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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정 Feb 12. 2022

먼길로 돌아가자

결국 먼길로 돌아가려는 우리의 이야기

오늘은 2주에 한 번씩 있는 방송작가들의 에세이 모임이 있던 날이다. 각자가 지정한 책을 2주간 읽고 마지막 날, 해당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에세이로 풀어내는 모임이다.

이번 주 책은 <먼길로 돌아갈까?>라는 게일 콜드웰의 에세이였다. 두 여성의 가늠할 수 없는 우정과 즐거운 비밀, 먼저 보내야 하는 이별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무리 긍정적인 이야기를 찾으려 해 봐도 내게 죽음은, 거기다가 친구라는 재료까지 붙어버리면 단 한 가지 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9년 전 여름, 먼저 보낸 내 소중한 친구의 이야기. 대화가 살아있던 마지막 순간에 본 이가 나였던 것에 대한 죄책감이 가득했던 그날.

평소에 글을 빨리, 또 어렵지 않게 써 내려가는 편인데 이번 글은 몇 번을 고치고 몇 날을 보내도 차마 다 완성하지 못했다. 지난겨울 납골당 앞에서 낄낄대며 웃던 내가 9년이란 시간 동안 덤덤해진 줄 알았지만 꿈에도 상상치 못했던 친구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 가는 글은 내게 쉽지 않았다.

차마 마무리를 짓지 못한 글을 작가님들과 나누며, 결국 끝에는 탈고를 하지 않겠다는 결론에 달았다. 그냥 오늘도 아프지 않고 글을 쓴 것에, 친구의 이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지나온 시간이 무색하게 심장이 요동치고 코끝이 시큰함에 다행이고 감사하기에 말이다.

이 책 속에 "나는 시간이라는 것의 폭력성을 실감했다."라는 문장이 있었는데, 내가 오늘 그 폭력성을 실감했다. 두드려 맞은 것도 아닌데 9년이란 시간이 둔탁하게 내려쳐 너무나도 아프고 아리다.


그래서, 지겹도록 두렵지만 잊고 싶지 않은 사랑하는 우리의 이야기를 조금만 먼길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래도 너라면 괜찮다고 할 거니까. 내 기억이 맞다면 말이다. 


천천히, 먼길로 돌아가자.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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