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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산 Jul 23. 2018

단골손님

   

윤이가 학교를 졸업한다는 건 더 이상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는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지식과 정보 축적을 통한 학습과 성장이 아니라 윤이가 정말 좋아하고 또 하고 싶은 것을 배우고 성취해 갈 수 있는 개성의 자유로운 성장을 의미했다.      

공교육 과정보다 조금 더 느슨하고 자유롭게 배우고 학습할 수 있는 대안학교를 다니게 된 윤이는 초등 공교육 2년의 악몽에서 벗어 날 수 있었고 세 번의 검정고시로 대안 초∙중∙고의 전 과정을 검증 받고나서 당당하게 고졸의 학력을 갖추게 되어 어떤 진로라도 선택할 수 있었다.

   

친구 중 몇은 대학으로 진학하고 윤이를 포함한 몇은 확실한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 머뭇거릴 무렵 학교가 소속된 지역 복지관 내의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 

서울시가 마련해 준 사회적 기업의 카페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윤이에게 그것은 기대만큼의

설레임이었다.

사람 좋아하는 윤이가 항상 사람들을 상대하고 만나는 일, 처음으로 하는 사회생활이 엄마인 내게도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다가왔지만 과연 그의 신체적 조건과 체력이 그것을 감당할지는 못내 우려가 되었다.    


원만한 성격과 편안한 미소로 상대를 금방 무장해제 시켜 남녀노소 누구라도 친구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윤이 만의 큰 장점이었다.

복지관을 찾는 학부모나 인근 주민들이 쉽고 편하게 이용하는 카페에는 윤이를 찾는 단골고객이 점차 생겨났고 심지어 친한 이웃이 많지 않았던 프랑스인 아기 엄마와는 매일 아침 커피를 매개로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에게 서툰 영어는 바디 랭귀지와 눈빛 교환으로 보충하여 소통에 필요한 마음의 온기와 사랑을 나누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고 했다.

   

편견 없이 친절한 미소로 응답하고 공감해주는 사람을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세상에서 소통의 대가 윤이는 누구에게나 편안한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는지 모른다. 

윤이를 찾는 카페의 단골손님들은 커피가 아니라 휴식과 공감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간단한 인사말 말고는 할 줄 아는 영어 단어나 문장이 별로 없는 윤이가 길을 묻는 외국인을 안내하고 목적지까지 택시를 태워 보내주었다거나 퇴근 길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피 흘리고 쓰러진 할머니 주위에서 겁에 질린 사람들을 뚫고 달려가 119 차가 올 때까지 보호자의 역할을 했던 믿기 힘든 에피소드는 윤이 안에 숨겨진 담대함과 용기 있는 사랑을 보여 준 어메이징 스토리로 아직도 내게 남아있다.    

부족하고 허약하여 언제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윤이의 이처럼 당차고 대범한 사랑은 부실한 외모 안에 감춰진 선천적 자비로움과 휴머니즘이 아니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유전자로는 도무지 입증이 불가능한 내적, 외적 존재. 

어떤 상황 속에서 자연스레 나타나는 것이 존재의 숨길 수 없는 본성이라면 

윤이는 미소로 잘 다물어지지 않는 입처럼 이미 경지에 도달한 자비와 사랑의 완전체가 아닌가 싶었다. 

그 때 처음으로 나는 윤이의 웅숭깊은 내면 세계와 존재의 의미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해 보았던 것 같다.  

   

카페에서 일한 지 일 년이 되어갈 무렵, 일이 힘들다고 여러 차례 호소를 하였는데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해졌다. 

조금 힘들다고 쉽사리 싫증내고 그만 둔다면 앞으로는 할 수 있는 일과 선택의 폭이 줄어들 것 같았다.

작은 공간에서 반복적인 일을 하는 것과 사람들이 몰리는 점심시간에 뜻대로 빨리 움직여 주지 않는 손발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오후가 되면 너무 피곤하여 앉아 있기도 힘들다고 울먹였다.

