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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다 Jan 03. 2023

PD의 아침, 엄마의 아침

엄마가 되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임신출산으로 늘어난 몸이라든가, 경제적 사정, 입는 옷, 쓰는 단어, 원색으로 칠해진 집의 인테리어...

하지만 나에게 가장 와닿는 건 ‘달라진 아침’이다.




원래 나에겐 아침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아침잠도 많았거니와 PD가 되고나선 대부분 밤샘으로 하루 일이 끝났기 때문에 눈을 뜨면 아침이 삭제돼있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PD의 하루는 보통 정오쯤 일어나서 아침 대신 점심을 먹는 걸로 시작된다. 오후 2시쯤 출근해서 회의, 촬영 등을 마치면 밤 12시쯤에야 편집 일정이 ‘시작’될 때가 많았다. 아이고 하기싫어 하면서 편집기를 깨작거리다보면 새벽 1~2시쯤 야식을 찾게되고 잠깐 선후배들과 떠들다... 새벽 5시쯤 절정의 집중력을 발휘한 뒤! 아침해를 맞으며 후비적 후비적 침대로 들어가는 거다.


이렇게 3~4년을 살다보니 어느날 아침이 사라진 것이 너무 억울했다.

또 저렇게 살다가도 지방촬영이 있는 날은 새벽 5~6시에 일어났고, 방송이 가까워지면 연달아 밤을 새기도 했으니... 뒤죽박죽 시차에 몸이 너무 망가졌다.


그래서 나는 드물게 ‘아침’이 있는 PD로 살기로 했다!

일의 특성상 완전히 규칙적으로 살 순 없어도 종잡을 수 없는 이 시차라도 줄이기로 한 거다.


늦어도 새벽 2~3시엔 편집기를 놓았고 늦어도 아침 10시엔 일어났다. 잠깐만. ’아침’이 있는 PD로 산다는 게 고작 10시? 하시겠지만 이거, 방송일 하는 사람이 들으면 아마 나를 존경할지도 모른다. 아직도 내 주변엔 아침형 PD가 거의 없다. 그도 그럴것이 PD들끼리 전화할 때 첫마디가 보통 “일어났니” 니까. (정오 전엔 전화도 안하는 게 불문율)


오전에 연락하면 답이 없고 오후에 연락하면 답이 잘 오는 게 PD의 습성이다...




아침이 있는 삶은 훨씬 좋았다.

우선 직접 해먹진 못해도 아침을 먹게 되었다. 모니터를 보며 우걱우걱 해치우는 게 아니라 꼭꼭 씹어서. 오전이 생기니 은행일도 볼 수 있었다! 그동안은 오후에 일하느라 은행 한번 가기가 그렇게 힘들었었는데! 방송국 바깥의 아침은 활기가 넘쳤고 사람들은 열심히 살고 있었고 모든 생산적인 일은 아침에 일어나는 것만 같았다. 내가 보던 햇살은 항상 웜톤이었는데 아침햇살은 쿨톤이란 것도 처음 알았다!


그때부터 나는 출근전에 꼭 혼자서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렇게 앉아 하루를 준비할 때면 앞으로 맞이할 전쟁같은 하루가 멀찍이 떨어져 보이기도 했다. 곧 작가들은 다급하게 전화를 하고 선배는 화를내고(선배들은 보통 화를낸다) 후배는 빵꾸를 내고(후배들은 보통 빵꾸를 낸다....) 기술국에선 편집본 언제 나오냐고 닥달하겠지만 아직은 방송국놈들이 자고 있을 시간이다. 전화도 카톡도 안 오는 아침은 나만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5년쯤 보냈나. 나는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되고 나의 아침은 또 바뀌었다.


나는...

더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절망의 아침이야기는 2편에...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해선 잘 못먹는 과일을 정성들여 다져서 먹었다
혼자 좋아하는 가게들에 가서 좋아하는 메뉴를 먹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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