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호 Aug 03. 2020

30대에 은퇴하기로 결심했다

왜 1평짜리 직장 책상 위에서 내 40, 50대의 대부분을 보내야 해?

왜 신혼여행 때가 가장 인생에서 행복한 시간이 되어야 할까?


날이 참 맑은 해 질 무렵, 와이키키 해변가에서 서핑을 즐기는 청년들의 웃음소리가 간간히 들리는 가운데 아내와 나는 해변의 한 편에서 앉아 있었다. 신혼여행 하와이의 마지막 날 밤에 노을을 바라보며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신혼여행에서 내가 했던 모든 말과 행동을 재빨리 돌이켜 생각하면서 당황했다. 일단 잘은 모르겠지만 미안하다고 말할까? 일단 눈물부터 닦아줘야 되나?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던 나에게 아내는 말했다.


우리, 이 생애에 하와이를 다시 올 수는 있을까?

해외여행 갔다 온 사람들은 다 겪는다는 '집에 가기 싫어증'의 마수에서 아내도 예외가 아니었다. 내가 잘못해서 우는 게 아니었구나 다행이다를 속으로 외치면서 아내를 달래주었다. 10년 후에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다시 오자고 했다. 그때 와서 하와이섬 꼭대기에서 맑은 밤하늘 별구경도 가고, 샛노란 옐로우탱이 넘실거리는 푸른 하와이 바다에서 스노클링도 다시 하자고. 다음 여행에서는 꼭 바닷가에서 돌고래와 같이 수영하며 놀아보자고.


그런데 생각해 보니 문제가 하나 있었다. 10년 뒤면 우리는 이제 40대가 된다는 거였다. 20대에는 정말 밤을 새도 끄떡없던 몸이 30대가 되니까 하루하루가 달라진다는 느낌을 몸소 느끼고 있던 와중이다. 재미를 위한 운동에서 생존을 위한 운동을 하고, 그마저도 운동을 빠짐 없이 하기에는 바쁜 하루를 보내는 내가 10년 뒤에는 어떤 상태일까. 40대에는 또 어떤 내가 되어 있을지 고민이 앞선다. 스노클링보다는 실버보험이 더 가까운 나이 아닌가 싶은 생각만 들었다. 다른 건 다 그렇다 치고, 10년 뒤에도 신혼여행 다시 가겠다고 우기면 결혼 휴가 쓸 수는 있을까?


@anniespratt from Unsplash

우리는 1평짜리 회사 책상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다.


아무리 작은 원룸 스튜디오도 웬만하면 6평부터 시작하는데, 사무실 책상 앞의 내 공간은 우리 집 화장실보다 작다. 물론 나도 회사 직원들한테 사무실 자리로 10평씩 줄 수 있는 기업은 우리 아빠가 사장님이고, 엄마가 전무님인 직장인 경우 말고 이 지구 상에 없을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가족기업은 커녕 가족텃밭 한 뙈기도 버거운 대부분 사람들에게 내 이름표 있는 책상에 앉아서 일하는 것만으로 고마워해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나는 눈 감은 채로 침대에서 인생의 1/3을 보내고, 출퇴근 1시간씩 평일 10시간은 회사를 위해 사용한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중에서 생각해 보면 한 자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회사 책상인데, 그 좁은 1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내 가장 젊은 날에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이게 정말 최선일까라는 생각이 계속 차올랐다.


10대, 20대에 우리는 그 조그만 책상에 앉아서 대부분의 시간을 책들과 씨름하면서 지냈다. 거기에 대한 보상으로 남은 30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화장실만 한 공간에서 허리디스크에 걸릴 위협에 시달리면서 보내게 되었다. 물론 예전에는 돈을 내면서 시간을 보내는 쪽이었지만, 지금은 돈을 받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쪽에 가깝다는 차이점은 있지만 말이다.


우리는 소중히 보내야 할 젊은 날과 건강을 돈으로 바꾸고 있다.

혹자는 그래도 앉아서 일하는 거에 감사해야 되는 거야,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젊었을 때 바싹 일해서 모아야 늙어서 폐지 안 줍고 다니는 거야!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글쎄, 서서 일하거나 움직이며 일하는 게 허리디스크와 목디스크 걸릴 위험이 대폭 줄어든다던 건강잡지의 한 기사가 생각나네. 그럼에도, 앉아서 일하는 화이트칼라 직업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꿈꾸며 대기업, 공무원이 되길 바라던 우리가 맞이한 현실은 많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 노동의 대가로 매달 통장에 꽂히는 월급의 달콤함에 취해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소중히 보내야 할 젊을 날과 건강을 팔아서 돈으로 바꾸고 있는 것에 대한 회의감을 쉽사리 떠내 보낼 수가 없었다.



꼭 떠밀려 떠나는 순간까지 존버 해야만 하는 걸까?


