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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식사] 사랑의 매라는 허상

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 #1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더
 그 사회의 영혼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

 

 

나도 자녀를 키우게 된다면 어느 정도의 체벌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다섯 살이니까 회초리 다섯 대, 일곱 살이니까 회초리 일곱 대. 나의 부모님은 이렇게 정해진 규칙을 두고 나를 '훈육'하셨고, 부모님이 매를 드실 때 나는 '맞을만한 행동을 했다'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매를 들고 엄하게 가르쳤기 때문에 바르게 자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사랑의 매'는 정말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을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매를 맞을 때보다, 맞아서 부은 엉덩이에 후시딘을 발라주는 엄마의 손길에서 사랑을 느꼈던 것 같다.

 

'사랑의 매'를 맞는 대상을 아이에서 성인으로 바꿔보자. 연인 관계의 남성이 여성을 때렸다면, '사랑해서'라는 이유가 성립되지 않는 명백한 데이트 폭력이다. 또, 교수가 제자를 양성하는 과정에서 제자를 체벌을 했다면 이 역시 권력관계에서 오는 폭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어느 누구도 사랑을 이유로 또는 타인의 행동 교정을 위해 다른 사람을 때릴 수 없는데 오직 아이들만이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때리는 것이 용인되는 유일한 집단이다.

 

'사랑의 매'는 전적으로 매를 든 사람의 논리

맞는 사람에게는 체벌의 이유가 사랑이든 분노든 다를 게 없다.

체벌은 아이의 관점이 아닌 성인, 부모의 관점에서 지속된다.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폭력과 사랑을 연관 짓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사랑하면 신체적으로 우월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힘으로 억눌러도 괜찮다고 가르치는 것과 같다. 사랑하고 돌보는 관계에서도 더 힘이 세거나 권력을 가진 사람은 문제 해결방법으로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체벌은 아이들에게 “네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사람을 때려도 괜찮다”라고 가르친다. 부모가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신체적 체벌은 부모와 자녀 사이의 힘의 차이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이 불평등함을 인지한 어린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힘과 권력에 따른 불평등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기 쉽다.


체벌은 언제나 단 하나의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한다. 바로 체벌이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언제든 너에게 손댈 수 있다는 것과 권력관계의 질서를 명확히 하는 가르침이다.

 

체벌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더 큰 이유는 아이들에게 폭력도 사랑이라고 가르치며 가해자의 논리를 내면화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는 연인을 잃는 게 두려워 가해자의 말들을 내면화했다면, 학대로 희생된 아이는 살아남기 위해 가해자의 논리를 내면화했다.


체벌과 학대는 분명한 경계선이 있을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체벌과 학대는 동떨어져 있으며 그 사이의 경계가 뚜렷하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아이를 학대하는 사람들은 비정상인 악마 같은 사람들일까?

 

아이에 대한 체벌을 부모와 양육자가 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사회는 학대에 대해서도 민감성이 떨어진다. 체벌을 해도 된다고 보는 태도가 뿌연 안개처럼 사회에 깔려 있는 상황에서 아동학대를 뿌리 뽑을 수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구성원의 절반가량이 특정 연령층에 대해 특정한 조건 하에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수용하는 사회에서는 체벌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폭력이 더 높은 수위의 폭력으로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체벌금지법은 부모의 권리 침해일까?

가정 내 체벌금지를 법에 명시해야 하는 이유는 부모들을 범법자로 만들려는 게 아니라 아이들도 성인들과 똑같은 정도로 모든 종류의 폭력에서 법적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갖고 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체벌을 금지하는 법의 목적은 단순하다. 폭력과 비폭력 사이에 아주 단순하고 선명한 줄을 긋는 것이다.

어른의 책무는 아이들에게 폭력이나 협박, 위협에 기대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음을 가르치는 것이며, 정부의 책무는 비폭력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게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에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



한국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친권이 지나치게 강한 나라다. 부모의 자녀에 대한 권리는 부모의 자유권이라기보다 자녀의 보호를 위해 부여되는 기본권으로 권리보다는 의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가족 내에서 부모의 양육방식은 치외법권적 '천륜'의 영역이 아니며, 인권 보호를 위한 국가의 제재 대상이어야 한다.

비대한 국가를 선호해서가 아니다. 공공의 개입이 닫힌 방문 안에까지 이루어질 때에만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고 자유로워지는 약자들이 가족 안에 있기 때문이다.





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을 기반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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