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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임 Oct 14. 2021

25. 엄마 됨을 후회함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한다는 말을 하기가 이토록 조심스럽고 힘든 일인가 싶다. 엄마 살이 7년 차. 매일 조금씩 엄마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워가는 중이다.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한다는 말에는 수많은 전제가 존재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아이를 낳은 사실, 생물학적으로 엄마가 된 사실을 후회할 수도 있다. 아이를 낳아 엄마의 지위를 얻긴 하였으나 내가 기대한 엄마의 모습이 아니라서, 이런 엄마가 되길 원한 것이 아니라서 후회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 열 달을 뱃속에 품은 뒤 낳았다고 해서 아이를 낳은 여자들 모두가 한결같이 모성이 샘솟고 희생과 인내의 아이콘이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직접 아이를 낳아 보았기 때문에, 낳지 않았기 때문에 "애 엄마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라며 소름 끼쳐할 수도 있다. 누구든지 어떤 생각이든 가질 수 있으니 상관없다. 다만 "애 엄마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라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면 "나는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합니다."라는 말도 편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난 엄마가 된 게 좀 후회스러워"라는 말에 당장 "그럼 니 새끼들은?"이라고 따져 묻지 말아야 한다.


  '나'라는 사람의 '엄마 됨을 후회함'은 "아이들을 낳지 말았어야 했어" 또는 "저 녀석들을 낳기 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는 아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이 1호와 2호를 낳은 일이고, 이렇게 예쁜 아이들이 내 몸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는 생각을 하면 나 스스로 엄청난 일을 해낸 듯한 기분마저 든다. 아이들과는 별개로 '엄마'의 역할을,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1도 모르는 상태에서 엄마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을 후회한다.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낼 때면 난 이 여리고 고운 아이들에게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건가 하는 질문에 여러 답이 떠오르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엄마가 되어서 그런가 하는 답도 늘 따라다닌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엄마가 되었다는 것 때문에 나 스스로 나의 모성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완벽한 준비란 있을 수 없다는 말로 위로해 보려 하지만 유난히 육아가 힘든 날에는 나의 자존감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진다.


  임신과 출산 후 일어나는 신체적, 정신적 변화나 육아의 어려움과 같은 것에 대한 교육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받지 못했다. 언니나 친구가 출산을 하고 나서야, 내가 임신을 하고 나서야 배움이 시작되었다. 먹고 자고 싸는 일처럼 누구나 다 하는 그런 일로 여겨졌다. 그런데 아니다. 먹고 싸고 자는 일과 다르게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순간들이 너무나 많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불편과 불만을 쉽게 털어놓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엄마니까. 출산은 숭고하고 위대한 과정이고, 엄마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언제나 그렇게 참고 인내하고 받아들이는 그런 위대한 존재니까. 신이 모두에게 함께 할 수 없어 엄마를 만들었다는 말처럼 신은 아니지만 신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기대하는 존재니까. 정말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다. 차라리 '신이 가진 능력을 한데 뒤섞어 세상의 엄마 된 자들에게 흩뿌렸다. 그리하여 어떤 엄마는 이것에 능하고 또 어떤 엄마는 저것에 능하게 되었느니라.' 이것이 훨씬 더 와닿는다. 엄마도 사람인지라 완벽할 수 없고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존재이다. 말을 더럽게도 안 듣는 자식새끼한테 "꼴도 보기 싫다"라고 말했다고 해서 당장에 연을 끊는 것이 아니듯 육아에 지치고 내 삶이 지치는 날 "내가 생각한 엄마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참 한탄스럽다"하고 푸념을 한다고 해서 당장 엄마 자리를 사표 쓰고 나가는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지어다. 설령 "나는 애 키우는 일이 정말이지 적성에 안 맞아서 애들 크면 내 마음대로 살 거다!"라고 소리친다고 해서 애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소리도 아니니 "엄마라는 사람이 어쩌고 저쩌고" 하지 말지어다.


  엄마라는 단어를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인내, 희생과 같은 단어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히곤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엄마의 삶을 살게 되자 비로소 엄마를 더 이해하게 되었고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나를 키웠을지를 가늠하게 된다. 고마움과 미안함에 눈물이 난다. 항상 여기가 끝이었다면 이제는 또 다른 생각도 해보려 한다.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지만 어쨌든 오빠와 나를 잘 키워내셨고, 까탈스러운 아빠 내조도 잘했다. 한때는 왜 저러고 사나 싶어 미련해 보일 때도 있었지만 그 또한 엄마의 선택이었음을 존중하고 본인이 선택한 삶을 꿋꿋이 살아낸 엄마에게 눈물 대신 박수를 쳐주고 싶다. 항상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엄마를 그저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바라보지 말고 잘 살아내셨다고 그 업적을 치하해줘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몇십 년을 밥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가정 대소사를 챙기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랴! 게다가 밥벌이까지 하셨다면 더 말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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