모든 연애가 결혼 아니면 헤어짐이라고 하던데, 직장에서는 일과 결혼한 것처럼 아무리 애정을 바치든 아니든 누구나가 언젠가는 퇴사를 하게 된다. 그 피할 수 없는 이별의 순간을 우리는 은퇴라고 지칭한다. 은퇴를 하게 되면 결국 우리는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든,  혹은 새로운 직업을 찾게 된다. 백수도 하나의 직업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면 말이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죽음을 피할 수 없듯이 입사하는 순간부터 은퇴는 누구나 피할 수 없다.


새로운 도전, 속세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명예퇴직. 다양한 말과 여러 가지 뉘앙스로 표현되기는 하지만 퇴사를 의미하는 단어들이다. 마지막까지 버티고 버티다가 퇴사를 하든, 박수 칠 때 떠나든 결국 퇴사하게 되었을 때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무엇일까? 장그래를 바라보던 오 과장은 이야기한다. 회사 안은 전쟁터인 줄 알았는데, 회사 밖은 지옥이었다.라고. 준비 없는 퇴사에게 펼쳐진 풍경은 절대 평화롭지 않고, 다른 형태의 노동을 찾아 헤매거나 매일매일 퇴직금이 사라져 가는 불안감으로 가득찬 가시밭 길이다. 누군가는 새로운 직업을 찾아서, 혹은 새로운 사업거리를 찾아서, 이도 저도 아니면 불안한 마음에 치솟는 집값과 조금씩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마냥 바라볼 수밖에 없다.


회사 안이 전쟁터인 줄 알았는데, 회사 밖은 지옥이었다.

다시 하와이로 돌아가자. 우리가 얘기했던 대로 10년 후에 하와이를 갈 수 있기는 할까? 10년 후에 회사에서 더 바빠지면 바빠지지, 절대 덜 바빠지지 않을 텐데 말이다. 하와이 정도 가려면 최소한 1주일에서 2주일은 휴가를 내야 하는데, 휴가를 열심히 모은다고 한들 그렇게 긴 시간을 휴가를 낼 수 있는 걸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우리가 하와이를 갈 수 있는 시나리오는 딱 하나였다. 퇴사. 이왕이면 쫄리지 마음이 들지 않는 은퇴를 할 수는 없는 걸까. 이래서 다들 주식도 하고 부동산도 하고 그러나 보다 싶었다.



내가 직장에 출근하지 않아도 나에게 월급을 주는 내 든든한 백을 만들자


적극적인 은퇴 방법을 이래저래 찾다가 한 다큐멘터리에서 접한 단어가 나를 사로잡았다. 미국의 깨어있는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은퇴를 준비하는 방법, FIRE. 이게 뭐지? 하는 마음에 구글링도 하고, 서점에서 관련한 책도 섭렵하게 되었다. Financial Independence & Retire Early. 경제적 자유를 통한 조기 은퇴. 이 방법의 핵심은 나의 자동적인 소득이 내 생계비용과 같아지는 순간에 은퇴를 한다는 것이었다.

FIRE: Financial Independence & Retire Early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통해 적극적으로 달성하는 빠른 은퇴

젊은 시절에 어떻게든 저축을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끌어모아서 장기투자 자산에 몰아넣은 뒤 시간을 두고 묵혀 놓는다. 잘 설계된 투자자산은 잘 숙성되어 시간이 지나면서 현금흐름을 창출한다. 그러면 내가 굳이 출근을 하지 않아도 나에게 월급을 주는 존재가 생긴다. 동시에 우리의 행복에 딱 필요한 만큼의 검소한 소비습관을 만들어서 필요한 은퇴자금이 적어진다는 것은 덤이다. 그럼 나는 자유롭게 내 시간을 마음껏 쓸 수 있다. 발리를 가도 되고, 하와이를 가도 되는 시간이 주어지는 거다.

 

@simonmigaj from Unsplash


로또를 1년 정도 사봤는데, 아무리 해도 우리 부부의 운은 로또 5000원 당첨되어서 아메리카노나 한 잔 마시는 게 최대한의 운인 것 같다. 그나마도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업은 감당이 안된다. 로또를 맞을 수 없다면, 적극적으로 로또 맞은 것과 비슷하게 퇴사할 수 있는 백을 만들자. 그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서 해 버리자. 그래야만 우리가 꿈꾸는 10년 뒤 하와이도 갈 수 있고, 더 건강할 때 코딱지 남짓한 회사 책상에서 남의 사업을 도와주는 일을 그만두고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쓰고 싶었던 책을 쓰는 일일 수도, 배우고 싶었던 러시아어를 더 배우는 것일 지도, 혹은 평소에 가고 싶었던 곳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내 아내는 내가 아이폰 중고 사기를 당하자, 대신 복수해 주겠다면서 끝까지 추적해서 교도소까지 보내고 교도소 작업 일당까지 추심해서 돈을 받아낸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아내는 이왕 피할 수 없는 거라면 어떻게든 끝장을 보자는 생각에 동의했다. 피할 수 없는 은퇴라면 차라리 우리 10년 후로 은퇴를 당겨서 미리 해버리자. 우리가 일하지 않아도 우리를 먹여 살릴 돈이 나올 구멍을 만들어 내자고. 그게 우리 결론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30대에 은퇴하기로 결정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