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이해기/김만희
<BT21>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시장은, 제품이 만들어지면 무조건 팔리는 시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여 재고가 넘쳐나는 상황이었다. 선택권은 소비자에게 주어졌으며, 기업은 선택받기 위해 소비자의 니즈를 해결하는 상품을 개발해야 했다.
콘셉트(CONCEPT)의 시작
근대 마케팅의 아버지 ‘마이클 포터’ 교수는 당시 경쟁전략 이론(Competitive Strategy, 1980)을 통해 기업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원가 우위(가격이 싼), 차별화(독특한 특성), 집중화(특정 고객을 한정) 전략을 통해 시장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기업들은 프리미엄 이미지가 구축되며,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고, 시장 진입장벽의 역할까지 하는 ‘차별화 전략’을 선택했다.
차별화 전략을 성공시키기 위해 기업들은 타사와 다른 점을 고객들에게 알리고 인식시켜야 했다. 이를 위해 광고가 필요했고, 광고회사들은 이 차별화 메시지를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콘셉트’를 활용해왔다.
그만큼 콘셉트는 차별화 전략을 수행하는 기업과 브랜드의 시작점이자, 고객의 머릿속에 각인되는 핵심 키워드였다. 단언컨대 현재의 시장은 ‘콘셉트’의 시대이다.
즉 제품의 강력한 ‘SELLING POIN T(차별화)’와 소비자의 ‘NEEDS(필요성)’의 교집합이 바로 콘셉트이다. “이야~ 콘셉트 좋네!” 이 말은 고객 마음속에 꽂히는 분명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아직 대중은 새로운 콘셉트에 열광하지만, MZ세대들에게는 예외다. 현대 전략 분야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이클 포터 교수가 이론을 발표한 지 40년이 지났으니, 이제 새로운 경쟁전략이 나올 때도 되지 않았을까?
콘셉트만으로는 고객을 이끌기 어렵다
콘셉트가 더 이상 고객들에게 통하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시작점이 제품이기 때문이다. 차별화 시작점이 자사의 제품 또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자사 관점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프리미엄은 평준화되었고, 필수품은 쿠팡이나 다이소에서 충분히 공급되고 있기 때문에 고객은 제품의 차별화가 궁금하지 않다. 여기서 차별화의 한계가 있다.
둘째, 더 이상 차별화 포인트가 매력적이지 않다. 정확하게 말하면 필요에 의한 소비재는 점차 품질이 상향 평준화됐고 고객들은 차별화보다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제 소비는 필요보다 욕구(Wants)에 따라 움직이며 자연스레 소비 양극화로 이어졌다.
셋째, 콘셉트를 전달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 과거에는 15초 TV 광고 하나면 고객에게 제품의 차별화와 콘셉트를 알리는 데 충분했다. 하지만 고객 접점이 다변화된 지금은 고객이 TV에 있지 않다.
온라인 광고 역시 광고라고 인식되는 순간 바로 스킵 된다. 콘셉트를 알리기가 쉽지 않다. 너무나 어렵게, 없는 돈 들여서 만들었는데, 소비자에게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콘셉트란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고객한테 밀어 넣는 것(PUSH)이다. 다시 말해 콘셉트는 대중매체(TV, 신문 등)에 최적화되어 고객이 굳이 원하지 않는 제품을 차별적으로 ‘PUSH’하는 데 주효한 전략이었던 셈이다.
온라인 세상은 ‘PUSHING’ 해서는 통하지 않는다. 이제는 고객을 이끌어야(PULLING) 한다.
디지털시대, 어떻게 고객을 이끌어(PU LLING) 낼 수 있을까? 글로벌 MZ세대 중심으로 팬덤(FANDOM)이 일어나고 있는 K-POP에서 그 힌트를 찾았다. 글로벌 팬덤(GLOBAL FANDOM)의 원리 중심에는 아이돌들의 세계관(WORLDVIEW)이 있다.
세계관에 집중해야 한다
세계관이란 원래 어떤 것을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인 태도를 말하는 철학 용어였지만, 점차 판타지 소설, 게임, SF영화 등으로 확장됐고, 이제는 K-POP 아이돌도 사용하는 용어가 됐다.
아이돌 최초로 세계관을 앞세운 엑소(EXO)는 ‘엑소 플래닛이란 미지의 행성에서 온 멤버 각자가 초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설정이었고, 월드스타 BTS는 BU(BTS UNIVERSE)란 이름으로 멤버 각자의 자아성찰을 배경으로 한 미완의 스토리가 앨범이 나올 때마다 명확해진다.
