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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선 Jun 02. 2020

프롤로그_군산 유기동물보호소를 가다 02

 소장님이 대화중에 직접 소개해주시거나 직원분들을 통해 이야기를 듣게 된 댕댕이들이 있었다. 어떻게 구조되고 어떤 상태로 들어오는 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아이들였을텐데 마치 사연이 기구한 순번같았다.


 홀로 조용히 케이지에 앉아 있던 새끼 강아지 트럭이는 사냥개라고 알려진 포인터 종으로 카키빛이 도는 눈동자에 흰색과 밤색이 오묘하게 섞인 아름다운 털을 가지고 있었다. 도로위에서 트럭에 치인 채 구조되었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이 지어졌다. 뒷다리 하나가 부러져 플레이트를 대고 철심을 여러개 박는 대수술을 이겨냈다는데, 과연 녀석은 세상 다 겪어봤다는 무심한 표정으로 불편한 다리하나를 쭉 뻗은 채 앉아있다. 소장님이 트럭이를 꺼내 안아보라고 하셨다. 행여나 수술한 다리가 아플까봐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품에 안았다.
 왜 이런 새끼 강아지가 도로위에 있었던 것일까? 정말로 버려진 걸까?
수많은 유기동물을 구조해왔던 소장님은 말도 안되는 별별 상황들을 겪어봤기에 트럭이도 유기됐을 것이라 판단하고 계셨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구조돼 들어오면 의무적으로 일정기간 공고해 보호자를 찾는다. 하지만 트럭이를 찾는 사람은 사냥개로 데려가려는 사냥꾼들뿐이었고 하루에도 수백통씩 걸려오던 전화는 트럭이의 다리 상태를 상세히 올리자 잠잠해졌다고 한다.

잠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키우던 개를 버린다고 가정해보자. 길을 걷다 버리고 가버린다면 그 친구는 아마 전속력으로 쫓아올 것이다. 혹여나 따돌렸다고 해도 영리한 아이라면 집으로 찾아올지 모른다. 그러니 대부분 차에 태워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다 버린다. 아이는 그 차를 따라가다 도로까지 올라오고 미쳐 개를 발견하지 못한 차에 사고를 당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수없이 많은 케이스중 하나다. 의젓하게 내 품에 안겨 있는 트럭이가 그 모든 일을 겪었다고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고작 생후 3개월, 아직 유치가 다 자라지도 않았다. 트럭이의 다리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문제 없이 클 수도 있고 길이가 다르게 자랄 수도 있다.


 군산의 경제를 책임지던 자동차와 조선, 화학산업이 침체되면서 많은 공장들이 차례로 문을 닫았다. 공장 부지를 지키기 위해 길러졌던 개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겨졌다. 보호자가 없는 개들은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며 들개가 되었고 그 무리에서 태어난 새끼들은 사람의 손을  모르는 채로 자랐다. 잘생긴 루소도 들개 새끼였다. 친구들과 중대형견 견사에서 한참 아이들을 만져주고 있을 때 루소는 먼발치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보호소의 SNS에서 봤던 그 녀석을 한눈에 알아보고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나마 경계가 약한 턱밑부터 공략하며 조심스레 루소를 만져주었다. 그나마도 긴시간을 허락하지는 않는다. 아직 어린 루소는 처음 보호소에 왔을 때 사람의 보살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보호소 직원분들과 봉사자분들의 노력으로 이정도는 가능해진 것이다. 루소를 데려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낯선 사람에게는 아직도 곁을 주지 않아 입양이 성사되지는 못했다.

 보호소에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은 큰 덩치의 폴로는 다른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바람에 무리에 끼지 못하고 혼자 다녔다. 하지만 견사로 사람이 들어올 때면 누구보다 먼저 다가와 의뭉스럽게 몸 한쪽을 기대고 앉아 다가올 손길을 기다렸다.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애잔했다. 다른 아이들에게 계속 치이는 폴로를 남편이 견사밖으로 데리고 나가 산책을 하고 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폴로는 산책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사람과 함께 걷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이렇게나 클 때까지 제대로 된 산책을 못해본 듯 했다.

