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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선 May 29. 2020

프롤로그_군산 유기동물보호소를 가다 01

5월의 어느 일요일, 군산으로 내려가는 내내 차분히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유기동물 보호소로 친구들과 봉사를 간다는 것에 대한 순수한 기쁨과 이런 어줍잖은 봉사가 오히려 폐가 되진 않을까 싶은 걱정. 그리고 어떤 진실을 마주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까지. 뒤섞인 마음이 들끓었다.

 군산 유기동물 보호소는 올해 초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서 반려견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좋은 환경에 안락사가 없는 보호소로 소개되었다. 방송을 본 많은 사람들이 감동받았다. 비록 버려졌지만 누군가의 헌신으로 새 삶을 살고 있는 아이들. 세상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위안. 하지만 방송을 통해 이름이 알려지면서 감당이 안될 정도로 더 많은 아이들이 그 곳에 버려졌다. 버릴 사람은 버렸다. 안락사가 없다는 이야기에 마음의 짐을 한시름 덜면서-
적극적인 입양을 통해 500~600마리 정도로 개체수를 맞춰 원활히 운영되고 있었던 보호소는 무분별하게 버려지는 아이들로 최대 1500마리까지 늘어나기도 했다. 누군가는 자신이 키우던 개가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고 누군가는 데려가지 않으면 아무데나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전국에서 버려지는 동물들로 직원들과 봉사자들의 어려움이 극에 달하고 좁아진 공간에 개들끼리의 물림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제발 버리지 말아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했지만 사태가 나아지지 않자 결국, 안락사를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친한 지인인 설채현 수의사를 통해 그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꼭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뭐랄까.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이건만 타인의 희생을 방패삼아 불편한 현실을 한켠으로 밀어놨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항상 나의 편의와 안락함은 다른 이의 노고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후다닥 시간을 맞춰 친한 친구들과 함께 아침 일찍 서울에서 출발했다. 2시간 반 정도를 달려 한적한 길로 들어서자 군산도그랜드라는 간판이 보인다. 차에서 내리자 개들이 짖는 소리로 산 전체가 흔들렸다. 그 날카로운 경계가 되려 슬프게 느껴졌다. (하지만 10분정도만 지나도 그 소리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따로 챙겨온 장화로 갈아신고 있는데 이정호 소장님이 오셨다. 아, 이분이다. 수많은 생명을 살리고 더 살리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그분. 서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나누고 그간의 노고를 듣는다. 그리고 소장님은 보호소의 이곳, 저곳을 소개해주셨다.
 따로 떨어진 낮은 건물로 내려가니 캐이지에 고양이들이 있었다. 탯줄이 남아있는 상태로 구조된 새끼 고양이들, 어미도 아닌데 그 새끼 고양이들을 돌보는 기특한 암고양이, 기구한 사연과 함께 구조된, 다치고 아픈 고양이들이 격리되어있는 공간이었다. 그 공간을 지나 마당으로 나가는 문의 안전도어 너머로 작은 강아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우리가 넘어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중 털이 복슬복슬한 하얀 강아지 한마리를 소장님이 번쩍 안았다. 아마 한쪽 눈이 하얗게 변해 살짝 돌출되어 있는 살구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머뭇거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장님은 살구가 세상에서 가장 예쁜 개인 듯 살뜰히 안고 뽀뽀하며 안부를 묻는다. 오늘도 밥 잘 먹고 잘 놀고 있지?
 짧은 복도를 지나 따로 떨어져 있는 넓찍한 방안에선 멀쩡한 고양이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거나 자고 있었다. 캐이지에서 치료받고 회복된 녀석들이 이곳으로 오는 모양이다. 독특한 마스크에 큰 덩치의 성격좋은 고양이, 마동석을 보니 이곳의 보호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고양이들이 모여있는데도 냄새가 별로 나지 않는다는 건 엄청 부지런히 관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당시 개 1마리와 고양이 3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오늘 우리의 주된 봉사는 아이들을 쓰다듬어주고 만져주는 것이었다. 잠깐, 그게 봉사라구요..?
버려진 아이들, 혹은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들개들. 이 아이들에게 사람은 안전하며 우리는 너희를 사랑한다는 메세지를 전하는, 막중한 임무라 한다. 사람을 잘 따라야 입양도 잘 된다고.

