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변화를 보다
내 텃밭은 가로 40미터, 세로 20미터 직사각형의 밭으로 처음 만났을때는 이웃 숙박업소가 밭의 입구쪽을 몇개월간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잡초가 안나게 하려고 주차를 했다'는 이웃집 아저씨와 '잡초 때문에 피해가 생길까봐 땅주인에게 전화하려고 했는데 농사를 짓는다니 잘 되었다'는 옆밭 농부의 말이 묘하게 일치하게 들렸다.
'잡초가 참 문제구나'
주차장으로 이용된 밭의 일부는 트랙터로 갈아보니 확실히 땅이 달랐다. 흙이 많이 유실되어 척박해졌고 자갈이 많이 드러나 있었다. 당연히 풀도 나지 않았다. 척박해서 문제가 되는 흙도 있지만 내 텃밭에는 질어서 문제인 흙도 있었다. 옆밭으로 지나가는 농수관이 터져서 내 밭 일부로 물이 줄줄 세고 있었던 것이다. '살갈퀴'나 '달개비'가 많이 자라고 있을때는 몰랐는데 트랙터로 갈다보니 흙이 잘 안갈릴 정도로 물이 흥건했다.
다행히도 얼마 안가서 이웃농부가 수리를 했고 그 자리엔 흙이 푹 들어갈 정도로 흙이 부드러웠고 금방 달개비가 다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처음에 두둑을 배치할때 입구쪽에 별 생각없이 작물을 심으려 했는데 흙의 상태를 보니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두류'를 심거나 어차피 가을, 겨울 파종을 대비하여 녹비식물을 심어야겠다 생각했는데 '살갈퀴 씨앗'을 뿌리는게 좋을듯 하다. 근데 그 척박한 땅의 일부에, 그 거친 흙을 뚥고 어린 새싹들이 맹렬히 올라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달개비(나중에 알고보니 달개비가 아니라 바랭이였다)'로 보였다. 식물들의 생명력이란.
오늘은 뽀뇨와 텃밭에 함께 갔다. 어제 물에 불려두었던 청, 적오크라씨앗에서 발아가 시작되는게 보였다. 두둑 2개를 만들어 하나씩 나눠심었다. 밭에 갈때마다 1~2개씩 두둑을 만들다 보니 작은 두둑이 벌써 13개나 된다. 처음엔 틀두둑을 단단히 만들었는데 가면 갈수록 힘이 부치고 조바심이 나서 둑은 낮아지고 비오기전에 한번 둑경계를 높이고 물길만 내는 급처방만 쓰고 있다.
오늘 옆밭에 양파작업을 하던 할머니(밭을 빌리고 인부를 데려서 농사를 짓는 분)가 내가 하는 걸 유심히 살펴보더니 엄마랑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해서는 돈 못벌어", "올해 처음 해보는건데 농사도 배울겸 하고 있어요"
오늘 밤에 비가 온다고 하여 물통을 덮지 않고 두었다. 300리터 정도 물이 찼는데 비가 온후엔 얼마나 잠길까가 궁금해서다. 구름이 잔뜩 성이 나 방금이라도 비를 퍼부을 기세다. 달개비는 '비가 온 후엔 내가 밭을 좀 가져갈게'라고 말하는 듯하다. 달개비에겐 미안하지만 그렇게 둘수는 없다.
집에 와서는 지난 5일 어린이날에 여성농민회에서 얻은 토종씨앗들을 모종포트에 심었다. 밭에 그냥 뿌렸을때와 비교해서 얼마나 잘 자라는지 살펴봐야 겠다. 포트에 하나씩 구멍을 내고 씨앗을 심으니 왠지 더 정성이 가는듯 하다. 매일 물을 주고 베란다에서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파트라 늘 아쉽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