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두기.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한 방역수칙으로 시작되었지만 거리 두기 덕분에 편할 때가 있다. 마트에서 계산하려고 줄 설 때, 사람이 가득한 지하철역에서 에스컬레이터에 타려고 대기하고 있을 때, 버스에 올라타려고 줄 서 있을 때 성격 급한 사람들은 내 뒤에 바짝 붙어 서서 등을 슬금슬금 민다. 낯선 존재의 재촉하는 터치가 느껴질 때 불쾌감이 솟구친다. 뒤돌아 “밀지 마세요.”라고 불쾌한 만큼 단호하게 한 마디 뱉고 싶지만 대체로 참고 만다. 몹쓸 바이러스 덕분에(?) 등 뒤에 바짝 달라붙는 사람에게 좀 떨어져서 서 달라 말하기가 수월해졌다.
나는 전생에 고양이였나 싶다. 고양이를 제대로 키워본 적도 없지만 이리저리 주워들은 지식에 기대어 생각해낸 것이다. 강아지와 달리 혼자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하는 그런 동물. 나도 참 그런 동물이다. 내 주위에 둘러쳐진 보이지 않는 선을 넘는 존재는 불편하다. 참 희한하다. 내가 편하게 여기는 존재들은 그 선을 잘 지킨다. 금 밟았으니 선을 지키라 경고할 일이 없다. 그런 일이 생겨도 말하기 수월타. 내가 불편하게 여기는 존재들은 그 선을 무심으로 넘는다. 그리고 그들에게 금 밟았다고 시원하게 말하기는 시원하지 않다. 어렵다. 말하기 어려워서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면 눈치 없이 또 한 발짝 붙어 선다. 나는 다시 뒤로 물러선다. 그들은 다가선다. 물러서고 다가서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등이 벽에 닿고 만다. 어깨를 뒤집어버릴 듯이, 턱을 목에 갖다 붙여버릴 듯이, 벽을 파고들 듯이 몸을 더 뒤로 뒤로 밀착해 보지만 그들은 납작해질 대로 납작해진 나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제 남은 것은 그들을 힘껏 밀치고 달아나는 것뿐이다.
밀치고 달아나는 나를 향해 그들은 말할 것이다. 말을 하지 그랬어. 말은 안 하는데 어떻게 알겠어. 말을 했지만 듣지 않았던 그 순간들을 다시 리플레이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관계를 어그러뜨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점잖게 말했던 그 순간들을 후회해야 하나. 얼굴을 붉히더라도 금 밟았다, 지금 벌써 두 번째다, 세 번째는 참아줄 수 없다, 이제 당신들은 아웃이야, 라고 말했어야 했나. 모르겠다. 얼굴을 붉히며 금 밟았다 말할 깜냥이 없는 나 자신을 탓하는 것이 내 주제에 맞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선을 넘어 내 영역 안에서 베푸는 그들의 배려는 달갑지 않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요청하기도 전에 먼저 내밀고 싶은 손을 잠시 참아주는 것이 아름답다. 내가 손잡아 달라 하기도 전에 허공에 내밀고 있는 부담스러운 그 손길을 거두어주길, 내게도 먼저 손 내밀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나길 바란다. 우리 사이의 조화로운 틈을 원한다.
“지나치게 가까워 ‘거리’를 잃어버리면 ‘관계’도 잃어버린다. 밀착되어 있지 않으면 그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 없기에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생긴다. 둘 사이에 조화로운 틈이 생기며, 격이 생긴다.”
박연준,『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