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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임 Oct 09. 2021

23. 한글과 한국어

  한국어와 한글은 다른 것이다. 한국어는 한국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를 말하는 것이고, 한글은 한국어를 표현하는 글자의 이름이다. 오늘은 한국어날이 아니라 한글날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는 그 언어를 표현하는 문자를 먼저 익힌다. 한국어를 배우는 학습자들에게도 간단한 인사와 교실 용어를 제외하면 한글을 제일 먼저 가르친다. 한글의 위대함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안다. 성인은 하루면 자음과 모음을 익힐 수 있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글자들을 소리 내어 읽을 수 있게 된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습들은 한글만 배우려는 것이 아니다. ‘한국어’를 배우고자 한다. 한글은 한국어를 표현하는 도구이다. 한글은 한국어를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문자이다. 


  사람들은 한글의 위대함과 우수성을 이야기할 때 한국어와 자주 혼동하여 말을 한다. 심지어 라디오에서 아나운서 출신인 DJ조차도 그럴 때가 있다. 그 DJ의 의도는 한글에 대해 말하려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한국어가 아니라 한글이라고 고쳐주고 싶은 마음이 단전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어가 우수하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오랜 시간 동안 그 말을 해온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말은 언제든지 생겨나고 없어지고 섞이기를 반복한다. 말의 체계도 그 말이 가진 하나의 특징이지 좋다 나쁘다를 말할 수 없다. 영어의 어순이 주어-동사-목적어라 하여 말이 불편하거나 격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한국어의 어순이 주어-목적어-동사라 해서 우수한 것이 될 수 없다. 물론 ‘국뽕’에 가득 차있는 나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글뿐 아니라 한국말도 굉장히 우수한 언어다. 


  잘 들여다보면 한국어는 배우기 굉장히 까다로운 언어다. 유럽의 많은 언어들과 비교했을 때 ‘성수(性數)’ 표현이 없다는 것이 우리 입장에서는 배우기 쉬운 요인으로 작용할 수는 있겠다. 우리말이 이토록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언어였던가! 한국어에서 나타나는 동사와 형용사의 여러 변화는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큰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살다, 살았다, 사는, 살았던, 살던’이나 ‘예쁜, 예뻐, 예뻐서, 예쁘지만’을 구분해서 사용할 수 있지만 배워 익혀야 하는 입장에서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예쁘다’에 ‘-아/어서’가 왔을 때 왜 ‘예쁘서’가 아니라 ‘예뻐서’가 되는지 이해하려 들다가는 한국어 배우기를 포기하고 말 것이다. 일본어를 배워 본 사람이라면 한국어를 배울 때 느껴지는 고충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떼고 동사에 들어서면서 책을 덮어 버렸다. 뿐만 아니라 여러 상황과 맥락과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존대어도 학습자들을 어려움에 빠뜨린다. 자주 ‘버르장머리 없는 놈’으로 만들어 버린다. 한국어는 처음 접해 배우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언어는 될 수 있겠지만 결코 만만한 언어는 아닌 것이다.


  모든 언어가 제각기 자랑이 있듯이 한국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어는 배려의 언어이다. 인사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헤어질 때 떠나가는 사람은 “안녕히 계세요,”라고 하고 남는 사람은 “안녕히 가세요.”라고 한다. 떠나는 이와 남는 이, 서로가 서로에게 안녕을 기원한다. 일방적이지 않다. 존대어도 대화에 평등을 이루지 못한다는 이유로 구시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오래된 친구에게 함부로 ‘너’라 하지 않고 ‘자네’라 칭하며 서로 존대의 표현으로 대하기도 한다. 비록 어린 시절부터 너나들이하며 지냈다 하더라도 각자가 지나온 지난한 세월을 그렇게 존중해주는 뜻이 아닌가 한다. 나는 한국어의 깔끔한 소리를 참 좋아한다. 말을 할 때에 바람 새는 소리가 나지도 않고 목을 긁는 소리도 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정갈하고 매끄러운 말의 소리가 마음에 든다. 글에서도 어떤 소리가 난다면 나의 글도 한국말의 소리처럼 군더더기가 없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한글 반포 575번째 돌이다. 세종대왕께서 여러 어려움을 뚫고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하신 이 날을 글자를 두드리고 있는 이 순간에도 축하하는 마음이다. 우리의 말이 있고 우리의 글자가 있음에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말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아름다운 한글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어 기쁘다. 글자가 주는 아름다움과 말이 주는 아름다움 모두 그들이 알아차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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