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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마케터 Jul 03. 2021

왜 VF그룹은 슈프림을 인수했나?

MZ세대 이해기/김만희


기업 비전과 전략 입증


디지털 비즈니스 강화 및 기회 제공

지난 11월 9일 새벽, 미국 VF그룹은 뉴욕 기반 패션브랜드 슈프림(Supreme)을 약 2.3조 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VF그룹은 일반 소비자에게는 낯설겠지만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 반스(Vans), 팀버랜드(Timberland) 등 국내외 패션 시장에서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를 보유한 회사이다. 

VF그룹 회장 스티븐 렌들(Steve Rendle)은 “슈프림 인수는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기 위한 우리의 비전과 전략을 더욱 입증하는 것”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해 의류 및 신발 제조업체에게 필요한 디지털 비즈니스를 강화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슈프림 인수에 팬들의 반응은 ‘RIP’

VF그룹의 공식 인수 입장문에는 왜 슈프림을 인수했는지에 관해 간략하게 소개돼 있다. 요약하면 ‘슈프림은 VF의 반스, 노스페이스, 팀버랜드와의 오랜 협력 관계가 있었고, 슈프림은 VF의 브랜드가 매력적인 소비자 세그멘트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며, VF는 슈프림에게 글로벌 공급망, 국제 플랫폼, 디지털 기능 및 소비자 이해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슈프림은 VF 포트폴리오 이외의 브랜드와 계속 협력할 것이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식 입장문을 살펴보면 이번 인수는 갑작스러운 인수합병이 아닌, 지속적인 협력관계 속에서 VF와의 전략적인 제휴라는 것이다.

이번 인수는 VF그룹이 슈프림을 인수한다는 소식 자체도 놀랍지만, 설립자 제임스제비아(James Jebbia)를 비롯한 기존 경영진들이 여전히 회사에 남아 VF그룹의 기존 브랜드들에 슈프림 DNA를 이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에 관련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기대감과 달리 슈프림 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특히 펜실베니아 출신 슈프림 마니아로 널리 알려진 에릭 화이트백(Eric Whiteback)은 ‘Rest In Peace’ 게시물을 올리면서까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생각보다 부정적인 팬들의 반응에 놀란 VF그룹은 “전략은 매우 클리어하다. 슈프림의 브랜드전략은 극적으로 성공적이며, 우리는 장기적으로 성장할 계획이다. 우리가 그들을 망칠 일은 없다”라고 부사장이 발표까지 했다.  

이번 인수를 통해 거대 브랜드 기업의 부사장이 직접 팬들에게 인수합병해도 기존 브랜드 정신을 해치지 않고 유지한다는 발표까지 하는 상황을 보고 다시 한 번 슈프림의 팬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궁금해졌다. 슈프림은 어떻게 MZ세대들이 열광하는 브랜드가 됐을까?  

거리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했던 창립자 제임스 제비아는 스케이터들이 ‘쿨’하게 입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쿨하게 입는다는 것은, 특정 스케이터 브랜드에 종속되지 않고, 그들의 취향에 맞는 상품들을 그들 자체가 큐레이션한다는 의미다.  




슈프림은 제품과 소비자들의 입을 통해서만 소통한다

그들을 위해 슈프림은 그들이 좋아할만한 브랜드에 대해 연구하고, 뉴욕의 젊은 스케이터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상품을 제안했다.

사실 처음부터 슈프림은 스케이트 브랜드에 대한 편견이나 예상을 깨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다만 ‘왜 우리는 일상에서 입을만한 양질의 제품을 만들면 안 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슈프림 매장을 기획했다고 한다. 

1. 기본에 충실한 상품 기획: 고객 눈높이에 맞춘 좋은 품질, 합리적인 가격

너무나 뻔한 말이라 실망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미국 시장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슈프림은 스케이트 보더들에게 의류의 기본을 알게 해준 브랜드이다. 

오래 입을 수 있는 좋은 품질의 옷을 만들어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한다. 어떻게 보면 간단한, 하지만 패션 산업의 기본기라 할 수 있는 것에 뉴욕의 스케이터들은 열광했다.  

미국 영화에서 가끔씩 보던 허름한 오버사이즈 셔츠와 목 늘어난 티셔츠, 헐렁한 청바지와 반스 신발로 대변되던 스케이터의 스타일에서, 정갈한 티셔츠와 세련된 슈프림 박스 로고, 그리고 흔하게 볼 수 없었던 가죽재킷이나 플란넬 셔츠 등 슈프림은 기존 스케이터들의 스타일 문법을 철저히 자기중심적으로 제안하고 판매했다. 

