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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정 Jul 17. 2024

과민성대장증후군

우울의 원인이 소화불량이라서

"엄마, 나 커피를 자주 마셔서 그런지 최근에 물을 잘 안 먹었더라고?"
엄마에게 말하며 정수기 버튼을 눌렀다.

물을 마시고 싱크대에 컵을 가져다 두는데 순간적으로 정신이 혼미했다. 눈앞이 또 흐려졌다. 눈앞이 흐려지고 안 보이는 게 익숙해지면 안 되는데, 최근 들어 자주 있던 일이라 나름 경력직처럼 선 자리에서 눈을 두어 번 질끈 감았다.

엘리베이터까지 마중해 주는 엄마를 뒤로 하고, 지하철역으로 향하는데 속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한 걸음걸음마다 물에 푹 젖은 사람처럼 기운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물토를 했다. 먹은 게 없으니, 토하는 게 덜 괴롭긴 하지만 여전히 익숙지 않은 불쾌한 기분이었다.

걸음을 뗄 때마다 구토를 하는 나를 보며 자책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제야 뭐 좀 먹고 하려는데 왜 또 시작이지? 나는 누구 말처럼 괜찮아지면 안 되는 사람인가?

불과 몇 주 전, 내 고민은 먹지도 않는데 장이 뒤틀리고 자꾸 화장실로 향하는 것이었다.

"오빠, 나 왜 먹지도 않는데 자꾸 토하고 화장실 가고 그러지? 온몸의 수분이 다 빠지는 기분이야."
"너 과민성 대장 증후군 아님?"
지금 슬프고 짜증나 죽겠는데 죽고 싶냐는 말과 함께 등짝을 세게 때렸다.

"아니, 그게 아니라 너한테 일어나는 일들을 어떤 사건 때문에 생기는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거야. 그냥 너 몸 이렇게 무너지는 거 자주 있는 일이잖아. 지금 일어나는 일들의 원인을 너의 우울에서 찾지 말라고. 그냥 그렇게 생각해 봐.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라고."

이 말을 듣고 난 후, 일련의 탈수 반응을 가만 두기 시작했다. 토할 수도 있고 쓰러질 수도 있다. 사실 좋은 건 아니지만 몸이 부서지는 게 낯선 사람도 아니었는데 어떻게든 슬프려고 노력하는 사람 같은 나를 멈춰야 했다.

어제 영화 보는데 별안간 배가 고파서 핫도그 하나를 뚝딱 해치웠다. 기름 지고 조금 자극적이라 음료를 진짜 많이 마셨는데 어쩌면 속에서 "너 과민성 대장 증후군 아님?" 하고 밀어낸 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아니면 어때. 그냥, 그렇게 생각하지 뭐. 이 세상 어떤 소리도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도 내 안의 소리는 내 거니까 말이다.

물론 몸 때문에 푹 꺼지는 건 사실이지만 마음만큼은 '과민성 대장 증후군' 같아서 편안해지는 보통의 하루가 시작됐다. 다들 피할 수 없을 땐 '과민성 대장 증후군' 같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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