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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선 Jul 13. 2020

02 또 한번의 수술

새끼 강아지를 키우는 일



새끼들이 귀여운 외모를 가진 데엔 진화론적 이유가 있는게 분명하다. 물고 뜯고 짖고, 말귀 못알아듣는 그들이 귀엽지 않으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새끼를 키우는 일이란 함께 살며 당면하게되는 당혹감과 뒤치닥거리의 고단함을 심장을 부(뿌)셔버리는 그들의 귀여움으로 극복해야하는 일인 것이다.

게다가 견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사회화 시기라 보호자의 많은 주의와 관심 그리고 공부 또한 필요하다.


3-4개월로 추정되는 해리 역시 아직 배워야 할게 많은 새끼 강아지. 보호소를 떠나 모든게 낯설었던 해리는 며칠 밤동안 소변이 되었든 목마름이 되었든 2시간마다 우릴 깨웠다. 쾡한 눈으로 아침에 일어날 때면 ‘아, 맞다. 이게 새끼를 키우는 일이었지’ 하고 기억이 되살아났다.

조금 다른 방식이었지만, 아루도 못지 않았(던 것 같)다. 한동안 아침마다 침대 머리맡에 똥을 질펀하게 싸놔 알람없이도 번쩍 기상했더랬다. 이갈이를 시작할 때는 가구의 다리란 다리는 죄다 갉아놓는데다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가는 날이면 집안이 쑥대밭이 되기 일쑤였다. 바닥에 물건을 내려놓거나 아루 입이 닿는 곳에 무언가를 둘 수 없었다. 엄청 깨무는 것때문에 손이며 팔에 생채기가 가득했었다. 그뿐인가. 산책을 할 때 썰매견 아니랄까봐 어찌나 끄는지 2번을 대차게 넘어져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지만 나는 아루를 진심으로 좋아하기가 힘들었다. 그냥 묵묵히 책임을 다하며 그 시간을 지나왔을 뿐. 그러던 어느 날 아루와 눈을 마주 보는데 아루가 나를 제대로 ‘보고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한참 다른 데 정신이 팔려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나라는 존재를 깨닫고 ‘당신이 우리 엄마군요’ 하고 말을 거는 느낌이랄까. 내가 하는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일정 부분의 언어를 공유하게 되면서 우리 사이에 ‘교감’이란게 일어났다. 나에게 진짜 사랑과 신뢰는 이때부터 였다. 아마 2살은 지나서가 아니였을까.

사랑과 신뢰. 그것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책임을 다하면 언젠가 따라오는 것으로 예를 들면 아루는 분명 피가 나도록 나를 물 수 있지만 살짝살짝 깨물면서 나를 쳐다보는, 그런 것이다. 내가 아루 턱밑과 머리를 만져줄 때 내 옆에 누워 배를 보여주는 것이며 같이 누워있을 때면 내 겨드랑이로 자기 머리를 집어넣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함께하는 평화로운 산책이 가능해졌다.

어쨌든, 우린 그 일을 또 시작했다. 사람의 망각이란 이렇게나 무서운 것이다. 아직 주고받지 못한 사랑과 신뢰를 기다리며 오늘도 나는 해리가 잘못 조준한 오줌을 닦는다. 이게 안가리는 것도 아니고 가리는 것도 아닌게 패드에 걸쳐 싸기 일쑤인데 그럼 오줌은 패드 밑으로도 스며들어가 일이 커지지만 우리는 화를 내지 않는다. 그게 새끼를 키우는 일임을, 그리고 빨리감기를 누른 듯한 그들의 짧은 삶에서 더 짧은 시간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저 고단할 뿐이다)