팬들은 곡이 담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해 노래를 거듭 듣고, 뮤직비디오를 해석한다(유튜브에서 BTS 세계관을 검색해보시길 바란다. 많은 걸 느낄 수 있다).
최근 SM엔터테인먼트에서 SMCU (SM CULTURE UNIVERSE)을 표방하며 출발한 에스파(aespa)는 자신이 또 다른 자아인 ‘아바타’를 만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활동한다. 에스파는 4명의 실존 멤버와 4명의 가상 아바타가 결합한 8인조 그룹이다.
MZ세대들에게 세계관이란 가상 생활 속에서 나와 마주하는 애착관계로부터 형성된다. BTS와 라인프렌즈가 함께 만든 유니버스 ‘BT21’은 우주스타 캐릭터이다.
온 우주에 사랑을 전파하고 싶은 BT행성의 왕자 TATA가 단짝 우주 로봇 VAN과 함께 지구에 오고, 지구에 사랑을 퍼트리기 위해 TATA가 함께할 친구들(KOYA, RJ, SHOOKY, MANG, CHIMMY, COOKY)을 찾는다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세계관을 모르는 사람은 단순한 ‘캐릭터’로 보이겠지만, 그 세계관에 몰입한 팬들이 보면 나와 함께 성숙해가는 인격체, 나와 동질성 있는 인성과 사랑이 있는 캐릭터로 인식되는 것이다.
소설같이 비현실적이고, 만화같이 허황된 기획사의 콘셉트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세계관이 팬덤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인이자, 고객을 PULLING 할 수 있는 주요 전략이기 때문이다.
세계관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데 요즘에는 멀티페르소나, 즉 부캐(부캐릭터)의 유행과도 연관이 있다. 유재석은 무한상사의 유재석 본부장부터, 트로트가수 유산슬, 앨범기획자 유야호, 지미유 등 총 17개의 부캐를 가지고 있다. 이는 개별 캐릭터마다 각각의 세계관을 만들어 스토리텔링 하는 것이다.
MZ들은 그 모든 부캐가 ‘유재석’인 것을 알지만, 모두가 상황에 맞게 부캐를 인정해주고 호칭을 불러준다. 단순 재미를 넘어 부캐의 스토리에 몰입하고 세계관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너도 그렇다.’
세계관에 일단 들어가게 되면 전체 그림 안에 퍼즐 조각을 맞추는 느낌으로, 연이어 나오는 시리즈에 빠지게 된다. 연속성에서 단절된 순간 그 이야기를 알지 못하면, 아싸(아웃사이더)가 된 것 같다.
예를 들면 마블 유니버스 영화를 즐기는 사람이 캡틴아메리카의 유래를 다룬 ‘퍼스트 어벤저’를 보지 못했다면, 그 영화를 봐야 마블 유니버스를 이해하게 되기 때문에 볼 수밖에 없게 되는 이유와 같다.
우리 브랜드는 과연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인기 브랜드들은 어떤 세계관으로 고객들을 설득하고 있을까?
빙그레의 공식 인스타그램은 빙그레 제국의 왕자 ‘빙그레우스 더마시스’가 SNS 계정을 시작하며, 왕국의 주변인들(빙그레 상품) 소개하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브랜드가 세계관을 가질 수 있다는 좋은 사례이다.
미국 캐주얼 브랜드의 황제, 랄프로렌은 그의 이름까지 바꾸며 본인만의 귀족주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설득했다. 피케셔츠, 폴로스타일의 헤리티지 가득한 아이템, 영국 귀족 문화 폴로 스포츠는 대량소비의 대중들에게 옷을 통해 귀족 세계관을 느끼게 한다.
앞으로 세계관에 익숙한 Z세대에게 브랜드는 세계관이 있는 브랜드와 없는 브랜드로 나뉠 것이다. 그리고 세계관을 지닌 브랜드는 다시 팬덤이 있는 브랜드와 없는 브랜드로 나뉠 것이다. 마지막에는 상품 출시를 기다리는 브랜드와 50% 세일을 해도 관심 없는 브랜드로 나뉠 것이다.
세계관은 앞으로 브랜드에 있어서는 생존의 문제이다. 유통이 트래픽을 몰아주는 시대는 지났다. 브랜드의 세계관에 감정이입한 고객이 머물러야 살아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