슈프림 창립자 제비아는 기존 스케이트 브랜드들의 품질에 많은 불만을 느꼈고 폴로, 노티카, 칼하트 등 기존의 뉴욕에서 팔리는 캐주얼 브랜드들만큼 좋은 제품을 만들고자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객의 눈높이에 맞춘 제품의 퀄리티라는 점이다. 스케이트 브랜드들의 저품질에 길들여있는 고객들에게, 그들에게 익숙한 브랜드만큼의 퀄리티를 제안함으로서 합리적인 가격이면서도 상대적으로 고급스러운 품질을 줄 수 있었다. 



2. 판매방식의 변화: 고객에게 품절의 고통을 느끼게 했다

초기에 슈프림이 한정생산을 했던 것은 재고를 넉넉히 유지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DTC(Direct To Customer) 방식이 익숙지 않은 미국 패션시장에서 안 팔리면 재고를 다 떠안아야 하는 부담을 덜기 위해 생산 자체를 줄였다. ‘판매실기’보다 ‘재고리스크’가 슈프림은 더 크게 다가왔던 것이다. 홀세일 방식이 아닌 직접 생산·판매를 하는 국내 패션회사들이 슈프림과 같은 브랜드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정 생산을 통해 소비자의 구매욕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외부에서 보는 슈프림 판매방식의 평가이다. 어떤 제품이 잘 팔리면 리오더 방식으로 추가 제작하는 선택을 하는 대신 그들은 다른 제품을 새로 만들었다. 이는 슈프림이 만드는 것들은 언제든 살 수 있는 기본 아이템이 아닌 팬들에게 흥분을 일으키는데 동인으로 작동했다. 

아울러 지금의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의 판매 문법처럼 되어버린, ‘Drop’은 소량의 재고를 입고하기 위해 슈프림이 찾는 해법이다. 

2013년을 기점으로 슈프림은 F/W와 S/S로 나눠 매년 시즌 컬렉션을 출시하는 한편, 그동안 매주 목요일에 열리는 드롭데이를 통해 제품을 나눠 판매한다. 제품 정보가 사전 유출되지 않는 이상 어떤 아이템이 등장할지는 알기가 어렵다. 

수요는 늘어 가는데 공급이 줄면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가격이 오른다. 슈프림의 한정생산, 드롭이 ‘리셀(RE-SELL)’의 배경이 된 이유이다.

이는 어느 백화점, 마트에 가도 쌓여있는 제품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MZ세대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쿨함을 지키는데 필수템으로 자리 잡은 이유가 됐다.  

3. 혁신적인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컬래버레이션, 컬래버레이션 그리고 컬래버레이션

혹시 당신이 처음 슈프림을 알게 된 계기가 어떤 것일지 몰라도, 광고를 통해 처음 알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슈프림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에서 배제되는 것은 페이드 미디어(Paid Media, 지불 매체)이다. 다만 슈프림은 ‘브랜드X브랜드’로 표시되는 협업을 통해 고객에게 어필했다. 

컬래버레이션은 슈프림이 원조는 아니지만, 그들만의 컬래버레이션 기준을 통해 대상 브랜드에게는 쿨함을, 슈프림에게는 고객층을 넓히면서 충분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이 협업 작업을 결정하는 시기나 방식에는 정해진 기준이나 규칙이 있진 않다고 한다. 다만 현재의 MZ세대들에게 새로운 것을 제안하고, 그들이 흔하게 구매할 수 없는 것들을 시도 한다.  

기성세대 눈에 보이는 슈프림 로고가 찍힌 도끼, 벽돌, 머니건 등이 브랜드의 쿨함을 유지시켜주는 아이덴티티였던 것이다. 쿨함, 그것만이 기준의 전부라고 설명한다. 

이 외에도 예술가와의 컬래버레이션, 드롭데이에 벌어진 사건 사고 등 슈프림을 알게 된 계기는 여럿 있겠지만, 슈프림은 위와 같은 활동들을 통해 고객을 팬으로 만드는데 성공했고, 패션 산업 문화를 흔들어 놓았다. 

VF그룹 인수를 통해 다시 한 번 패션계에 충격을 준 슈프림. 제발 이대로만 쿨함을 유지해주길 바라는 팬의 한명으로서 이단아적인 브랜드의 향방이 너무나 궁금해지면서 아낌없이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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