 새로운 환경에 조금 익숙해진 해리는 아루가 무섭지만 좋은 듯 계속 쫒아 다녔다. 아루가 왕- 해도 첫날처럼 깽- 하지않고 급기야 서로 몸을 부딪히며 노는게 가능한 사이로 발전했다. 아루도 해리를 많이 봐주는게 자기 장난감을 가지고 (도망)가는 해리를 그저 지켜보았다 (조금은 황망히..) 아침에는 서울숲으로 아루와 함께 산책도 나갔다. 아직 제대로 산책할 줄 몰랐지만 아루를 쫒아 펄쩍펄쩍 잘 뛰어다녔다. 다녀와 둘이 나란히 누워 자는 모습을 보니 밤사이 쌓인 피로가 날라가는 듯 했다. 아, 우리 이대로 잘 지낼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그런데 해리가 걷는게 조금 이상했다. 절뚝대는게 아픈가 싶었는데 수술한 뒷다리가 아니라 앞다리가 불편해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리는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엑스레이를 찍었다. 컴퓨터 화면에 띄어진 햐앟고 까만 것을 보며 의사선생님이 친절히 설명해주신다. 구조당시 군산에서 수술한 뒷다리에는, 골절된 뼈에 플레이트를 대고 여러개의 나사가 박혀있었다. 차갑고 딱딱한 쇳덩이들이 해리의 가는 다리안에 있다고 생각하니 내몸 어딘가가 쓰려왔다. 그리고 미쳐 발견하지 못한, 앞다리 골절이 있었다. 그 골절 때문에 다리를 절룩댔던 것이다. 아니, 저 부러진 다리로 그렇게 뛰어다녔던건가? 강아지들이 사람에 비해 고통에 무딘 면이 있다고 하시는데 그래도 그 작은게 얼마나 아팠을지.

우리에게는 두가지 옵션이 주어졌다. 조금 다른 방식이지만 앞다리에도 철심을 박는 수술을 하는 것. 그게 아니면 깁스를 해서 부러진 뼈주변으로 근육이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는 것.  

우리는 갑자기 중요한 결정의 순간을 맞이했다. 한생명을 책임진다는게 이런 것이구나, 이런 결정을 하는 일이구나. 갑자기 뭔가 밀려왔다. 또다시 수술을 해야하는 것도 불안을 남겨두는 것도, 어느 것 하나 고르기가 쉽지 않다. 남편과 나, 서로의 당황스런 얼굴을 바라보며, 밀려들어오는 생명의 무게감을 나눈다. 우리는 여러모로 부담이 되더라도 확실히 고쳐주고자, 앞다리도 수술하기로 결정했다.


해리를 병원에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아픈 아이를 돌보는 것을 머리로만 이해했지 마음의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음을 인정해야했다.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더 많은 돈과 더 많은 애정을 갖춰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냥 눈물이 났다.

혹시나, 혹시나 자신이 또 버려졌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사람이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인걸 알면서도 거기 혼자 남아있을 해리가 내 일부인냥 아팠다. 그날 밤은 해리가 없는데도 푹자지 못했다.


해리는 다음날 앞, 뒷다리에 단단하고 커다란 붕대를 감고 퇴원했다. 뒷다리 붕대는 혹시 모를 충격과 지지를 위한 것이였는데 두다리에 짙은 베이지색 붕대가 통통하게 감겨있으니 꼭 오징어 외계인같았다. 괜찮은지 걱정이 되면서도 봉제인형이 걸어다는 것 같아 귀여...웠다. 자기다리가 맘대로 움직여주지 않는게 이상한지 어정쩡하게 걷다가도 몇시간이 지나자 또 겅충겅충 잘도 뛰어 다녔다. 일직선으로 뻗어있던 붕대는 자기 다리모양으로 자연스럽게 구부러졌고 날이 갈수록  엄.청. 꼬질꼬질해졌다.  


 아직 많이 조심해야 한다고 했지만 모든게 궁금한 새끼강아지를 그냥 눕혀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딱딱한 길에서는 안아주고 잔디에서는 내려주고 하면서 매일 산책도 시켰다. 아루랑도 여전히, 아니 더 심하게 잘 놀았다. 계단은 오르내리지 못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려고 하는데 목뒤가 너무 아팠다. 그러고보니 요 며칠 어깨도 뻐근했는데. 출근해서도 계속 그 상태길래 이유가 뭔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7-8kg는 나가는 애를 시도때도 없이 안고 다니느랴 담이 온 것이였다. 병원에 가니 심한 일자목인데 무거운 것을 계속들어 악화됐다고 한다. 최근 잦았던 두통도 이 때문이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엑스레이에 주사에, 물리치료까지.

물리치료실에 누워 나는 또 한번 해리의 무게감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 이또한 지나가겠지.

아직 서툰 애정일 뿐이지만,

끝까지 책임질께.

우리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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