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견가구가 되었습니다.
첫만남은 중요하다. 사람도 그러하지만 개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해리를 우리의 공간으로 들이는 과정은 섬세하고 치밀해야 했다. 이미 이 구역 대장, 허스키 아루(5세, 중성화된 암컷) 때문이다. 일단 아루를 먼저 소개해야겠다.
아마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댕댕이에 대해 저마다 하고싶은 얘기가 많을 것이다. 이번 기회를 빌어 나 역시 팔불출 짓을 좀 해보자면-
진지하게, 아루는 정말 아름답다. 나는 이제껏 본 생명체중에 이만한 아름다움을 경험한 적이 없다. 아마 자기 외모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는 점도 한 몫할지 모르겠다. 유난히 까맣고 선명한 아이라인, 그 속의 투명한 하늘색 눈동자는 신비롭고 도도하다. 전체적으로 하얀 털은 일정 부분 끝쪽이 검정색 물감에 살짝 담근 듯 투톤으로 이뤄져있는데 털끝의 검정색은 정면에서 보면 귀부터 가슴까지 묘하게 이어져 유연한 리듬감을 만든다. 풍성한 이중모에는 약간의 베이지 컬러도 가미되어있어 흡사 아름다운 바위색같기도 하다. 그 뿐인가. 귓속과 혀는 건강한 핑크빛을 띄고 있고 귀 뒷쪽털은 몸중에 유일하게 보드라워 만지면 기분이 좋아진다. 계속 보아도 지겹지 않고 매일 새롭게 발견된다. 듬직한 풍채의 아루를 품에 안을 때면 가슴 한가득 들어오는 그 존재감으로도 내 삶을 긍정하게 된다. 아, 이게 행복이구나-
하지만 아루의 진짜 매력은 사람들을 만나거나 산책을 나갈 때 발현된다. 매장으로 들어오는 낯선 사람들에게 조용히 다가가 정체를 파악하고 자기 방식으로 반겨준다. 하지만 결코 질척대는 법이 없다(갈 때는 인사도 하지 않는다) 올해 5살이 된 아루는 예전보다 더 많이 의젓해져서 리드줄을 잡고있는 사람을 무자비하게 끌지 않는다.(예전에 아루에게 끌려가 대차게 넘어진 적이 두번정도 있다) 함께하는 평화로운 산책이 드디어 가능해진 것. 다른 개들을 만나도 예의바른 친구들과는 인사하지만 두려움에 짖는 친구는 그냥 지나친다. 그리고 언덕에 서서 예의 그 허스키의 늠름한 자세로 바람에 실려오는 냄새를 맏는다.
끝도 없지만 대략 요약하면, 아름답고 (이제) 착하다인데 거기다 몇가지를 솔직하게 덧붙이자면, 무서운 식탐과 영역 공격성을 말할 수 있겠다. 우리가 우려하는 부분은 밖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아무 문제 없지만 본인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낯선 개는 용납하지 않는, 영역 공격성이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작전을 짰다. 밖에서 만나서 인사를 하게 하고 함께 산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같이 들어가는 것. 친구 설채현 수의사의 코치가 있었다.
사무실에서 2-3분 거리에 있는 작은 근린공원에서 나는 해리와 둘이서 남편과 아루를 기다렸다. 해리는 앞으로의 일은 알지 못한 채 불안한 걸음으로 공원을 분주하게 왔다갔다 한다.
착착착착- 내가 좋아하는 소리다. 아스팔트 바닥에 아루 발톱이 부딪히면서 만들어내는 경쾌한 소리. 아루가 나를 보면 흥분할 것 같아 재빨리 몸을 숨겼다. 하지만 역시 들키고 만다. 아루가 하네스를 한 가슴팍을 앞으로 당기며 내쪽으로 뛰어오려 했다. 그리고 해리를 발견했다. 다른 개들을 만날 때처럼 큰 문제 없이 서로의 냄새를 맏았다. 아마 해리가 너무 어려 아루는 큰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같이 놀 수 없는 젖먹이군!) 하지만 해리는 아루가 너무 궁금해 그 뒤를 졸졸졸 쫒아 다닌다. 그렇게 동네 한바퀴를 함께 걸었다. 걱정이 되었던지 설 수의사에게 전화가 왔다. 몇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사무실에 들어가서도 무조건 아루 먼저 이뻐해줄 것.
아루한테 해리가 혼나더라도 뭐라고 하지 말고 지켜볼 것.
짧은 동네 산책을 마치고 드디어 사무실로 들어섰다. 아루는 어영부영 함께 들어오는 해리가 의아하긴 하나 딱히 으르렁 대진 않았다.
우리가 쓰고 있는 공간은 조금 특이한 구조로 되어있는데 2층이지만 중정같은 마당이 있다. 크기도 꽤 넓은데다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 매장, 창고, 사무실, 별채 등으로 알차게 쓰고 있다. 핫플중에 핫플인 성수동 한복판이지만 마당에서는 햇볕을 쬐거나 내리는 비를 보면서 커피 한잔도 할 수 있다. 많이 넓은 옥탑방같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아루도 집에서 출퇴근을 하다가 작년부터는 아예 여기서 지낸다. 처음엔 맘이 쓰였는데 사무실안에 자기만의 쉬는 공간이 있고 멀리 마당 뒷편에 본인만의 화장실도 있다. 마당과 건물안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해놓았다. 겨울에 cctv로 보면 밖에서 잘 때도 있다.
