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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임 Oct 05. 2021

22. 오늘도 나서는 사람

  SNS에 아이들과의 일상을 기록한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사진 한 장과 날짜, 뭐를 했네 하는 정도의 짧은 글을 남겼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이들의 반짝이는 말들과 즐거웠던 순간들을 자주 기록하게 되었다. 작년 코로나로 큰 아이의 유치원 입학이 지연되면서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들을 더 많이, 자주 글과 사진으로 남겼다. 엄마가 게을러서 변변한 육아일기 하나 써놓지 못했다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꽤나 많은 시간들이 남아 있었다. 


  올해로 큰 아이는 7살이고 작은 아이는 4살이다. 작년까지는 둘 다 데리고 다니기가 버거워 주로 작은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맡겨두고 큰 아이와 둘이서 산이고 바다고 돌아다녔다. 올해는 작은 아이도 스스로 운신을 할 수 있어 안아주지 않아도 되고 말도 제법 통해서 혼자서도 둘을 데리고 다닐만해졌다. 올해의 기록은 온통 “-로 나서 보았다.”로 시작한다. 그래 봐야 봄에는 집 앞에 있는 강변 공원이고, 여름에는 광안리 바닷가로, 선선해지니 이런저런 전시회나 뛰어놀기 좋은 공원을 찾아가는 것이 전부다. 남편이 쉬는 날이 박한 회사에 다니고 있어 1박 2일 여행은 꿈도 못 꾸다가 얼마 전 혼자서 아이 둘을 데리고 남해에 갯벌 체험을 다녀왔다. 가기 전에는 걱정이 많았지만 이미 셋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에 익숙해진 덕인지 장거리 운전을 제외하면 크게 힘들 것 없는 여행이었다.   


  어제까지 3일간의 긴 연휴. 독박 육아를 하는 엄마에게는 길고 긴 3일이었다. 토요일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도서관으로 나서 보았다. 아이들 이름으로 된 대출 카드를 만들어 줬더니 도서관 가는 것을 즐거워한다. 스스로 책도 고르고, 셀프 대출 기계에서 책 빌리는 재미가 있다. 그 보다 더한 재미는 차에 책 던져놓고 도서관 앞에 있는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는 일이다. 아이스크림 하나씩 입에 물고 도서관 옆에 있는 작은 공원에 간다. 별 것 없는 작은 공원에서도 아이들은 땅도 파고 성급하게 노래진 은행잎을 주우며 가을을 탐험했다. 일요일에는 며칠 전 예약해 두었던 해양박물관으로 나섰다. 집에서 거리가 먼 곳이라 처음 가보았는데 박물관 뒤편으로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진 해변 공원이 있었다. 마침 차에 돗자리와 킥보드가 실려 있었다. 전시 관람을 후다닥 마치고 바로 피크닉 모드로 전환했다. 아이들은 바람을 맞으며 킥보드로 내달린다. 해 질 녘까지 실컷 놀고서야 집에 돌아왔다. 


  대체공휴일이었던 월요일, 한 것도 없이 피로가 몰려와 장판 위에 나도 장판처럼 납작 엎드리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오늘은 어디로도 나서지 말고 집에 있어야지 마음을 먹었다. 아니, 마음을 먹을까 말까 내내 갈등했다. 하루 종일 집에서 네모난 패드만 들여다보며 몸을 이리저리 비트는 아이들을 보고 갈등에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아무런 계획이 없었기에 어디로 가나 고민하다가 시민공원에 가보자 하고 또 나서 보았다. 해가 다 저물어가는 시각이었다. 좀 한산해졌을까 싶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공원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놀이터는 사람들이 개미떼가 붙은 듯이 바글거려서 근처도 못 갔다. 대신 너른 잔디 광장에 공 하나 던져놓고 두 똥강아지 녀석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정신이 없다. 저기 옆에서 비눗방울을 날리는 아이들을 보더니 비눗방울 장난감을 사달라고 한다. 매점에 가서 보니 해양박물관보다 천 원이 싸다! 까짓것 사주지! 배고프다는 말에 핫도그도 하나씩 쥐어줬다. 빨리 비눗방울을 날리고 싶은 마음에 다 먹지도 않고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남은 건 내 차지. 한 손에 하나씩 비눗방울 장난감을 쥐고 동글동글 비눗방울을 열심히 만든다. 


  낮에는 시월에 이렇게 더워도 되나 싶게 햇볕이 따가웠다. 정말 여름으로 돌아가려는지 꿉꿉하기는 또 왜 이렇게 꿉꿉한지.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아휴, 공놀이는 집 앞에 놀이터에서도 얼마든지 하는데 뭐한다고 여기까지나 왔을까’ 했다. 억지로 먹어치운 핫도그가 소화가 안 돼서 속이 더부룩했다. 하지만 오늘의 일을 기록하는 시간이 오면 쓸데없었던 한탄과 불편했던 뱃속 사정 같은 것은 이미 잊혀버릴 것이다. 저물어 가는 해에 그림자마저 사라지고 바람도 선선해졌다. 시원해진 공기에 꿉꿉하던 습기가 촉촉하게 느껴진다. 비눗방울을 멀리멀리 날려버리는 바람도 기분이 좋다. 바람에 날리는 아이의 옷자락과 머리카락도 그림 같다. 형을 동생을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 뭐가 그리 재미가 넘치는지 벌러덩 드러누워 깔깔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발로 스칠 때마다 올라오는 잔디의 푸릇한 풀내, 가을이 왔음을 잊지 말라며 제 목소리를 내는 귀뚜라미, 매점에서 은근히 들려오는 내가 좋아하는 발라드. 결국 남는 것은 이토록 아름다운 것.   


  나는 또다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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