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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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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Feb 28. 2021

삼 년 다이어리

황집중의 단련일기 1호

나는 삼 년 다이어리를 쓴다. 365일이 한쪽당 하루씩 날짜가 적혀있고 같은 페이지에 연도만 다르게 3년 치의 일기를 쓸 수 있다. 첫 페이지인 1월 1일부터 마지막 장인 12월 31일까지 쓰면 다시 1월 1일로 돌아가 아래 칸에 다음 해의 1월 1일을 적는 방식이다. 한 면이 삼등분 되어 그날의 일기를 적을 공간이 다섯 줄 정도라 인상적인 것 위주로 간단히 기록한다. 오늘 하루 나에게 실망한 것이나 찰나의 기뻤던 일, 내일을 위한 당부, 그리고 재밌게 본 것이나 날씨 등등 생각나는 대로 시작해서 칸이 허락한 만큼 적는다.


매일 밤 자기 전에 기록을 남기는데, 올해 삼 년 차로 가장 아래 칸에 적고 있다. 첫해엔 일기를 빠뜨리는 날도 더러 있었는데 침대 머리맡에 노트를 두고 매일 쓰다 보니 습관이 되었다. 해가 쌓여갈수록 같은 날짜의 지난해는 어떠했나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1월 3일

2020년 ( 금 )

오늘은 7시에 못 일어나고 9시에 일어나서 아침 요가를 못 했다. 미세먼지 때문에 갑갑했다. 지원서를 쓰기 시작했고, 곶감을 세 개나 먹은 거 같고, 오후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반납했다. 집에 있는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안 빌리려고 했는데 3권이나 빌렸다.


지난해 일기를 보니 올해 적은 일기와 다르지 않다. 거참, 기상 시간과 싸우는 것이 내 평생의 과업인가. 여유롭게 일어나서 요가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며 천천히 하루를 시작하길 바라지만, 여전히 정신없이 일어나 커피 물 끓이고 책상 앞에 앉기 바쁘다. 내친김에 지난 1월의 기록을 훑어보니, 올해는 또 어떻게 될까 하는 기대와 불안감, 새로운 다짐과 실패로 인한 반성과 독려가 이어진다. 이사나 새해맞이 달리기와 같은 이벤트도 있었다. 특히 예술인이란 직업을 갖고 살면서 1월은 흔히 말하는 ‘보릿고개’ 시즌이라 지출에 대한 단속이 빠질 수 없다 (12월에 진행하던 프로젝트나 사업들이 종료되고 1월이 되면 갑자기 백수가 된 듯하다). 아무튼 확실히 다른 달에 비해 목표와 계획이 많이 등장한다.


새해가 되면 열심히 계획을 세우는 이유는 뭘까. 일 년을 살다 보면 꼭 일이 몰리고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갈 때가 있다. 바쁜 일정을 핑계로 생활 속 악순환이 시작되고, 계속 그렇게 굴러가다 보면 삶이 갉아 먹히고 내가 사라진 듯하다. 굴레를 멈추고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 열망. 리셋 버튼이 있다면 확 눌러버리고 싶다. 인류에게 시간이라는 개념이 있어 1년 단위로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 있다는 게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작심삼일이 항상 따라오지만.


올해의 가장 큰 목표는 '취침 전 책 읽기'. 자기 전에 삼 년 다이어리를 쓰고 나면 '조금만 봐야지' 하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것 또한 습관이다. 밤에 누워서 유튜브를 보며 알고리즘 속에서 공허하게 떠다니는 자신을 구출할 때가 되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독서'인데, 유튜브에 대적하려면 매우 매우 재밌는 책을 골라야 할 것이다. 유튜브의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애쓰는 건 잠을 제대로 자고 아침에 잘 일어나고 싶어서 그렇다. 기상을 여유롭게 해서 오전의 작업을 맑은 정신으로 하고 싶은 게 여러 해 동안 내가 가장 이루고 싶은 바이다. 어쨌든 (시키지도 않은 일을 열심히 하는) 창작자로서의 내 삶이 덜 혼란스럽고 마음이 우울하지 않으려면, 누가 지켜보진 않아도 작지만 확고한 규칙을 만드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길이라 여기며 올해도 굳게 마음먹어본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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