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벌새
자극적인 상업 영화들에 익숙해 있던 우리들에게 벌새는 담백한 무공해 음식을 먹는 기분이 들게 하는 영화였다. 어찌 보면 감정 소모따윈 필요 없는 영화라 속이 편했다고 했을 수도 있겠다. 사실은 영화를 본 뒤 조금 짜증이 났다. 별 특별할 것도 없는 애가 나오는 별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라니. 2시간이라는 얄팍한 투자에 대한 회수는 강렬한 희열도, 쏟아내는 듯한 슬픔도 아니었다. 영화를 다 본 뒤에는 인터넷을 뒤적거렸다. 그래, 유명한 영화면 어떤 큰 해석들이 담겨있겠지.
결론은... 그 때 그 장면들, 아무런 뜻도 없다. 그냥 그것이 은희고, 영지선생님이고 가족들인 것이다, 물 처럼 흘러가듯 살아가지는 우리네 인생들이 그러듯이. 벌새는 어쩌면 우리 모두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고 있음에도, 각자 인생들은 그들에게 하나의 영화임을 알려주고 있는 듯하다. 벌새의 은희를 보며, 내 인생을 영화로 그려본다고 생각하니 그 영화가 지루해 못 견딜 것 같다가도, 문득 꽤 볼 만 할 것 같다고 생각이 든달까?
사람은 입체적이란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저 인간은 왜저래?' 라며 사람들의 행동에 이성과 설명을 부여하려는 것을 벌새를 보는 동안은 멈춰보자.
"언니, 그건 지난 학기 잖아요."
딱히 상처를 주려던 의도는 아니었던, 한 없이 순수하다고도 할 수 있는 유리가 벌새라는 영화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감정을 부끄럼 없이 드러내고, 또 그 감정이 얕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뒤끝이 없다고 해야할까. 정의내릴 수 없는 천진난만한 시절이 누구나 한 번 쯤 있었다고 자부한다.
잊혀지지 않은 그 날에 대한 슬픔과 부채감이 모두를 짓누를 때. 그 시절도 지금도 이 감정은 공유된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삶의 방향을 잡고 확신하며 걷다가도, 이게 아닌 것 같아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순간들이 있다. 생각해보면 그런 순간들을 벗어나게 하는 것은 대단한 성취가 아닌 보통의 일상을 계속해서 살아간다는 사실이었다.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면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 안에서 이뤄내는 작은 성취들이 다시 내 방향을 잡아주곤 했다. 영지선생님이 말하고 싶은 것과는 다를 지 모르겠으나, 그의 읊조림에서 나는 이것들을 문득 떠올렸다.
어쩌다보니 벌새에 대한 후기가 정제되지 않은 무의식 언어들의 흐름이 돼 버렸다. 영화가 그러했듯, 어떤 의미를 애써 담아내려 하지 않고 담담히 느꼈던 것들을 담아냈다면 변명이 될 지 모르겠다.