주 3일 하루 8시간 근무조건이면 그래도 해 볼만 하지 않은지, 진로를 결정하고 나서 일을 그만 두는 것은 어떤지 설득하면서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 싶어 우선은 영양 섭취와 체력보강에 힘을 모았다.      

그 무렵부터 커피잔이 너무 무거워 손을 떨다 떨어뜨리거나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지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출근길 버스에서 넘어져 멍이 들거나 다치고 카페에서 넘어져 이마가 찢어지고 지하철 계단에서 넘어져 코뼈가 부러지는 등 한 달이 멀다하고 병원 응급실 신세가 되었다. 

여태 이름난 대학 병원의 정형외과, 성형외과, 재활의학과, 물리치료실 등에 이름을 올린 단골이긴 했지만 응급실까지 접수한 고객님이 될 줄이야...

   

졸업 후 1년은 카페에서 단골손님을 맞는 친절한 바리스타로, 

그 다음 1년은 병원 응급실의 단골손님으로 보낸 시간이었다.

예기치 않은 사고들로 윤이의 몸은 허약해져 갔고 또 날로 허약해지는 몸 때문에 사고가 이어졌다. 

일정 패턴의 연속된 사건 사고를 단순한 실수나 해프닝으로 넘기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지만 불길한 예감을 애써 외면하는 심정으로 응급실 사고 수습에만 전념했다.  

  

진로를 정하고 나서 카페 일을 정리하려 했던 애초의 계획은 출근길 지하철 계단 낙상사고로 코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응급실을 거쳐 수술실로 직행 하게 되면서 고민할 것도 없이 해결되었다.

윤이를 찾는 카페 단골손님들의 아쉬움을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전해 들으며 몸을 회복하기 위해 안정과 휴식의 긴 시간을 가져야 했다.    

마음 속에 단골손님들의 미소와 이야기를 간직하고 제 몸의 상처로 응급실 단골손님이 된 윤이는 두 번 다시 그들을 만나보지 못한 채 병상에서 아름다웠던 그 때를 두고두고 추억해야 했다.

윤이의 마음 속에 들어와 함께 눈 맞추며 정을 나눴던 단골손님들은 윤이를 어떻게 기억하고 추억할까.   

 

카페의 단골 손님 대신 엄마의 하소연과 푸념을 들어주고 경험 많은 어른처럼 스치는 한마디로 나를 돌아보게 했던 윤이와 TV를 같이 보고 그의 개그코드로 깨알 재미를 나누며 삼시 세끼 모든 일상을 함께 해야 했던 나는, 주인과 손님이 따로 없는 서로의 단골손님이 되어 자칫 지루하고 짜증날 수 있는 긴 요양의 시간을 찰진 재미와 웃음을 만들면서 하루하루 견뎠다. 

어른이 되었어도 도무지 벗어날 길 없는 윤이의 뒷바라지와 그것 말고는 달리 할 것 없는 내 처지를 생각하면 한숨과 신세한탄이 절로 나왔지만 이런 상황조차 내 삶의 일부이고 이런 하루하루가 모여 내 인생의 퍼즐이 완성 될 것이라는 생각에 지금껏 그래왔듯 먼 하늘 한 번 바라보고 큰 숨을 내쉬며 오늘을 아름답게 살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언제나 엄마를 기다리며 곁에서 함께 속삭이거나 볼을 비벼주길 기다리던 아기와도 같고 또 득도한 도인과도 같았던 나의 골수 단골손님 재윤이는 지속적인 치료와 요양에도 몸이 조금씩 마르고 쇠약해져 갔다.     

알 수 없는 불안과 풀리지 않는 의문을 한 켠에 두고도 머잖은 회복과 건강한 일상을 희망하던, 아주 오래 된 옛 이야기 같은 지난 시간이 생각날 때면 미래의 소망으로 생기가 돌던 나와 쾌유를 의심치 않았던 재윤이의 환한 미소가 함께 떠오른다.  

   

그런 날엔 진한 커피 한 잔에도 금새 취해 버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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