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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살린 Sep 25. 2023

희망과 구토 사이

 <걸리버 여행기>를 읽고

조너선 스위프트


조너선 스위프트는 18세기 영국의 정치가이자 작가다. 그가 쓴 <걸리버여행기는>  당시 영국을 비롯한 유럽 상황을 풍자한 소설로, 오랜 시간 많은 나라에서 아이들이 읽는 동화로 각색되어 왔다. 동화에는 3부까지 수록되어 있고 가장 유명한 부분이 1부 소인국 편이다. 우리나라에는 2000년대 들어서 처음으로 완역본이 나와 이 소설의 풍자를 제대로 느끼게 되었다.

<걸리버 여행기>는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영국의 의사 걸리버가 선상 의사로 취직해 세계를 돌아다니다  이상하고 신비로운 세계 4곳을 방문하는 이야기다./ 1부는 소인들의 나라 릴리퍼트,  2부는 거인들의 나라 브로브딩내그, 3부는 날아다니는 섬의 나라 라퓨타, 4부는 말(馬) 모양을 한 지성체 후이넘의 나라  


1부 소인국        

제일먼저 방문하는곳은 소인국이다.

소인국은 당시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식민지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1차적으로는 영국 정치를 비판하고 있지만 부차적으로 유럽인들이 유럽 이외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알 수 있기도 하다. 

 걸리버가 소인국 사람들이 제공해주는 음식을 먹으면서 소인국 사람들의 일을 대신해 주기도 하지만 약탈을 정당화하고 그들의 문화를 짓밞는 행동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 보면 유럽인의 제국주의자적인 면을 볼 수 있다.


2부 거인국

두번째로 방문하는 곳은 거인국이다. 

 인간들의 어리석음과 추악함을 풍자하는 내용으로 걸리버는 이곳에서 애완동물 취급을 받는다. 거인국의 왕족의 낭비와 사치를 거대한 풍모로 풍자하고 있다.


3부 하늘에 떠있는 섬 [라퓨타]


 이 곳은 라퓨타라는 왕족들 소수가 살고 있고 그들이  통치하는 나라는 바로 천공의섬 밑 지상이였습니다 . 라퓨타 귀족들은 천문학과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았지 지상의 백성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는 영국의 정치 상황을 풍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부 말들이 인간을 다스리는 나라 후이늠을 방문한다. 후이늠은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말 로 '야후'라는 인간을 다스리고 있다. 야후는 본능에 충실한 추악한 괴물같은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우리 인간을 풍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후이늠들은 이성을 가진 이상적인 존재로 그려내고 있고 그들이 사는 나라를 이상적인 유토피아로 상정하고 있다. 



희망과 구토 사이

(이성과 경향성 사이)          

4부의 일부를 읽어보겠다.

p337

“주인은 나의 얘기를 듣고서 영국의 인간들이 싸우는 이유가 후이늠 나라의 야휴들이 싸우는 것과 별다를 바가 없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야휴 다섯 마리에게 오십 마리의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먹이를 던져주어도 사이좋게 먹지 못하고 한 마리도 예의 없이 서로 독차지하려고 싸운다고 했다. 그래서 야외에서 음식을 먹을 때는 후이늠 하나가 옆에 서서 감시해야 하고 우리 안에서 먹을 때는 서로 떼어서 매어놓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예를 들어 암소가 한 마리 죽으면 야후들이 모두 몰려가서 서로 고기를 차지하려고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고 했다. 그래서 영국에서의 살상 무기 같은 게 없어서 서로 죽이지는 못하지만 엄청난 부상을 서로에게 입힌다고 했다. 또 어떤 때는 아무런 싸울 이유가 없는 데 여러 야후가 심한 싸움을 벌인다고 했다. 그리고 한 지역의 야후들은 이웃 지역의 야후들이 싸울 준ㅂ를 하기 전에 먼저 기습할 기회를 노린다고 했다. 다른 지역의 야후들과 싸울 기회가 없으면 한 구역의 야후들끼리 싸운다는 것이었다.”          


걸리버 여행기에는 인간 세상에 대한 희망과 구토가 동시에 교차한다. 작가는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되게 해주는 것이 이성으로 보았고 동시에 인간은 사악한 경향성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위에서 묘사한 야후의 경향성은 인간의 사악한 경향성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사악의 경향성이란 선, 악의 분별의 악이 아니라 거짓과 사적 욕망의 경향성을 말한다.       


작가가 꿈꾸는 이상향은 인간이 이성으로 사악한 경향성을 극복한 세상이었던 것 같다. 후이늠이 상징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이성이다. 걸리버는 후이늠을 부를 때 항상 나의 주인이라고 불렀다. 후이늠이 주인이 되는 다시말하면 이성이 주인이 되는 인간을 보다 바람직한 인간상이라고 본 것이다.      

스위프트는 당시의 사회가 인간의 이성이 악의 경향성에 굴복한 사회로 보았다. 국가 시스템부터 그 구성을 담당하는 인간에 이르기까지 거짓과 사적 욕망이 그물처럼 드러나지 않는 곳이 없다. 위로는 왕부터 아래로는 선원들까지. 여기저기서 걸리버의 구토가 보인다.     

     

악의 경향성에 지배되는 인간인 야후와 이성에 지배되는 후이늠

그 야후의 속성들이 지배하는 걸리버의 조국과 후이늠이 지배하는 말의 나라

걸리버가 꿈꾸는 나라는 인간의 이성이 악의 경향성에 굴복되지 않고 지배하는 곳..     

그런데 걸리버의 꿈이 이루어진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

현대판 걸리버인 우리는 돛을 띄운다.     

바람이여 불어라, 돛이여 팽팽하라,  찾아보자 후이늠의 나라를                



https://youtu.be/26cN1_-yVdE?si=YAp4N0anpMrXkH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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