 고작 하루였다. 그런데도 이렇게 눈에 밟히는 아이들이 생긴다. 이쯤에서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이 많은 아이들을 버린 걸까. 그 사람들은 매 끼니 밥 챙겨먹고 밤이 되면 두발 뻗고 편히 잠을 이룰까? 그들의 마음에 이 아이들은 어떻게 남아 있을까. 돈을 주고 샀지만 맘에 안드는 물건 같은 것이였을까.

방금 막 구조되어 온 작은 친구는 케이지에 들어가자마자 구석자리를 찾아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소장님이 손만 갖다대려고 해도 그 작은 몸을 없애버리려는 듯 안간 힘을 썼다. 주인이라고 부르는 사람한테 계속 맞고 지내는 걸 보다 못한 이웃이 신고했다고 했다.

나는, 버리고 학대하는 그들을 어떤 사정이 있었노라 이해하고 싶지 않다. 열렬히 증오하고 마음을 다해 경멸하고 싶다. 그 마음이 나를 좀 먹더라도 진심으로 그렇게 하고 싶었다.


 서울로 돌아와서도 군산 후유증은 계속되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보호소의 소식을 빠짐없이 챙겨본다. 입양이 된 아이들이 있으면 마음이 한결 좋아지고 너무 아프게 들어온 아이들을 보면 또 한없이 슬퍼진다. 휴대폰에 남아있는 아이들의 사진도 시간이 날 때마다 들여다 보았다. 트럭이 사진도 몇장 있었다. 트럭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

어느날 남편이 이상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샘플로 만든 목줄을 아루한테 해봤는데 이중모에 털이 길어서 잘 안보인다며 짧은 털 친구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단다. 그러면서 트럭이 얘길한다. 그냥 하는 말이려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나를 떠보는 그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사실 소장님이 트럭이를 안아보라고 하신게 우리가 보호자가 되길 원하셨던 게 아닐까 싶었다던 나의 입방정도 있었다. 하지만 우린 이미 5살 여아 허스키 아루와 3마리의 고양이들이 있다. 게다가 두마리의 개를 함께 키운 시간도 있었다. 서로 맞지 않던 두 녀석들 때문에 얼마나 맘고생을 했던가. 하지만 나의 진짜 두려움은 남편의 말도 안되는 소리가 우리집에선 결국 현실이 된다는 것.

 
 며칠 뒤 목줄때문에 소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트럭이 안부를 물었다.

 “그 어린 게 파보에 걸려서.... 엊그제 입원했어요. 심하지 않으면 토요일쯤엔 퇴원을 할텐데... 크게 아팠던 애라 어찌될지..”
파보? 찾아보니 접종을 하지않은 어린 강아지들이 많이 걸리는 장염같은 것이었다. 치사율도 꽤 높다. 마음이 약해진다. 말도 안된다던 내 생각은 그날 데려와야 했었는지도 모른다는 자책으로 바뀐다. 사실 맘에 걸렸던 또 하나의 이유는, 입양이 요원한 황구나 백구들을 두고 트럭이 같은 품종견을 데려간다는 , 염치없음이었다. 하지만 아픈 트럭이야말로 하루빨리 보호자가 필요하다 마음으로 그 생각은 접어두기로 했다.

다음주 일요일, 다른 일로 지방에 내려갔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잠시 군산에 들렀다. 목줄 샘플을 보여드리고 이야기를 나누다, 트럭이를 만나러 갔다.

그사이 트럭이는 포터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소장님께 조용히 말씀드렸다.

 “ 포터를 저희가 데려가도... 될까요? “


그 이후 일사천리로 입양동의서를 쓰고 빌려주신 이동장에 포터를 넣고 자리를 잡았다. 서울로 올라오는 차안에서 포터란 이름은 다시 해리로 바뀌었다. (우리가 가방브랜드를 하고 있는데 차마 일본 가방브랜드 이름을 쓸 수는 없었기 때문) 해리가 이동장안에서 낑낑대는 바람에 계속 안고 있었는데 곤히 자는 해리의 뜨거운 체온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래, 이제 이 아이의 생명은 내가 책임지는 거구나.

 머뭇거렸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고 우리가 데려올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만 들었다. 그렇게 해리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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