비탈진 언덕에 있는 중대형견 견사로 들어서자 장관이 펼쳐졌다. 비슷하게 생긴 황구, 백구 수십마리가 서로 만져달라고 달려들었다. 비온 뒤라 트레이닝복에, 장갑에, 장화까지 만전을 기했으나 때로 덤비는 아이들에 휘청대기 일쑤였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요령이 생기고 그제야 비슷해 보이던 아이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있는 힘껏 정성스레 만져준다. 다행히 나는 댕댕이들, 특히 대형견 녀석들이 어느 부위를, 어느 정도의 압력으로 만져줘야 좋아하는 지 아주 잘 알고 있다.(키우는 개 1마리가 허스키다) 불만이 하나 있다면... 왜 내 손은 두개밖에 없는건가?!?! 저기 저 녀석도 만져줘야 하는데 이 녀석은 여전히 손길에 목마르고 뒤쪽에서 귀를 젖히고 짖는 저 친구는 궁금한데 겁먹어서 얼른 내가 긴장을 풀어줘야하는데....
만져주고 똥치우고 만져주고 똥치우고-
이런 봉사라면 얼마든지 하고 싶었다.  
 설채현 수의사는 급이 다른 봉사를 했다. 새끼 강아지들 접종에, 아픈 아이들 진찰에, 역시 전문가는 다르다. 하지만 나 역시 생각해온 아이템이 있었다. 보호소의 SNS를 찬찬히 보면서 아이들의 목줄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기부품목에도 있었는데 나로선 그 퀄리티가 조금 아쉬웠다.(직업이 가방디자이너다) 그 목줄을 사용하고 있는 이유나 그동안 불편했던 점을 적용해 제작을 한다면 훨씬 좋을 것 같았다. 봉사자분들과 소장님을 통해 지금 쓰고 있는 목줄의 장식이 철이라 무겁고 통기성이 없는 비닐 소재라 더운 날씨엔 아이들의 피부가 짓무르기도 한다는 것, 벨트 형식이라 끝이 길게 나오는 부분이 헤지거나 싸울 땐 서로 물어뜯는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는 것 등등 개선이 필요한 부분, 제작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디어가 대략 정리가 되어 다음에 올 땐 샘플과 몇가지 웨빙 스와치를 가져오기로 했다.
 
 오후시간으로 넘어가고 그날 하루만해도 몇차례 구조를 다녀온 소장님과 대화를 나눌 짬이 생겼다. 처음 보호소를 하게 된 계기와 이곳의 운영방식, 동물을 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들을수록 점점 가슴이 뜨끈해지는데 당시엔 그게 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결국에는 이유도 모르고 나중에 혼자 앉아있는데 눈물이 터졌다. 왜 우냐는 친구의 걱정에 답할 길이 없었다.
애들이 불쌍해서 그래요?
그래 애들도 불쌍한데... 근데 그게 다는 아닌데...

그날 밤, 그것도 노동이라고 배게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이 들었다. 꿈속에 수십마리의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막걸리도 있고 폴로도 있고 루소도 있고, 아, 저기 묶여있는 나나도 있다. 일찍 눈이 떠졌지만 눈만 감아도 아이들을 다시 볼 수 있었다. 플래시가 터지면 눈가를 따라다니는 잔상처럼 그렇게 보였다. 그리고 아침이 돼서야 어제 눈물이 터졌던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돈을 쫓지 않는 어른을 만났다. 그간 책이나 소문으로만 존재했던 그런 사람을 실제로 처음 본 것이다.
아무리 멋지고 젠틀한 어른도 돈 많이 벌라고, 그래서 건물 사라는 이야기를 덕담으로 건넨다. 돈을 벌고, 돈이 많은 상태는 항상 좋은 것, 우리가 지향해야 할 도착지처럼 묘사된다. 나는 늘 그게 불편했다. 하지만 사업 12년차, 자본주의에서 돈이 없어 겪는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람 구차해지고 작아지는 그 지점. 그래서 차마 이에 낀 고기 조각처럼 부대끼는 그 마음을 어디에도 터놓고 얘기하기 어려웠다. 많이 벌길 원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돈에 대한 이중적인 마음과 태도. 스스로도 위선적으로 느껴지는 그것.
하지만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누구보다 돈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잘 아는 사람. 돈에 끌려 다니지 않고 본인이 해야할 일에 몰두하는 사람.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아는 사람. 그것은 하나의 불씨가 되어 타길 기다렸던 마른 장작같은 내 마음에 뜨겁게, 뜨겁게 와닿았던 것이다.


 다시 한주가 시작되었다. 다음 시즌을 기획하고 트렌드를 살펴보고, 가방을 디자인하고.... 아, 이건 생명을 구하는 일이 아니잖아.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조금 덧없게 느껴진다. 이미 마음이 그을린 탓일게다.
 그래서 일단 목줄부터 시작해보기로 한다. 웨이빙 샘플을 구하고 장식을 구하고 간단하게 샘플을 만들어 보았다. 일단은 1000개를 만들어 기부하기로 했는데 지속적인 도움을 드리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보호소에서도 필요할 때 목줄을 요청하는게 부담되지 않도록, 다음부터는 우리 사이트에서 목줄을 판매하고 하나를 사면 하나가 기부가 되는 방식은 어떨까? (맞다. 탐스슈즈를 따라한거다.) 하지만 그동안 구축해온 우리 브랜드로는 할 수 있는 범위의 한계가 분명해보였다.(12년된 브랜드다)


 결국 반려견 브랜드를 하나 만들기로 했다. 기부와 선순환, 나아가서는 유기동물 인식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라면서. 스스로 고개가 끄떡여지는 목표가 있기에 돈에게 움츠러 들지 않고 좀 더 자신있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

 군산에 다녀왔을 뿐인데 하나의 일이 다른 일을 만들고 다른 세계로 확장된다. 그래, 좋은 징조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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