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생활 0
일기장에 흩어진 프로젝트 이름들과 야심 차게 개설했다가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버려둔 블로그들을 발견했다. 생활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구나. 책상에 앉아 긴 시간을 돌아봤다. 지금의 생활은 어디서부터 시작했고 어떤 일들을 지나왔는지. 또, 앞으로 어떤 생활을 하고 싶은지.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제라도 한 단락씩 써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동안 기록이 제대로 되지 못했던 건 아마도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설득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쓰레기를 줄이고 플라스틱을 안 쓰고 채식을 하고 샴푸를 안 쓰는 행동에 ‘그게 뭐야? 왜 하는 거야?’라는 질문에 조리 있게 대답할 자신이 없다. 내가 보고 들었던 정보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켜 ‘이랬던 거 같은데...’ 하며 우물거리고 만다.
오랜만에 모인 자리에서 기후변화와 인류의 위기에 대해 논하고, 밥상에서 공장식 축산으로 학대받는 동물들에 대해 스무스하게 얘기할 방법이 있을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늘 어렵다.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거나 잔소리처럼 들릴까 봐 대충 얼버무리고 가만히 있는 쪽을 택한 날이 많다. 어쩌다 용기 내서 한 말이 ‘환경에 관심이 많군요.’ 하는 반응으로 돌아오는 것도 맥이 빠졌다. 서로의 좁혀지지 못한 거리만 느낀 채 내가 너무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사람으로 비치는 것도 불편했다. 난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닌데.
복잡한 마음으로 방 정리를 시작했던 그날부터 시작해, 제로 웨이스트를 알게 되고 기후위기와 비거니즘으로 관심사가 옮겨가면서 세상에 도움이 되진 못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무해한 사람이 되길 바랐다. 환경을 우선순위로 두다 보면 문명의 이기를 포기하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때가 있다. 이미 알아버린 것을 돌이킬 순 없기에 그렇게라도 해서 죄책감을 덜어내고 싶다. 숫자와 통계에 약한 나지만 ‘1.5’는 기억하고 다닌다. 1.5도.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이 이 숫자를 넘기면 우리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조차 아무 소용이 없어지는 날이 오기 전에 뭐라도 해보려고 크고 작은 욕망들과 싸우며 고군분투 중이다.
나의 실천은 자신을 돌보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인류의 앞날은 뿌옇고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속으로 사라질 것 같은 기분이다. 하찮은 것이라도 실천하며 나의 존재를 느끼고 희망의 조각을 모은다. 기록하고 공유하는 일은 어딘가 나처럼 흐릿하게 존재하고 있는 사람을 향해 신호를 보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거기 누구 있어요, 손을 더듬더듬 내밀어 본다. 앞으로도 실수하고 실패하겠지만 같이 힘을 내자고. 그래서 또다시 시작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