득하기가 쉬워지죠... 먼저 정서적으로 맞고 그다음에 이치에 맞고 마지막으로 법에 맞아야 합니다. (330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