아무튼 여기는 우리 일터(이자 놀이터)이기도 하지만 아루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 곳에 해리가 온 것이다. 아루는 얼떨결에 벌어진 이 상황이 이상한 듯 해리를 살피며 왔다갔다 한다. 일단 걱정했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설쌤이 왔다. 같이 봉사간 곳에서 우리가 해리까지 입양하게된 상황이 아무래도 맘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때 해리가 겁도 없이 마냥 궁금한 아루에게 다가갔다. 치근덕대는 해리를 아루가 왕-하고 짖으며 밀쳤다.
깨갱갱개앵갱갱-
세상 죽는 소리를 내며 해리가 배를 보이며 뒤집혔다.
아픈 다리가 잘못되었나? 걱정이 되었지만 둘사이를 간섭하지 말라는 설쌤의 조언으로 그냥 지켜보고 있었다. 개가 사람한테서는 배울 수 없는, 그들 사이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게 있단다. 그리고 오히려 해리가 완전히 접고 들어간 상황이라 관계가 명확해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루를 칭찬했다.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아루가 100배는 더 잘 받아주고 있다고.
아루는 해리의 누나가 되었다. 무섭지만 예쁜, 아루누나.
해리를 데려오자고 했을 때 그나마 긍정적이라고 생각한 것이 둘의 성별이 다른데다 해리가 아직 3개월밖에 안된 아가라는 것이었다. 성별이 다르면 잘 지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아기라 봐주는 것도 있을 것이고. 서열이란 말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관계가 정리된 것이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아루는 길고양이 팬서도 받아들인 아이다. (재작년, 길에서 눈 못뜨는 아기고양이를 구조해 키우고 있다)
합사도 여러번하니 아량이 넓어지긴 하는 모양이다. 아루는 대단하고, 우리도 늘긴 늘었다.
다견가구에서 주의해야할 것이 몇가지 더 있는데 분리된 공간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캔넬 교육이 필수다. 밥은 같은 시각, 각자 캔넬안에서 먹도록 교육해야한다.
개들사이에서도 룰이 있기 때문에 서로 놀고 있을 때, 다소 격해보여도 개입을 최대한 하지 말라고 했다. (이후 해리의 짖는 습성과 몇가지 이유로 요즘엔 개입을 좀 더 빨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뻐해줄 땐 무조건 아루먼저. 해리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하고 아루는 자기 다음이 해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개를 키운다는 게 이렇게나 공부할 것도 많고 익혀야 할 것도 많다. 한마리 키우는 것도 쉽지 않지만 두마리 이상이 되면 더 많은 신경을 써야한다.
나는 노루 생각이 났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8-9년전 남편과 나 역시 서툴게 첫 반려견을 데려왔다. 둘다 ‘집안’에서 개를 키우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그래도 의식은 있었던지라 유기견을 입양했다. 그게 코카스파니엘 노루였다. 산에서 버려진 채 발견된 노루는 거의 아사직전에 구조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노루’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봉사자분은 노루가 2-3살정도라고 했지만 나중에 검진 차 갔던 병원에서는 치아상태로 보아 8-10살정도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 데려오던 날, 오자마자 화장실에서 소변을 봤던 노루에게 ‘옳지’ 라는 말이 도저히 나오지 않더라는 남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개를 키우지 않았던 사람은 개를 어떻게 대해고 예뻐해야 할지 어색하기 마련이다. 만지는 모습만 봐도 안다. 목소리가 이상해지면서 ‘에구 그랬쪄요, 저랬쪄요, 아이 이뻐’ 이런 말이 처음부터 나오기란 쉽지 않다.
알지 못하는 노루의 과거, 사회화가 안된 노루의 몇가지 문제행동은 반려인 초급자였던 우리에게 큰 어려움이었다. 같이 산지 5-6년, 이후엔 심장병으로 매일 약을 먹었고 1년이 조금 지나자 상태가 악화되어 결국엔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노루와 아루를 함께 키웠던 시간이 있었다. 처음 노루와 아루를 인사시켜줬을 때, 둘 사이를 오고 갈 때, 지금 알았던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나는 노루에게 여전히 미안한 마음을 가진 채 지내지 않아도 되었을까.
노루는 존재자체로 우리에게 큰 공부가 되었다. 유기견을 입양한다는 것. 노견을 키운다는 것. 반려견을 먼저 보낸다는 것. 그 모든 것을 노루를 통해 배웠다.
해리를 데려오면서 어느덧 우리가 반려인으로 준비가 되어있음을 알았다. 똥오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고 산책은 하루 두번하는데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남편은 아루와 산책을 나간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무한한 애정을 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 그 애정에 걸릴 것이 없다는 것.
앞으로 헤쳐나갈 시간들이 걱정스러우면서도 행복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