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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정 Jan 22. 2024

김 빠진 콜라

김 빠진 콜라로 보는 엄마의 사랑

내게 있는 특이 식취향 중에 하나가 바로, 김 빠진 미지근한 콜라를 마시는 일이다.

탄산이 너무 쎄면 목이 아프고 너무 차도 목이 아파서 언제부턴가 김 빠진 미지근한 콜라를 마셨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콜라를 사자마자 뚜껑을 따서 보관하거나 그런 괴짜는 아니고 금방 막 따라놓은 콜라를 상온에 좀 뒀다가 먹거나 외식할 땐 얼음이 녹을 때까지 기다리는 정도였다. (이것도 이상한가?)

아무튼 얼마 전,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본가에서 가져와야 할 게 있어 내일 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 날 본가에 가서 짐을 챙기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콜라가 먹고 싶어져서 "콜라 먹고 싶다, 콜라 있어?"라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냉장고가 아닌 베란다로 나가서 콜라를 가져왔다. 엄마가 준 콜라를 따보니 이미 개봉한 적이 있어 김이 다 빠진 콜라였다.

"이거 뭐여? 김 다 빠졌네?"
"응. 너 김 빠진 콜라 좋아해서 어제 열어놨는데"

일명 톡 쏘는 맛으로 먹는 콜라를 딸이 온다는 소식에 전날부터 뚜껑을 따놓는 엄마를 보니, 이유 모를 웃음이 터져 버렸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늘어날수록 아내가 되는 일, 더 나아가 엄마가 되는 일을 자주 보게 되고 생각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자주 우리 엄마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엄마가 된다면, 그 그림자만큼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까

다른 가족들은 물론, 본인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자기 전, 졸린 눈을 비비며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 뚜껑을 여는 그 사랑을 내가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교회 가는 길에 콜라가 먹고 싶어 엊그제 따놓았던 김이 빠진 콜라를 챙겨 나오면서 다시 엄마를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을 살아가며 어딘가 다른 모습들을 들여다보는 노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또 그건 엄마니까 할 수 있던 거 아닐까? 라며 피곤한 관계의 문제에 핑계를 대본다.

근데 가끔은 나도 톡 쏘는 콜라가 먹고 싶은 날이 있고, 사실 그날이 엄마 집에 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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